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서 날아 오른 김길리·최가온 ‘Z세대’…4년 뒤 알프스가 더 기대된다[밀라노 코르티나 2026]

이종호 기자 2026. 2. 22.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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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 세대교체로 메달 수확
유승은·임종언 등 에이스로 부상
베테랑들 대신하며 레이스 주도
스노보드, 전통적 약세 딛고 우뚝
빙속은 24년 만에 ‘노메달’ 수모
종합 순위서도 中·日에 또 밀려
일부 빙상 종목 ‘편식’ 극복 절실
쇼트트랙 대표팀 김길리가 20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스케이팅 아레나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태극기를 들고 트랙을 돌고 있다. 연합뉴스


20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스케이팅 아레나에서 끝난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 결승. 결승선 3바퀴를 남긴 상황에서 1·2위는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의 ‘신구 에이스’ 최민정과 김길리(이상 성남시청)였다.

최민정의 무난한 1위가 예상되던 찰나 김길리가 속도를 올리며 승부수를 띄웠다. 결국 1바퀴를 남기고 역전에 성공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8년 평창 대회 이후 ‘쇼트트랙 여제’로 군림해오던 최민정이 물러나고 김길리가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으로 탄생한 순간이었다.

한국 대표팀을 관통한 이번 동계올림픽의 가장 큰 화두는 세대교체다. 과거 올림픽에서 메달 레이스를 주도했던 최민정 등 베테랑들의 자리를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 출생을 뜻하는 Z세대, 이른바 ‘젠지(Gen Z)’가 대신하게 된 것.


그 중심에 김길리가 있었다. 김길리는 여자 10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여자 3000m 계주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서 역전 드라마를 완성하며 8년 만의 왕좌 탈환을 이끌었다. 주종목인 여자 1500m에서도 금메달을 차지해 2관왕에 올랐다.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의 임종언도 빼놓을 수 없다. 임종언은 1000m 동메달과 5000m 계주 은메달로 ‘멀티 메달’을 목에 걸었다.

스노보드 대표팀 최가온이 14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린 대한체육회 공식 기자회견에서 금메달을 깨물어 보고 있다. 연합뉴스


스노보드 종목에서는 ‘여고생 듀오’의 활약이 빛났다. 스노보드 여자 빅에어에서 유승은이 동메달을 딴 데 이어 최가온이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에서 한국 설상 종목 첫 금메달이자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8년생 동갑내기인 두 선수는 이번 대회 메달리스트 가운데 가장 어리다.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종목에 나선 2005년생 이해인(8위)과 2008년생 신지아(11위)도 비록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이번 올림픽을 통해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주며 4년 뒤 2030 알프스 동계올림픽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새로운 ‘효자 종목’ 스노보드…‘24년 만 노메달’ 빙속

한국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4개, 동메달 3개를 획득해 종합 13위에 올랐다. 금메달 3개와 메달 종합 순위 ‘톱10’을 목표로 내걸었던 한국은 14위에 그쳤던 2022 베이징 대회(금 2개·은 5개·동 2)의 성적을 뛰어넘었지만 종합 순위 톱10 진입은 이루지 못했다.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이번 대회 한국의 초반 메달 레이스를 이끈 건 전통적으로 약세를 보여왔던 설상 종목이었다. 특히 스노보드가 선봉에 섰다. 남자 평행대회전의 김상겸(은메달)을 시작으로 유승은으로 이어진 스노보드 메달 레이스는 최가온의 역전 ‘금빛 드라마’로 방점을 찍었다. 한국 설상 스포츠 역사 100년 만에 첫 올림픽 금메달과 설상 최초 단일 올림픽에서 2개 이상 메달을 따냈다. 금·은·동을 각각 하나씩 따낸 스노보드는 단숨에 한국 대표팀의 새로운 효자 종목으로 떠올랐다.

스노보드의 놀라운 약진은 30년 전의 서태지와 아이들을 소환하기도 했다. 1995년 발표한 곡 ‘프리스타일’은 스노보드를 주제로 한 뮤직비디오로 인기를 끌었다. 스노보드에 대한 국내의 관심이 커진 계기였다. 그렇게 스노보드에 푹 빠진 부모 세대의 영향으로 최가온과 유승은은 선수의 길을 걸었다.

스노보드 대약진의 밑바탕에는 대한스키협회 회장사 롯데그룹의 꾸준한 투자가 있었다. 롯데는 2014년부터 스키·스노보드에 총 300억 원 이상을 지원했다. 규모도 규모지만 꼭 필요한 분야에 돈을 체계적으로 잘 썼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외 훈련 때 다른 나라와 합동 훈련 기회를 제공하고 팀을 창단하는 한편 국제 심판 양성에도 힘썼다. 이번 올림픽에는 전략 종목인 스노보드와 프리스타일 스키를 집중 지원하기 위해 현지에 베이스캠프까지 운영했다. 장비 전문가 2명 등 각 분야 지원 인력 15명을 별도 파견했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대표 정재원이 21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스피드스케이팅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매스스타트 결승에서 5위를 기록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노보드가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낸 반면 쇼트트랙 못지 않은 ‘효자 종목’ 스피드 스케이팅은 2002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이후 무려 24년 만의 ‘노메달’ 수모를 겪었다. 한국은 남자 단거리 간판 김준호와 여자 단거리 ‘신구 에이스’ 김민선, 이나현, 남녀 장거리 간판 정재원과 박지우가 메달 획득에 도전했지만 단 한 명도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다. 이상화, 이승훈, 김보름 등 그동안 대표팀을 이끌었던 베테랑 선수들이 모두 은퇴한 이후 제대로 된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못한 탓이 크다.

또 다시 한중일 삼국지서 크게 밀린 韓…꾸준한 투자 절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도 아시아 국가들인 일본과 중국에 밀렸다. 종합 순위 10위를 기록한 일본은 금메달 5개와 은메달 7개, 동메달 12개를 따내며 역대 동계 올림픽 가장 많은 24개의 메달을 쓸어 담았다. 중국도 금메달 4개와 은메달 3개, 동메달 6개를 획득해 종합 순위 12위로 한국을 앞질렀다.

일본은 피겨·스노보드·스피드 스케이팅 등 기초 종목에서 고르게 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중국은 최근 설상 종목 투자 확대를 통해 종합 성적을 끌어올렸다.

반면 한국은 쇼트트랙과 스피드 스케이팅 등 빙상 종목에 집중된 ‘선택과 집중’ 전략을 써왔다. 이번 대회에서도 한국이 획득한 메달 10개 중 7개가 쇼트트랙에서 나왔다. 쇼트트랙이 흔들리면 올림픽 성적 전체가 망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더 이상 쇼트트랙이 ‘최강’을 자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올림픽 쇼트트랙 종목 종합 1위를 차지한 네덜란드(금메달 5개·은메달 1개·동메달 1개) 등 라이벌 국가들의 위협이 거세졌다.

올림픽에서 더 나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수십년째 반복되는 ‘종목 편식’을 극복하고 장기적 관점의 보다 폭 넓은 투자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종호 기자 phillies@sedaily.com양준호 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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