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미완의 혁명 갑신정변… 우정국 낙성식서 거사 일으켜
경우궁에 본부 차리고 수구파 관료 11명 죽여
위안스카이 청나라 군대 압도적 공격에 패배
조정의 추격 뿌리치고 인천항 거쳐 일본 망명

개화파 김옥균이 주도한 갑신정변은 우정국 낙성식 때 일어났다.
1881년 일본에 파견됐던 조사시찰단(신사유람단)과 1883년 미국에 파견됐던 보빙사는 근대적 우편과 통신 제도에 큰 충격을 받았다. 시찰단과 보빙사는 이러한 시스템이 국가의 신경망이라고 건의했고, 고종이 이를 수용하여 1884년 4월 우정총국을 설치했다.

우정총국의 수장은 개화파 홍영식이 맡았고, 마침내 우정총국의 건물이 완공돼 12월 4일 축하잔치가 열렸다. 미국과 일본 영국의 외교관을 비롯하여 개화파의 김옥균 홍영식 박영효가 참석했고, 서재필은 사관생도들을 이끌고 우정국 밖에서 대기했다. 수구파측은 민영익과 한규직 이조연 등의 권력 실세가 얼굴을 드러냈다. 김옥균은 일본 공사관의 시마무라 서기관에게 암호로 거사 시작을 귀띔해줬다.

연회가 끝날 무렵 밖에서 "불이야!"하는 소리가 들렸다. 개화파 행동대원들이 거사 시작을 알리는 신호로 민가에 불을 지른 것이다. 상황을 확인하려 나갔던 민영익이 칼에 맞아 자상을 입고 귀가 잘린 채 돌아오자 연회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민비의 조카인 민영익은 당초 개화파였으나 수구파로 돌아선, 처단 대상 1순위였다.

김옥균 일행은 황급히 우정국을 빠져나와 서재필이 지휘하는 군사를 경우궁으로 옮겼다. 인근 교동에 대기하던 일본공사 다케조에 신이치로를 만나 병력 지원 여부를 확인했다. 압도적인 규모의 청나라 군대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군의 지원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은 이날 저녁 창덕궁에 도착, 국왕 부부를 만났다. 국왕의 신변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창덕궁의 출입문인 금호문에 개화파 병사 40여 명을 배치한 터였다. 김옥균은 고종에게 변란이 일어났다며 경우궁으로 피란할 것을 권했다. 경우궁은 별궁 성격의 제사시설로 장소가 좁아 방어에 유리한 곳이었다. 고종이 망설이던 때 통명전 쪽에서 "꽝!"하는 폭음이 들려왔다. 개화파와 내통했던 궁녀 고대수가 화약을 터뜨려 위기감을 조성한 것이다. 고종은 팔짝 놀라 "일본 군대는 와서 짐을 보호하라."고 쓴 밀지를 다케조에 신이치로 일본 공사에게 밀지를 내린다. 고종은 김옥균 일행을 따라 경우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다케조에 공사는 고종이 써준 문서를 근거로 일본군 병사 150여명을 데리고 와 개화파 병력과 함께 경우궁을 지켰다. 서재필이 지휘하는 사관생도가 국왕의 거처 바로 앞에서 대기했다. 개화파는 이날 밤 왕명을 내세워 수구파와 척신(처가와 외가)을 궁으로 불러들인 뒤 목을 베고 찔러 죽였다. 윤태준 이조연 한규직 조영하 민영목 민태호 등이 차례로 목숨을 잃었다. 고종이 "죽이지 마라!"고 만류하는 데도 11명의 관료를 죽였다.
12월 5일 새벽 개화파는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 새정부의 등장을 만천하에 알린다. 영의정은 고종의 사촌형인 이재원, 좌의정은 홍영식이 맡았고, 중앙군의 핵심 지휘관인 전후영사 겸 좌포장은 박영효, 좌우영사겸 우포장은 서광범을 배치하여 군사를 장악했다. 김옥균은 호조참판, 서재필은 병조참판 겸 정령관, 박영교(박영효의 형)는 도승지를 맡는 등 고종의 일가와 척족들을 한직에 앉히고 개화파가 요직을 차지했다. 김옥균 맡은 호조는 재무와 내무를 관장하는 자리였다.
개화파는 12월 6일 오전 14개 항의 정강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청나라에 잡혀간 고종을 돌아오게 하고 청나라에 대한 조공을 없애며, 문벌을 폐지하고 능력에 따라 관리를 임명하고, 지조법(토지 세금제도)을 개혁하여 부정을 막고 국가 재정을 확충할 것 등이었다. 탐관오리 처벌, 순사(경찰) 설치로 도둑 방지 등도 담았다. 이외에도 전 국민은 단발할 것, 유학생 선발 파견, 국내성을 설치하여 왕실과 일반 업무 구분, 국왕을 성상 폐하로 개칭하여 대조선국 군주의 위엄 유지, 공채를 발행하여 국가재정 충실화 등 7개항의 구체적인 개혁안을 발표했다. 임오군란 이후 군사를 주둔시키며 내정을 쥐고 흔들었던 청나라의 간섭 배제, 문벌 폐지, 세제 개혁 등은 개화파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대신과 참찬이 모여 정령을 의결, 반포하도록 함으로써 내각 중심의 입헌군주제를 표방한 것도 의미가 크다.


