[박상현의 끼니] 메밀전과 갈레트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 꽃을 손바닥 안에 감싸고, 작고 하얀 꽃잎을 헤아리고는 그대로 통곡해 버렸다."
갈레트는 메밀 반죽을 아주 얇게 펴고 그 위에 치즈, 감자, 햄 등을 넣어 접은 음식이다.
메밀전은 부치고 한참 지나 먹어도 되지만, 갈레트는 굽자마자 먹어야 제맛이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 꽃을 손바닥 안에 감싸고, 작고 하얀 꽃잎을 헤아리고는 그대로 통곡해 버렸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선 문장일 것이다. 두 문장은 각각 다른 소설에서 가져왔기 때문이다. 첫 문장은 한국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운 밤길 묘사로 꼽히는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인용했고, 두 번째 문장은 일본 작가 모리 에토의 소설 ‘블레누아’에서 인용했다. 짜깁기가 억지스럽지 않은 건, 두 소설이 메밀꽃이라는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메밀꽃 필 무렵’에 대해서는 다들 아실 테니 생략하고, ‘블레누아’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프랑스 서쪽 끝 브르타뉴 지방의 브레튼이라는 마을이다. 궂은 날씨와 척박한 토양으로 밀 농사조차 힘든 브르타뉴에서는 메밀이 주된 곡물이었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주인공은 브레튼 사람들의 주식인 메밀 갈레트를 싫어했다. 퍼석퍼석하니 밋밋한 맛의 갈레트는 지나치게 인색하기만 한 자신의 인생 같았다. 어머니와 고향을 떠난 주인공은 요리사의 길을 걷는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파리의 유명 레스토랑의 주방장이 되고서야 그도 어쩔 수 없는 브레튼 출신임을 깨닫는다. 결국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식사를 제공하는 프랑스식 민박을 운영한다. 민박에서 그가 브르타뉴의 맛으로 선택한 음식은 그토록 싫어했던 갈레트였다. 제대로 된 갈레트를 만들기 위해 부모님이 경작하던 메밀밭을 찾은 주인공은 하얗게 핀 메밀꽃을 만난다. 그리고 소설을 이렇게 끝을 맺는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 꽃을 손바닥 안에 감싸고, 작고 하얀 꽃잎을 헤아리고는 그대로 통곡해 버렸다.”
‘메밀꽃 필 무렵’의 주인공에게도 ‘블레누아’의 주인공에게도 메밀꽃은 그리움과 회한의 상징이었다. 강원도 출신에게도 브레튼 출신에게도 메밀은 생존이자 생명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갈레트는 메밀 반죽을 아주 얇게 펴고 그 위에 치즈, 감자, 햄 등을 넣어 접은 음식이다. 갈레트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우리 음식이 메밀전이다. 메밀전 역시 메밀 반죽을 얇게 펴고 배추, 쪽파 등을 올려서 지진 음식이다.
나는 여러 나라의 음식을 먹을 때 차이보다 공통점을 찾으려 애쓰는 편이다. 메밀전도 갈레트도 척박한 땅에서 태어난 소박하고 담백한 음식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메밀의 향을 살린다는 점이다. 메밀전도 갈레트도 메밀 특유의 구수한 향을 반드시 살려야 한다. 더러는 이 향이 거북한 사람도 있지만, 일단 적응되면 그 매력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그런데 결정적 차이가 하나 있다. 바로 질감이다. 메밀전은 눅눅하고 보드라워야 하고 갈레트는 바삭해야 한다. 메밀전은 부치고 한참 지나 먹어도 되지만, 갈레트는 굽자마자 먹어야 제맛이다.

다행히 부산에도 메밀전과 갈레트를 만날 수 있는 음식점이 몇 곳 있다. 소박하고 은근히 사람을 당기는 두 음식을 먹다 보면, 올해는 하얀 메밀꽃이 흐붓하게 핀 모습을 보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음식은 때로 당신을 의외의 곳으로 이끌기도 한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