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상호관세 제동에도 한국 정부 ‘대미 투자’는 그대로···‘신중 기류’

미 연방대법원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부과에 위헌판결을 내렸으나 정부는 일단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를 계획대로 진행하면서 신중하게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품목별 관세를 새로 정할 수 있고,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더 강한 수위로 대체 카드를 꺼낼 수도 있어 오히려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은 커지는 모양새다.
22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전날 구윤철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은 주요 1급과 소관 국·과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회의를 열고, 미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무효 판결에 따른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정부 대책은 일단 산업별 영향을 점검하며 신중하게 접근한다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정부는 관세 협상에서 합의했던 대미 투자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청와대는 전날 열린 관계 부처 합동 회의에서 “대미투자특별법 입법 추진 상황을 점검하고, 공청회 등 입법 절차를 차질 없이 진행하자는 데에 뜻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정부의 신중 기류는 미국 대법원 판결에도 ‘관세 영향권’이 여전히 지속되고 오히려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이번 판결로 대통령의 포괄적 재량권은 제한됐으나,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법 122조에 근거해 전 세계에 1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가 하루 만에 15%로 올렸다. 여기에 무역법 301조를 통해 추가 관세 부과도 예고한 만큼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도 향후 트럼프 행정부가 수시로 불공정 무역 조사를 개시하는 ‘상시적 압박’ 체제로 전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로 대통령의 포괄적 재량권은 제한됐지만 실질적으로 무역 압박이 완화될리는 없다는 전망이다.
고준성 산업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15%로 모든 품목에 상호관세를 부과하는 방안보다 수출 비중이 높은 품목에 고율의 품목관세를 부과하면 오히려 경제에 미치는 타격은 클 수 있다”며 “관세에 따른 불확실성이 이전보다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무역법 301조는 국가별로, 무역확장법 232조는 품목별로 주로 적용된다”며 “이에 따라 업종별 유불리가 크게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 때도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수입산 철강·알루미늄 상품에 각각 25%,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또 같은 해 무역법 301조를 통해 중국산 상품에 최소 7.5%에서 최대 25%의 관세를 수차례에 걸쳐 적용했다.
일각에선 대미 투자 이행에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참여연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이번 판결로 3500억 달러라는 막대한 금액의 대미투자를 약속한 한미 경제안보 합의의 근거가 무너졌다”며 “정부는 즉시 한미 간 합의를 원점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나서서 대미 투자 재협상을 요구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일본이 가스 화력발전과 원유 수출 인프라 정비, 인공 다이아몬드 등 구체적인 대미투자 계획을 밝히고 2차 프로젝트 협의도 하고 있는 상황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트럼프는 위헌 판결에도 관세 카드를 내려놓지 않을 것”이라며 “관세 정책이 미 직접투자 유치에 초점을 두는 만큼, 한국도 대미 투자 이행을 흔들림 없이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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