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2년 앞두고 터진 전쟁에 피난 속 공부…약대 진학 꿈 이뤘어요
19살 라얀 하메드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문해율은 2023년 가자전쟁 이전엔 98% 수준으로 세계적으로도 상위권에 속했다. 하지만 유엔 통계를 기준으로 가자전쟁 동안 학교의 97% 이상이 파괴됐고, 학령기 아동 65만여명은 2년 이상 대면 수업에 참여하지 못했다. 지난 1월 유니세프는 교육 기반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은 미래에 대한 공격이라고 규탄했다. 한겨레는 사단법인 아디(ADI)와 팔레스타인여성위원회연합(UPWC)의 도움을 받아 전쟁으로 고통받는 팔레스타인 주민의 인터뷰를 편지 형식으로 차례로 싣는다.
저는 라얀 하메드(19)입니다. 전쟁으로 부모님과 16살·15살인 여동생 둘, 11살 남동생까지 저희 여섯 가족은 가자지구 중부 다이르알발라흐로 피난을 떠나야 했습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으로 대학 입시까지는 2년이 남은 때였습니다.
저는 다이르알발라흐에 있는 학교에서도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학교들은 우리 같은 피난민의 거처가 됐습니다. 한 교실에 남녀노소 30명씩 뒤섞여 살았습니다. 학교에선 무언가 배우기는커녕 조용히 공부할 수도 없었습니다. 전쟁이 터진 초기엔 교재와 필기도구도 없었습니다. 서점에서 구한 책으로 혼자라도 공부할 수 있던 것은 전쟁이 터진 뒤 1년이나 지나서였습니다.
2025년 2월28일, 60일 휴전으로 바이트하눈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집은 폭격을 당해 완전히 무너져 있었습니다. 바이트하눈에서도 학교에선 수업을 하지 않아, 배울 수 있는 선생님을 찾았습니다. 일주일 정도 수소문한 끝에 사설 강의가 열리는 곳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전쟁 중에 수업은 보통 한 천막에 30명 정도의 학생이 함께 모여 듣습니다. 화학은 현직 교사에게, 수학과 물리는 대학 졸업생에게 배웠습니다. 한 과목당 월 50셰켈(약 2만4천원)을 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건 단 20일뿐이었습니다. 2025년 3월에 다시 전쟁이 시작돼, 우리 가족은 폭격 속에 몇가지 물품만 급히 챙겨 피난을 가야 했습니다. 가자시티로 온 저희 가족과 고모의 가족까지 모두 9명은 24㎡(7.3평) 크기의 텐트 하나에서 생활해야 했습니다. 텐트는 쓰레기 더미 근처였고, 물도 부족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적응하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배고픔만은 너무나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피난 온 지 20일 뒤부터 장장 8개월간 가자지구에 기근이 닥쳤습니다. 전쟁 이후 직업을 잃은 아버지는 돈을 벌 수 없었습니다. 저희는 구호단체에서 나눠 주는 구호품으로 근근이 버텼습니다. 아버지는 식량을 구하지 못해 절망했습니다. 제 가족은 종종 굶은 채 잠들었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결혼할 때 받은 아껴온 금 조각을 팔아 밀가루를 샀지만, 그마저도 충분한 양은 아니었습니다.
굶주림 속에서도 꿈을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낮에는 햇빛 아래서 공부했고, 밤에는 아버지의 휴대전화 조명을 켜놓고 책을 봤습니다. 휴대전화를 충전하는 것도 돈이 들지만, 다행히 아버지는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친척에게 부탁해 배터리를 채워 오셨습니다.
학교나 정부에선 교재나 문구를 주지 못했습니다. 교재는 외삼촌이 서점에서 사 준 것이었습니다. 모의고사 문제집 같은 건 너무 비싸서 기본적인 교재밖에 구할 수 없었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어머니나 고모에게 물어봤습니다. 몇달 뒤엔 다이르알발라흐로 또다시 내려가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저는 이 모든 어려움을 꿈을 좇기 위한 힘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렇게 2025년 10월4일, 시험 날이 다가왔습니다. 시험에는 2만명이 참가했습니다. 아버지의 휴대전화로 접속해, 아랍어·영어·수학·물리·화학·생물·기술·이슬람 과목을 응시했습니다. 온라인 시험이었기 때문에 감독관이 없었고, 일부 학생들은 인공지능 사이트를 이용해 부정행위를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결국 저는 과학 계열에서 상위 14%에 드는 성적을 받았습니다. 꿈꾸던 가자시티에 있는 아즈하르대학교 약학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친척들이 준 축하금을 모아 겨우 등록금 400셰켈(약 19만원)을 마련했습니다.

전쟁 중 문을 닫았던 대학은 지난해 10월 휴전 뒤부터 다시 문을 열고, 한달 뒤 새 학기를 시작했습니다. 피난 캠프에서 학교까지는 왕복 2시간에 교통비도 비싸고, 안전하지 않아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새 옷을 입고 새 책을 들고 캠퍼스에서 대학 생활을 하고 싶다는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대학교에 합격해 수업을 들을 수 있단 것만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파괴된 이곳에서 저의 약국을 열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꿈도 있었지만, 이제는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입니다. 대학 공부를 마치고 약사가 되어, 가자의 아이들이 세상의 다른 아이들처럼 평화롭고 안전한 곳에서 공부하며 굶지 않는 나라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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