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 스님 “음식도 수행... 비우고 공존하며 나를 살리는 길” [경기인터뷰]

조혜정 기자 2026. 2. 22.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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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 후 화성 신흥寺서 10여년간 불교학교 운영
사찰·전통음식 소개 위해 흑백요리사 출연 결심
APEC CEO 서밋 특별만찬서도 선보여 큰 보람
간경화로 1년 시한부 판정… 수라간 궁녀였던
양가 할머니 손맛 기억으로 공양 ‘기적의 생존’
음식의 소중함 알리는 ‘음식 수행자’의 길 정진
국내 사찰음식 명장 1호인 선재 스님이 경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사찰음식에 대해 설명했다. 윤원규기자

풍요가 넘쳐나는 시대, ‘뺄셈의 음식’ 사찰음식이 현대인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그 중심엔 과거 간경화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으나 음식으로 스스로 살아낸 국내 사찰음식 명장 1호 선재 스님이 있다. 스님은 지난해 넷플릭스의 ‘흑백요리사’ 출연 이후 공양의 의미를 되새기고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젊은이들이 스스로를 살리는 음식을 알리는 데 ‘노’를 젓고 있다”는 스님을 양평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에서 만났다.

국내 사찰음식 명장 1호인 선재 스님이 경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사찰음식에 대해 설명했다. 윤원규기자

Q. ‘흑백요리사’ 출연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연초를 보냈을 것 같다.
A. 사찰음식을 알리고 전통음식을 소개하기 위해 출연을 결심했는데 생각보다 더 큰 관심을 받았다. 우리 음식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이라는 생각에 반가웠지만 수행자로서 언론이나 대중의 모든 요구를 다 들어줄 수는 없어 부담이 되기도 했다. 사찰음식과 전통을 알리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수행자로서의 삶보다 요리사 혹은 인기인으로 보이고 비칠까 봐 개인적으로는 소통과 외출을 자제했다.

Q. 사찰음식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이유가 무엇일까.
A. 사찰음식이라는 것이 ‘뺄셈의 음식’인데 그 점이 흥미롭게 다가간 것 같다. 요즘의 음식문화가 유행에 치우치는 점이 안타까웠다. 계절마다 변하는 우리의 식재료와 그것을 활용한 음식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김치와 김장문화, 장 담그기까지 보존되고 이어져야 하는 한국의 음식을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과 일종의 사명감이 있었다. 인간에게 이롭게 작용하는 데 집중하는 사찰음식의 요리 과정은 무엇을 더 넣고 첨가할 것이냐보다 식재료 본연의 맛과 향에 집중하기 위해 비우고 덜어내며 최소한으로 조리하기 때문에 그 과정이 새로워 보였을 거다. 음식도 수행의 일부이기에 ‘흑백요리사’도 수행의 과정으로 여겼다.

국내 사찰음식 명장 1호인 선재 스님이 경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사찰음식에 대해 설명했다. 윤원규기자


Q. 음식을 통한 수행은 언제부터 시작됐나.
A. 출가 이후 화성 신흥사에서 10여년간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불교학교를 운영했다. 그 시작은 어느 날 절을 방문한 아버지와 중학생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해외에서 근무했고 아들은 어머니와 둘이 한국에서 지냈는데 거친 형들과 어울리다 퇴학 위기를 맞고 아버지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들을 절에 데려왔더라.

당시엔 템플스테이라는 말도 없을 때였는데 스님들과 함께 지내며 스님들과 똑같이 생활하게 했다. 스님들이 먹는 밥 먹이고 함께 기도하며 시간을 보내고 학교로 돌려보냈는데 우수한 성적으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 그 아이가 다니던 중학교 교장선생님이 이런 변화에 크게 감동을 받았고 아이들을 수련회처럼 꾸준히 절에 보냈다. 그 학교가 모범학교가 되자 입소문을 탔고 경기도교육청에까지 알려지면서 경기도를 넘어 전국의 학교에서 아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때 정말 아이들을 정성 들여 돌봤다. 일주일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인데 아이들의 얼굴이 맑아지는 것을 보며 부처님의 자비를 느꼈고 음식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눈으로 보고 깨달았다. 그런데 정작 내 몸을 돌보진 못했다. 잠잘 시간도 부족해 인스턴트로 끼니를 때웠다. 어느 날 동료 스님이 내 손바닥이 노랗다고 하더라. 그제야 까맣게 된 얼굴이 보였다. 간경화였고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10여년간 아이들을 돌보며 음식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지켜봤지만 정작 내 몸은 돌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약이 되는 음식, 나에게 필요하고 맞는 음식을 해먹으며 본격적인 음식 수행을 시작했다.

