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자산 3억·5억·10억, 규모별 현금 흐름 설계법 [김병철의 연금술]

김병철 한국 퇴직연금개발원 대표 2026. 2. 2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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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규모에 따라 달라지는 인출 전략과 노후 생활비
국민연금·퇴직연금·금융자산을 결합해 평생 소득을 만든다

(시사저널=김병철 한국 퇴직연금개발원 대표)

"내일의 일은 내일이 걱정하게 하라."

성경 마태복음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이 문장은 흔히 오늘에만 충실하라는 낙관적 위안으로 읽힌다. 하지만 필자는 이 문장을 전혀 다르게 해석한다. 이는 무책임한 긍정이 아니라,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인 '내일'을 인간이 유일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인 '시간'에 맡기라는 통찰에 가깝다. 다시 말해, 오늘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억지로 끌어안지 말고,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풀리도록 삶의 구조 자체를 설계하라는 조언이다.

필자는 연금의 본질을 바로 이 지점에서 찾고 싶다. 연금이란 미래의 불확실한 생존을 대비해 오늘의 일부를 떼어내, '시간'이라는 바다로 배 한 척을 띄워보내는 행위다. 배를 띄울 당시에는 그저 작은 화물 몇 상자를 실은 소박한 배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배가 시간의 바다 위에서 수많은 항구를 거치며 항해하는 동안, 우리가 실어보낸 가치는 다른 가치들과 끊임없이 교환되고, 복리라는 조류를 타며 증식된다.

긴 항해 끝에 노후라는 항구에 이르렀을 때, 그 배는 더 이상 빈 배가 아니다. 남은 생을 지탱해줄 보화로 가득 찬 배가 되어 돌아온다. 결국 연금의 본질은 '얼마를 모았는가'라는 결과에 있지 않다. 시간이 나를 위해 일하게 만드는 항로를 어떻게 설계했는가, 그리고 그 기다림의 시간을 어떻게 견뎌냈는가에 그 핵심이 있다.

ⓒChat GPT 생성이미지

노동소득의 황혼, 자본소득의 여명

우리는 평생 재산을 축적하기 위해 분투한다. 젊음과 시간을 저당 잡아 노동의 대가를 벌고, 그 소득으로 자산을 형성한다.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재산 형성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몸을 써서 얻는 노동소득, 그리고 부동산과 금융 투자를 통해 얻는 자본소득이다.

은퇴 이전의 삶은 '축적과 소모'가 끊임없이 교차하는 시간이다. 내 집 마련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자녀의 교육과 결혼, 일상의 소비와 여행에 상당한 자산이 투입된다. 부동산은 주거라는 필수 기능 위에 투자 성격이 얹혀 있지만, 우리는 은퇴 직전까지 끊임없이 돈을 쓰며 자산을 만들어간다.

문제는 은퇴와 동시에 찾아오는 소득의 절벽이다. 노동소득은 급격히 사라지고, 남은 삶은 오직 자산이 만들어내는 소득에 의존해야 한다. 이때 우리는 비로소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한다. "과연 얼마를 모아야 은퇴 이후의 삶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자연스럽게 은퇴 자산의 운용과 연금이라는 실존적 문제로 이어진다.

은퇴 이후의 소득은 크게 세 갈래로 구성된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그리고 개인이 운용해온 자산에서 발생하는 수익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산에는 금융자산뿐 아니라 주택연금으로 전환 가능한 부동산 가치까지 포함한 총자산 개념이 들어간다.

총자산이 5억원이라고 가정해 보자. 이 자산의 원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지속 가능한 소득을 만들기 위해서는 연 7% 운용이라는 기준이 하나의 이정표가 된다. 이 중 물가상승률에 해당하는 2%는 재투자해 자산 가치를 유지하고, 나머지 5%를 생활비로 인출하는 방식이다. 5억원의 5%는 연 2500만원, 월 약 200만원이다. 여기에 국민연금이 더해진다면 노후의 기본 생활은 안정권에 들어선다. 필자는 이 지점을 재산이 줄어들지 않는 '불사의 자산'이 형성되는 기준선이라고 본다.

총자산이 10억원에 이르면 풍경은 달라진다. 같은 구조로 운용할 경우 월 400만원 이상의 투자소득이 발생하고, 국민연금을 합치면 월 600만원 이상의 현금 흐름이 가능해진다. 이는 경제적 결핍 없이 품위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성공적 은퇴 모델이다.

10억 손실이 가르쳐준 돈의 무게

반대로 총자산이 3억원 수준이라 해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 이 경우에는 '4% 룰'을 변형한 인출 전략을 고려할 수 있다. 연 7% 수익을 전제로 이자 5%와 원금 4%를 합쳐 매년 9%를 인출하는 방식이다. 원금은 점차 줄어들지만, 고령으로 갈수록 지출이 감소하는 생애주기를 감안하면 이는 자산을 남김없이 태워 삶을 지탱하는 합리적 선택이 될 수 있다.

필자의 지인은 금융 전문가로 살아왔지만, 그는 뼈아픈 실패를 겪었다. 노후 준비라는 명분으로 프랜차이즈 커피숍 두 곳에 투자했다가, 불과 3년 만에 투자금 전부를 잃고 철수했다. 자존심의 상처보다 더 컸던 것은 사라진 돈의 실체적 의미였다. 그 돈은 단순한 현금이 아니었다. 은퇴 이후 수만 시간의 불안을 미리 지불해둔 '자유의 총량'이었고, 매달 수백만원의 현금을 영구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연금의 씨앗이었다. 이 실패를 통해 그는 분명히 깨달았다고 한다. 우리는 재산을 모으는 데는 집착하지만, 그 재산을 어떻게 쓰며 살아갈 것인지는 거의 고민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이 경험은 또 다른 희망을 보여줬다. 최저임금 수준의 소득으로 40년간 성실히 노동하더라도, 퇴직연금 제도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은퇴 시점의 자산은 이미 3억원을 넘을 수 있다. 문제는 모을 수 있느냐가 아니라, 그 자산을 어떻게 연금술처럼 운용하느냐다.

많은 사람이 노후를 불안해한다. 그러나 내일의 걱정은 내일이라는 시간이 하게 두어야 한다. 우리가 오늘 해야 할 일은 불안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돕도록 설계된 구조를 준비하는 것이다.

은퇴 이후의 삶은 더 이상 축적의 경쟁이 아니다. 모아둔 자산을 어떻게 삶을 지탱하는 금으로 바꿀 것인가를 고민하는 예술의 영역이다. 

김병철 한국퇴직연금개발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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