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미술관 … '에르미타주'를 만나다

2026. 2. 22.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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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 게티이미지뱅크

기자 친구가 말했다. "기사는 두괄식, 결론부터." 그래서 이렇게 쓴다. "내가 만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생각보다 따뜻했고, 상상보다 아름다웠으며, 기대보다 창의적인 도시였다"고. 이 시국에 러시아라고? 춥고, 멀고, 말도 통하지 않는, 심지어 지금은 함부로 갈 수도 없는 줄 알았던 나라가 아닌가. 막상 가보니 틀렸다. 지금부터는 막연히 멀고 무서운 곳 불곰국 러시아가 아니라, 내가 직접 걷고 만난 러시아의 경주(慶州), 상트페테르부르크와 그곳 사람들 이야기다.

"러시아, 지금 갈 수 있어요?"

의외로 많은 한국 사람이 지금은 러시아에 갈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실제로는 한국인은 러시아에 '비자 없이' 여권 하나 달랑 들고 입국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아시아 국민이다.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비자 없이는 러시아 땅을 밟을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아시아 국가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무비자 출입국을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비록 직항은 없어졌지만, 중국 베이징이나 상하이, 중동의 아부다비를 경유하면 생각보다는 쉽게 러시아로 들어갈 수 있다.

12월, 풀코보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한산함이다. 국제 정세와 계절적 요인이 더해져 겨울의 풀코보는 굉장히 여유롭다. 줄도 짧고, 소음도 적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차분한 건 좋은데 공항에서부터 현실적 문제에 직면한다. 한국에서 로밍을 해왔음에도 비행기 착륙과 동시에 신원 확인 전까지는 24시간 데이터 사용이 안 될 거라는 경고 문자부터 날아온다. 더 큰 문제는 비자와 마스터 로고가 무용지물이다. 당황스럽다. 다행히 미리 챙겨간 현금(루블)이 조금 있었기에 봉변은 면했지만 두려움도 함께 고개를 든다. "아,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나?"라는 생각도 잠시, 신기하게도 이 불안과 불편함이 여행의 새로운 리듬을 만든다.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내가 어느새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고 '걷고, 보고, 느끼는 여행'을 하고 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길거리 전경.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시베리아가 아니다

러시아는 막연히 살벌하게 추운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도착한 12월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영상의 기온, 일교차도 고작 1~2도. 한국에서는 칼바람을 맞고 출발했는데 막상 도착한 상트는 체감상 더 따뜻하다. 게다가 한국과 달리 하루 종일 기온이 거의 일정한 이곳은 몸이 적응하기 훨씬 수월하다. 가족들과 통화할 때마다 듣는 말은 "러시아 많이 춥지?"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 생각보다 너무 괜찮아." 아무도 믿지는 않는 눈치다.

12월의 상트는 오전 10시쯤 해가 온전히 뜬 뒤 오후 4시쯤 다시 저물기 시작한다. 겨울의 낮은 기껏해야 8시간도 채 안된다. 여름에 '백야'라는 이름으로 빌려다 쓴 '낮'이라는 이름의 '빛'을 겨울에는 고스란히 되갚아야 하는 것이다. 상트의 겨울은 그래서 기나긴 어둠을 이겨내기 위한 인간의 '빛'이 진가를 발휘하는 계절이다. 수백 년 지켜온 인류문화유산 건물들 위로 가로등과 조명이 살포시 내려앉을 때 상트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전시된 앙리 마티스의 '춤'.

터줏대감 '에르미타주'

사진으로 볼 때는 몰랐다. 이렇게 클 줄은. 에르미타주는 겉에서 보면 3~4층짜리 건물이지만 각 층의 층고가 엄청나다. 궁궐로 쓰였고 현존 박물관임을 감안하더라도 그 높이는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 아파트로 치면 9층짜리 정도의 위용을 자랑한다. 광장 역시 이 웅장한 건물에 걸맞게 넓고 크다. 그렇다고 디테일이 부족한가? 다가갈수록 느껴지는 외관의 섬세함은 어설픈 내 말솜씨로는 도저히 부족할 정도다.

에르미타주라는 이름도 생소한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러시아의 '겨울궁전'은 한 번쯤 들어본 사람도 간혹 있다. 지금은 전쟁통에 발길이 끊기다시피 했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 직항도 운행했고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도 꽤 있다. 대부분 여행사에서는 겨울궁전, 에르미타주 '본관'을 중심으로 투어 코스를 짠다. 이번에는 숨겨진 보석 같은 곳 '신관'에 대한 얘기다. 네바강변에 접해 있는 에르미타주의 상징색 밝은 초록빛 겨울궁전 뒤에는 알렉산드르 기둥을 넘어 매끈한 곡선 건물이 하나 보인다. 흔히 '신관'이라 부르는 제너럴 스태프 빌딩이다. 절반은 러시아 국방부가 사용하고 있다고 하고, 그 절반을 뚝 떼어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는 곳이다. 들어가는 순간 겨울궁전의 역사를 단숨에 뛰어넘어 현대적 감각이 물씬 풍기는 미술관을 만나게 된다. '본관'에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네덜란드 빛의 화가 렘브란트를 만났다면, 이곳 '신관'에는 천재 피카소와 앙리 마티스, 고흐와 모네까지 인상주의를 비롯한 이른바 미술 교과서 단골 화가와 그의 작품들이 건물에 가득 차 있다. 특히 앙리 마티스의 작품만 하더라도 책에서 배우고 도록을 통해 보았을 뿐, 이렇게 방 하나를 가득 메울 정도로 압도할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딱 지금만 된다…'황제' 미술관 투어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에르미타주는 사람들에 떠밀려 다니는 곳이었다고 한다. 북유럽의 미술 애호가들은 물론 관광버스에 가득가득 채워진 전 세계 패키지 관광객들로 늘 북새통을 이뤘다. 파리 루브르에 모나리자가 있다면 에르미타주에는 공작새와 다빈치가 있다. 인파에 휩쓸려 주마간산 훑어나 보고 지나쳐야 했던 곳.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에 겨울이라는 계절까지 겹쳐 평일 낮에는 '호젓함'마저 느낄 정도다. 이런 명화를 이런 환경에서 이런 여유를 부리며 볼 수 있다니. 골프 좋아하는 친구가 황제골프를 치고 왔다고 자랑하던데, 나는 황제 미술관 투어를 이렇게 마무리하는구나. 표트르와 예카테리나 대제가 부럽지 않은, 궁전의 주인이 된 기분이다.

▶ 에르미타주 박물관 한국에서 보세요

러시아판 루브르인 '에르미타주 박물관'. 살아생전 보고 싶다면 굳이 러시아까지 갈 것도 없다. 놀랍게 한국, 그것도 서울 마포 상암 문화비축기지에서 볼 수가 있다. 심지어 미디어아트의 양식을 빌려 한국 땅에서 '빛'으로 깨어난다.

문화비축기지에서 빛으로 재탄생 한 '겨울궁전' 찬란한 에르미타주를 보는 법. 쉽다. 3월 23일 '놀'에서 얼리버드 티켓이 열린다. 당연히 예매 서둘러야 한다. 어어, 하다간 러시아까지 기어이 가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유민석 작가는…

홍익대 미대 박사(수료) 출신 화가. 올 4월 말 개막하는 '찬란한 에르미타주' 디지털 전시 기획자다. 러시아 에르미타주 국립박물관 10인의 디지털 위원 가운데 유일한 외국인으로 예술을 통한 국제 문화 교류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에르미타주(러시아) 유민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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