Q. 스님 본인에게 맞는 음식을 찾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텐데.
A. ‘열반경’에는 삶의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부처님을 찾아오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제일 먼저 “당신을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하고 물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만큼 우리 삶에 먹는 것이 중요하고 모든 생명과 연결돼 있음을 뜻한다. 나에게 맞는 음식을 찾고 나를 살리는 음식을 해먹는 일은 결국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일이었다. 다행히 내가 음식을 할 줄 알고 식재료에 대한 이해가 있는 것에 감사하며 나에게 맞지 않은 음식은 버리고 나에게 맞는 것을 골라 공양했다.

같은 시기에 우리 어머니도 몸이 아프셨는데 내 목소리만 들어도 나를 아시는 어머니의 마음이 아플 것 같아 전화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처음 출가의 뜻을 밝혔을 때 어머니가 많이 염려하셨는데 스님이 돼 아픈 모습 보이게 되니 참 많이 송구했다. 엄마보다 먼저 죽을 순 없다는 생각에 매일 밤 ‘내일 아침 눈을 뜨게 해주세요’ 기도하며 잠들었다. 어머니, 그리고 외할머니로부터 받아 먹은 음식들이 나를 살렸다. 그 기억에 기대어 해먹은 음식들로 조금씩 회복했다. 의료진으로부터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상태라고 진단받았는데 항체라는 것이 생기더라. 부처님이 나를 살리신 이유가 뭘까 생각했다. 공양의 의미를 되새기고 소통하며 살라는 뜻으로 알고 불교방송에서 경전을 토대로 음식 강의도 하고 요리도 시연하며 본격적으로 음식 수행자로 세상에 나섰다.

국내 사찰음식 명장 1호인 선재 스님이 경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사찰음식에 대해 설명했다. 윤원규기자


Q.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음식 솜씨가 꽤 좋으셨나보다.
A. 외할머니와 친할머니 모두 수라간 궁녀였다. 나는 외할머니 손에 컸는데 끼니마다 밥상을 잘 차려주셨고 여러 가지 떡을 쪄주시며 간식도 잘 챙겨주셨다. 아카시아 순, 보리수 이파리에 쌀가루를 섞어 떡을 쪄주시기도 하고 꽃잎을 따다 화전도 부쳐주셨다. 고구마 줄기의 이파리를 활용해 된장 무침해 주셨던 것, 맨드라미 잎을 넣고 끓여주셨던 된장국도 참 맛있었다. 할머니에겐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식재료였다. 달걀이 귀하던 시절이었지만 밥 뜸들일 때 그 위에 달걀 푼 그릇을 얹어 부드럽게 익혀 달걀찜을 자주 해주셨다.

어머니는 나의 출가를 반대하셨고 많이 우셨다. 어쩌다 나를 보러 올 땐 ‘울지 않겠다’는 각서를 아버지에게 쓰고 오셨다더라.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도토리묵, 청포묵을 잊지 않고 만들어왔다. 한번은 추운 겨울에 밭에 심은 무가 얼지 않도록 물을 끓여 뿌리려고 나섰는데 어머니가 연락도 없이 찾아오셨던 적이 있다. 무에 물도 주지 못하고 어머니를 맞았는데 그해 겨울을 보내고 스승님이 그 무를 이용해 언무구이를 해주셨다. 어머니 덕분에 얼어 버린 무의 그 깊은 맛을 잊지 못한다.

Q. 지난해 10월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 특별만찬에서 사찰음식을 선보였는데 현장 반응은 어땠나.
A. ‘비움의 미학과 공존의 철학’을 주제로 음식이 갖는 본질적 가치와 자연과의 조화를 담아 제철 재료로 요리했다. 7월부터 기획을 시작했고 메뉴를 구성하고 그에 맞는 이야기, 식기 등을 많은 분들과 함께 고민했다. 한식의 한 장르로 사찰음식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화려함보다는 공양의 본질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50년 된 간장으로 만든 따뜻한 간장차로 시작해 연자밥과 배추무된장국, 홍시배추김치, 연근선, 김부각 등을 냈다. 국가적으로 큰 행사에서 사찰음식과 불교문화를 알릴 수 있어 의미가 있었다.

국내 사찰음식 명장 1호인 선재 스님이 경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사찰음식에 대해 설명했다. 윤원규기자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A. 흑백요리사를 비롯한 우리나라 콘텐츠의 영향으로 국내외에서 한식과 사찰음식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는 것을 느낀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표현들을 하던데 나는 어려서부터 할머니와 어머니를 통해 체화한 음식의 중요성을 지금의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다. 그들에게 음식의 소중함을 알게 하는 것이 나의 ‘노’다. 젊은이들이 스스로를 살리는 음식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는 데 기꺼이 그들을 위한 배를 띄우겠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수행이자 부처님의 법이다.

조혜정 기자 hjch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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