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지각비, 주식 지각비 [유레카]

서보미 기자 2026. 2. 22. 16:0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지각에 물리는 벌금을 뜻하는 '지각비'는 박정희 정권 시절 뉴스에도 등장했다.

1977년 12월29일치 동아일보를 보면, 송년회를 맞은 국회 공화·유정 합동조정위원들이 지난 1년간 모임에 10분 이상 늦을 때마다 5천원씩 걷은 지각비로 간사인 신광순 의원에게 양복을 선물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던 문재인 정부 시절,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지각비 5천만원', '1년 지각비 2억원'이라는 비명이 터져나왔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각에 물리는 벌금을 뜻하는 ‘지각비’는 박정희 정권 시절 뉴스에도 등장했다. 1977년 12월29일치 동아일보를 보면, 송년회를 맞은 국회 공화·유정 합동조정위원들이 지난 1년간 모임에 10분 이상 늦을 때마다 5천원씩 걷은 지각비로 간사인 신광순 의원에게 양복을 선물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지각비가 모임이나 조직에서 시간 약속을 잘 지키게 하는 자율적인 규율 장치로만 이용됐던 건 아니다. 2000년대에 들어 지각 벌금을 여성을 착취하는 도구로 쓴 성매매 업주, 노동자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한 회사 사장의 기사가 자주 보도됐다.

신문 사회면에서 보던 이 단어는 2020년을 전후로 재테크 은어로 변신했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던 문재인 정부 시절,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지각비 5천만원’, ‘1년 지각비 2억원’이라는 비명이 터져나왔다. 이때 지각비는 ‘그때 집을 샀더라면’ 하고 각자가 머릿속으로 계산하는 가상의 손해를 뜻한다. 매수 타이밍을 놓쳤다는 자책과 고통스러운 상황을 만든 정부를 향한 분노가 담긴 신조어다.

‘내 집 마련이 늦을수록 지각비만 더 세진다’는 믿음은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집값 안정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공시키겠다”고 약속했지만,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3억원, 5억원의 지각비를 주고서라도 매수하겠다며 연초부터 임장(현장 답사)을 다니는 투자자·실수요자도 적지 않다.

어디 부동산뿐일까. 코스피지수가 5800선을 넘어선 최근에는 ‘이제라도 지각비 물고 주식시장을 따라가야 하느냐’, ‘100만원 지각비 내고 주식 시작했다’는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지각비 내면서 금, 은을 모은다’는 이들도 있다.

‘늦은 타이밍=비용’이라는 세계관은 점점 확장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결혼과 출산, 취업과 이직에도 지각비라는 말이 붙는다고 한다. 듣기만 해도 마음을 조급하게 만드는 이 ‘지각비 사회’에선, 어떤 선택을 하든 남들과 속도 경쟁을 벌여야 한다.

조금 덜 비싸게 아파트와 주식을 샀다고 불안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지각비 내고 시장에 참여한 뒤 ‘잘한 선택인지 모르겠다’, ‘돈을 날릴까 봐 초조하다’, ‘허탈하다’는 후기가 줄을 잇는다. 물론 그마저도 빚을 내서라도 지각비를 감당할 수 있는 이들만의 얘기다.

서보미 전국부 기자 spring@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