이날 시간이 흐르면서 개화파는 점점 수세에 몰린다. 고종은 개화파의 무자비한 살육에 반감과 불신을 갖게 되고, 민비와 함께 계속 환궁을 요구했다. 개화파는 고육지책으로 왕을 좌의정인 이재원의 교동 집으로 옮겼으나 민비가 계속 재촉하자 창덕궁으로 이동한다. 방어 범위가 넓은 창덕궁으로 옮긴 것은 군사 전략상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이날 오전 청나라 군대는 왕을 알현하겠다며 들어주지 않으면 공격하겠다고 압박했다. 이미 친청파인 민비와 연락을 주고받은 터였다. 오후 2시까지 알현이 거부되자 젊은 장교 위안스카이는 청나라 병력 1500명과 조선군 등 3000명을 창덕궁에 투입, 전투를 시작했다. 개화파의 병력은 일본군 150명과 조선의 사관생도 등을 합해야 최대 400여 명에 불과했다. 일본군은 30여 명이 죽자 퇴각했고, 다케조에 공사는 정변에 개입하지 말라는 일본 외무성의 지시를 받고 공사관으로 물러났다. 고종은 궁을 빠져나와 창덕궁 후원을 거쳐, 북관 종묘로 옮겼다.
개화파는 두 갈래로 흩어져 살길을 모색했다. 홍영식과 박영교는 북관으로 향하는 고종을 따라갔다가 고종의 호위 군사에 의해 목아 달아났다. 고종은 개화파로부터 벗어나자마자 주동자들을 역도로 규정하고 척살하라고 지시했다.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변수 정난교 신응희 유혁로 이규완 일행은 일본군을 따라 일본공사관으로 가서 머물다가 인천으로 향한다. 조선 백성들이 일본을 변란의 주모자로 지목하고, 공사관에 던지고 불을 질렀다. 12월 7일 개화파 인사들은 일본군과 일본공사를 따라 인천을 향해 출발했다. 일행은 조선군과 백성들의 여러 차례 공격을 뚫고 8일 새벽 인천영사관에 도착했다.
김옥균 등 개화파의 망명은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케조에 영사가 조선과의 관계를 우려하여 일본의 우편선 지토세마루에 승선하지 못하게 했다. 개화파를 도와왔던 이노우에 가쿠고로의 도움 덕분에 가까스로 배에 올랐다. 그러나 조정에서 보낸 묄렌도르프가 쫓아와 "역적들을 인도하지 않으면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협박하자 마음이 흔들린 다케조에는 하선을 명령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쓰지 가쿠사부로 선장이 나서 "공사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김옥균 등을 태웠는데 죽음이 뻔한 상황에 내리라고 하는 것은 무슨 짓이냐?"며 배에 오른 이상 모든 게 내 권한이다며 명령을 거부했다. 덕분에 개화파 망명객을 태운 지토세마루는 다음날무사히 일본 나가사키에 도착했다.


김옥균 일행이 망명한 뒤 보복의 피바람이 불었다. 조정은 정변을 역모로 규정하고 김옥균·박영효·서광범·홍영식·서재필을 '5대역적'으로 못박았다. 정변에 가담했던 서재창(서재필의 형) 이희정 김봉균 등을 처형했으며, 주모자의 가족을 찾아내 능지처사하는 반인륜적 처벌을 단행했다.
홍영식 가문의 몰락은 처참했다. 홍영식은 거사 당일 죽었는데 고종은 그의 사지를 찢어 팔도에 보내 전시하도록 했다. 영의정을 지낸 부친 홍순목과 형제들은 모든 관직에서 쫓겨난 뒤 홍순목의 명에 따라 일가 20여 명이 독약을 받고 집단 자살했다. 박영효의 아버지 박원양은 감옥에서 거적(볏짚)을 뜯어먹다가 굶어 죽었다.
김옥균의 가족도 예외가 아니었다. 친부 김병태는 천안현에 갖혔고, 어머니와 누이 김균은 자살했다. 동생 김각균은 일본으로 가려다 대구에서 붙잡혀 금부에서 죽었으며, 김옥균의 아내와 딸은 충북 옥천의 관노가 됐다. 누이 김균이 도망하여 충남 서천 판교에서 숨어 살았다는 기록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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