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사남’ 보고 과몰입했다면…서울 속 단종유배길 어디?

김지은 여행플러스 기자(kim.jieun@mktour.kr) 2026. 2. 2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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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개봉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45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연일 기록을 세우고 있다.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스크린 밖 단종의 흔적을 찾는 발걸음도 늘고 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사진=쇼박스
‘왕과 사는 남자’는 폐위된 조선 6대 임금 단종(박지훈 분)과 그의 곁을 끝까지 지킨 촌장 엄흥도(유해진 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두 사람의 우정과 단종의 비극을 섬세하게 담아 관객의 눈물을 자아냈다.

​작품 속에서 ‘강’은 중요한 장치로 등장한다. 유배지인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강을 건너야 했고, 이는 후반부 단종의 비극적 운명을 암시하는 상징으로 그려진다.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작품 속에서 ‘강’은 중요한 장치로 등장한다./사진=쇼박스
그러나 단종이 건너야 했던 강은 영월 이전부터 시작됐다. 폐위 후 유배 길에 오른 그는 창덕궁을 떠나 청계천을 건너고, 중랑천을 지나 마지막으로 한강을 건넜다. 배를 타고 한양을 떠나 경기도 여주로 향했고 출발 7일 만에 영월에 닿았다.

​영화에 등장하진 않지만 서울에도 그 물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단종이 몇 번이고 건너야 했던 ‘물’을 따라 이어지는 ‘단종 유배길’을 찾아가 봤다.

영영 이별한 다리, 영도교
영도교/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영도교는 서울 동묘앞역 인근 청계천 다리다. 차도와 인도가 함께 있는 널찍한 다리는 조형물에 앉아 쉬는 사람, 동묘 벼룩시장을 오가는 이로 북적인다. 서울 시민의 일상이 스민 이 다리에는 단종의 비극이 겹쳐 있다.

​창덕궁을 떠난 단종은 이곳에서 부인 정순왕후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부부는 이 다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헤어진 뒤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두 사람이 영영 이별했다 하여 한때 ‘영이별교’, ‘영영건넌다리’라 불렸고, 그것이 지금의 ‘영도교(永渡橋)’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영도교. 현재는 동묘 벼룩시장을 오가는 이로 북적인다/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매년 4월이면 정순왕후 추모문화제가 열려 영도교에서 당시의 이별 장면을 재현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한다. 다만 다리 한편에 작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을 뿐 두 사람의 이별을 떠올릴 만한 장치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것은 아쉬웠다.
영도교의 유일한 안내판/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이곳에서 남편과 이별한 정순왕후는 궁궐에서 쫓겨나 동대문 밖 청룡사에서 여생을 보냈다. 단종이 죽은 후에는 정업원에서 염색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 갔고, 82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영도교에서 도보 15분 거리의 숭인근린공원 안에는 정순왕후를 기리는 작은 기념 공간이 마련돼 있다. 단종 유배길을 따라 걷는다면 함께 들러보는 것도 좋겠다.

​마지막 배웅, 살곶이 다리
살곶이 다리/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영도교에서 청계천을 따라 5㎞ 정도 걸으면 살곶이 다리가 나온다.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에 놓인 이 다리는 조선 전기에 축조된 돌다리다.

​현존하는 조선 시대 석교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며 흐르는 물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마름모꼴로 다듬은 돌기둥이 특징이다. 현재 보물로 지정돼 있다.

살곶이 다리/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이 일대는 예부터 ‘살곶이벌’이라 불렸다. 조선 시대 왕실의 말 목장으로 쓰인 넓은 평야였다. 살곶이 다리는 조선 시대 한양과 동남지방을 연결하는 요충지였다.

​단종은 영도교를 지나 살곶이벌에서 중랑천을 건넜다. 다만 유배길에 오르던 당시에는 아직 완공되기 전이어서 이 다리를 직접 건너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폭이 넓은 살곶이 다리. 평평한 평지를 걷는 듯해서 ‘제반교’라고도 불린다./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이후 단종은 인근 화양정에서 머물렀다. 세조는 화양정으로 내시를 보내 마지막으로 단종을 전송(배웅)했다. 백성들은 단종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 ‘회행정’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화양정은 벼락을 맞아 불 탔고 현재는 그 터와 7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배를 타고 강원으로, 광나루
현재 광진교 위에서 바라본 한강. 이 강을 건너 경기도 여수의 이포나루로 이동했다/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과거 광나루의 모습/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서울의 마지막 발자취는 광나루다. 이곳은 예로부터 배로 서울과 강원 지역을 연결하던 교통적 요충지였다. 화양정에서 하룻밤을 보낸 단종은 광나루에서 배를 타고 여주의 이포나루로 이동했다. 이 강을 건넌 뒤로 그는 다시는 한양 땅을 밟지 못했다.

​‘넓을 광(廣)’ 자를 쓰는 이름처럼 광나루는 물길이 넓게 트여 있던 곳이다. 강폭이 넓다고 하여 예전에는 ‘너븐나루’라 불렸다. 이후 광진교가 놓이면서 나루터의 기능은 사라졌고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광나루터/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광나루터는 광진정보도서관 앞에 위치해 있다. 광나루의 역사를 자세히 설명하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어 옛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광나루 안내판/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현재 나루터에 서면 강변북로가 시야를 가리고 있지만 ‘너븐’ 풍경을 온전히 보고 싶다면 광진교 위에 올라보는 것도 방법이다. 광진교는 1936년 준공된 서울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다리다.
광진교/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광진교 위에서 바라본 풍경. 단종이 마지막으로 바라본 한양의 풍경이 왼쪽의 아차산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온다./사진=김지은 여행+ 기자
왼쪽에는 천호대교와 롯데타워를 중심으로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펼쳐지고 반대쪽 하남 방면에는 건물이 적어 하늘과 한강, 아차산까지 한눈에 펼쳐진다.

​광나루에서 출발한 단종은 이포나루에 내린 뒤 육로를 따라 이동해 영월 청령포에 닿았다. 서울에서 시작된 물길은 그렇게 영월로 이어졌고 4개월 후 단종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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