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감독 “휴민트 공개 유난히 떨렸다…그 이유는”

전지현 기자 2026. 2. 2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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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휴민트>를 연출한 류승완 감독. NEW 제공

“영화 만드는 일을 적지 않은 시간 했는데, 오늘만큼 떨린 날이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왜 이렇게 떨리는지 모르겠어요.”

<휴민트>가 일반에 처음 공개된 지난 4일 언론 시사회. 류승완 감독(53)이 말했다. <베를린>(2013), <베테랑>(2015), <밀수>(2023) 등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지닌 그에게도 매 영화 개봉은 긴장되는 일이구나, 단순히 넘겨짚기에는 감독 자신도 제 신체 반응에 의아해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개봉 전 기자회견과 개봉 이후인 지난 20일 류 감독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 유난한 떨림의 이유를 추론해 보았다.

30년 경력의 연출 베테랑에게도 <휴민트>는 여러모로 새로운 작업이었다고 한다. 남한과 북한 요원이 등장하고, 한 여인을 구하기 위한 치열한 액션이 펼쳐지는 것은 <베를린>을 연상시킬 수 있지만, 이념 및 첩보 대결 등 거대담론보다는 개인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영화는 남한 국가정보원 요원 조 과장(조인성)과 북한 국가보위성 조장 박건(박정민), 그리고 북한 식당 종업원 채선화(신세경), 세 사람의 감정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영화 <휴민트>에서 국가정보원 블랙요원 조 과장(조인성)이 공격해 온 상대를 제압하고 있다. NEW 제공

이야기의 뼈대를 확정한 순서가 전작들과 달랐기 때문에 생긴 변화이기도 하다. 영화의 주요 소재인 ‘북한 여성 인신매매’ 사건은 10여 년 전 류 감독이 <베를린>을 준비할 때 취재했던 자료를 바탕으로 한다. 당시 초고를 써뒀지만, 바로 영화화에 들어가지 못했다. “들으면서 되게 화가 났었거든요. 아마 그때 마음 그대로 찍었다면 생으로(적나라하게) 찍혔을 것 같은데,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피해자를 다른 방식으로 착취하는 시선으로 보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묻어뒀던 시놉시스를 다시 꺼내 든 것은 배우 조인성과 박정민을 작품으로 만나게 되면서다. 조인성과 <모가디슈>(2021)와 <밀수>, 박정민과 <신촌좀비만화>(2014)와 <밀수> 등에서 합을 맞춘 류 감독은 “두 배우를 전면에 내세워 영화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대본이 아닌 배우를 중심에 두고 작업한 것은 <베테랑> 서도철 형사(황정민) 캐릭터를 만들 때 이후 오랜만의 일이었다.

두 배우를 중심에 두고 새로 쓴 대본은 초안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고 한다. 류 감독은 “기존의 유머나 까불거리는 톤을 다 빼고, 두 배우의 진중함을 믿고 밀어붙이는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새로 취재를 더해 오늘날의 이야기로 “몸에 가닿게” 쓰려고 했다.

류승완 감독 영화 <휴민트>에서 채선화(신세경)를 찾아온 박건(박정민). NEW 제공

헤어진 연인, 박건과 채선화 사이의 아련한 로맨스도 이때 추가됐다. 영화는 두 사람의 전사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서로 간에 보내는 원망과 애정이 교차하는 눈빛으로 그사이를 상상하게 한다. 류 감독은 “현재 모습에 충실하면, 오히려 그 궁금증이 영화의 또 다른 힘이 될 거로 생각했다”고 했다. 로맨스 장면을 연출할 때에는 ‘로맨스 장인’ 조인성의 조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전매특허인 액션은 현실적이면서도 스타일리시하게 구성했다. <모가디슈> 때부터 함께한 태상호 군사전문기자와 함께 직접 로케이션 현장을 둘러보며 “실제 군사작전 지휘하듯” 인물들의 움직임을 설계했다. 서사의 복잡함은 덜어내고, 액션 장면의 밀도를 높이며 “그냥 마초 액션이 아니라 세심하게 폭발력을 갖는 액션으로 나아갔으면” 했다.

하지만 여성 인신매매 소재를 다룸에 있어서, 마지막 총격전에 ‘유리 박스에 갇힌 여성들’을 시각화하는 등 표현이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류 감독은 “시선과 태도 면에 있어서 카메라의 위치를 세심하게 쓰려고 하는 등 많이 고민했다”면서도 비판을 수용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예민한 소재일수록 한 번 더 생각해야 하는구나. 시대 감수성을 또 한 번 배우는 것 같다”며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고 얘기하기보다 모두가 (더)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영화 <휴민트>를 연출한 류승완 감독. NEW 제공

그는 언론 시사회 때 유독 떨렸던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다”면서도 “영화 환경이 변하고 있어서 더 그런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텅 빈 극장을 보는 일이 잦아진 몇 년, 그는 영화를 한 편 한 편 만드는 일의 소중함을 체감한다고 했다. <왕과 사는 남자>와 <휴민트> 등 한국 영화로 북적이는 근래의 극장이 애틋한 이유다. “무대 인사를 할 때 관이 꽉 차 있는 것을 보면 울컥하더라고요.”

올해로 연출 데뷔 30주년을 맞은 류 감독은 <휴민트>를 만들고 “여한이 없어졌다”고 했다. 그는 “취향의 극단을 살려 만들어보기도, (취향을) 누르기도 하고 여러 방향의 영화를 만들어왔었다”면서 “(그중에서도) 이번 영화의 톤과 무드는 정말 해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러고 나니 다음 영화에서는 되게 달라질 수 있겠다 싶다. 유아기를 벗어난 느낌”이라고 했다. 현재 준비 중인 <베테랑3>에 대해서는 “순수하게 관객들이 좋아했던 서도철 형사를 돌려드리는 영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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