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모’의 빈틈을 노리는 것 [뉴노멀-2030 빅데이터]


박진영 | 어피티 대표
재테크에서 수익률을 높이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원칙은 ‘잃지 않는 것’이다. 자산의 50%를 잃으면 원래대로 회복하기 위해 100%의 수익률이 필요하다. 여기에 심리적인 타격까지 입으니, 한번의 실수로 무너진 자산을 복구하는 데는 처음 모을 때보다 몇배의 고통이 따른다.
그럼에도 요즘처럼 자산 시장이 들썩이는 ‘불장’이 찾아오면 우리 마음속에는 조급함이라는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다. 남들은 저만큼 앞서가는데 나만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불안,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영영 뒤처질지 모른다는 공포는 이성적인 판단을 흔들어 놓는다. 금융사기범들은 바로 이 지점을 정확히 노린다.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1조2578억원으로 집계됐다. 2023년 4782억원이었던 피해 규모가 불과 2년 만에 2.6배가량 폭증한 수치다. 수사기관에서 공식적으로 파악된 것만 이 정도니, 실제 현장에서 체감하는 위협은 훨씬 거대할 수밖에 없다.
금융사기가 이토록 기승을 부리는 배경은 복합적이다. 금융상품은 갈수록 복잡해지는데 정보의 격차는 여전히 크고,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영역에서 누군가 ‘믿고 맡길 전문가’를 찾게 된다. 카카오톡 오픈채팅, 텔레그램, 유튜브 등 도처에 널린 채널은 ‘나만을 위한 고급 정보’라는 미끼를 던지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여기에 모바일 뱅킹의 발달은 함정에 빠진 사람이 한번 더 생각할 틈조차 없이 돈을 보내도록 만들었다. 금융이 쉬워진 만큼, 금융사기에 당하기도 쉬워진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인공지능(AI) 기술이 악용되면서 이제는 내가 직접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조차 믿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생성형 인공지능과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해 가족이나 지인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복제하고, 영상통화 화면까지 조작해 돈을 요구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내가 ‘직접 보고 들었으니 확실하다’는 과거의 확인 방식이 기술적 조작 앞에서 무력해진 것이다.
사기범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상대를 심리적으로 무너뜨리는 가스라이팅 수법까지 동원한다. 수사기관을 사칭해 “당신 명의의 통장이 범죄에 연루되었으니 무고함을 입증하라”며 압박하고, 외부와 연락이 차단된 장소로 유도하거나 조작된 ‘안전폰’을 쓰게 하여 고립시키고, “수사 사실이 알려지면 주변 사람들까지 피해를 본다”는 말로 입을 막는다. 돈을 뺏기에 앞서 피해자가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판단력부터 빼앗는 것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피해자를 돕기 위해 만든 제도조차 공격의 수단이 되었다.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계좌 지급정지’ 제도를 역이용하는 ‘통장 묶기’가 대표적이다. 사기범은 피해자의 통장에 소액을 보낸 뒤 보이스피싱 사기 계좌로 허위 신고해 상대의 모든 계좌를 마비시킨다. 말 그대로 금융거래가 불가능하도록 피해자의 통장을 묶어버리고, 이를 해제해주는 대가로 합의금을 요구하는 식이다. 이처럼 금융사기범들이 던지는 그물망은 단순히 정보가 부족한 사람을 낚는 허술한 장치가 아니다. 이들은 더 나은 삶을 열망하며 시장에 뛰어든 사람의 절실함과 조급함을 이용해, 치밀하게 설계된 시나리오 안에 가둔다.
금융사기가 끝을 모르고 진화할 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는 방어적 태도다. 물론 정글 같은 금융시장에서 나를 지켜주는 완벽한 방패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조급함이라는 빈틈을 스스로 메우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그물을 피해 갈 수 있다. 시장이 뜨거울수록 내 조급함을 건드리는 모든 제안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완전히 정지해 시동을 끄라는 것이 아니다. 한 텀만 쉬어가도 괜찮다. 누군가 내 불안과 욕망을 자극할 때, 휩쓸리지 않고 잠시 멈추는 한번의 결단이 나를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가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지방선거 D-100…민주 “내란 종식” 국힘 “이재명 정부 심판”
- ‘모든 수입품’에 15% 관세…세계 무역질서 뒤엎은 트럼프
- 장동혁 ‘절윤 거부’에 국힘 내분 최고조…‘당명 개정’ 이슈까지 집어삼켜
- 내란 특검 “홧김에 계엄, 가능한 일인가”…지귀연 재판부 판단 ‘수용 불가’
- 법왜곡죄 ‘위헌 가능성’ 우려에도…민주, 숙의보다 속도 택했다
- 마스크 꼭!…영남권 뺀 전국 황사 위기경보 ‘주의’
- 태진아 “전한길에 법적 대응”…일방적으로 콘서트 참석 홍보·티켓 판매
- ‘독도 홍보대사’ 가수 김창열 “일본 입국 거부당해”
- 러 대사관, 서울 시내에 ‘승리는 우리 것’ 대형 현수막…철거 요청도 무시
- ‘어디서 본 듯한’....국힘 이정현 야상 점퍼 ‘시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