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있다] “지역서 책 만드는 나의 사명, 이곳 이야기 더 널리 가닿도록”

주성희 기자 2026. 2. 22.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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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이지순 뜻있는도서출판 대표
창원서 출판사 책방 운영하며
소재와 작가 ‘지역성’ 중요시해

방치된 마산 지하련 주택 소재로
수필이나 소설로 펴낼 계획도

스스로 책에서 삶의 힘 얻었듯
‘뜻있게’ 잇고 전파하려는 의지
'지역발상'은 우리가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여기'를 살피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지역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자기 언어로 지역을 말해온 예술인들이 있습니다. 문화체육부 신년기획 '여기, 있다'에서는 이런 예술인을 주목합니다. '여기'는 지역, 현재를 뜻하고, '있다'는 존재한다는 강력한 선언입니다.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고단한 길이지만, 지금도 지역의 어느 예술가는 자신이 사는 곳을 꾸준히 기록하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만나 '여기, 있는' 이유를 들어봅니다.
창원시 성산구에 있는 뜻있는 책방 내부 모습. /주성희 기자

창원시 성산구 아이파크아파트상가 2층에 '뜻있는 책방'이 열렸다. 창에 '뜻있는 책방'이라고 커다랗게 쓰여있어, 훤한 유리창문이 왠지 반갑다. 이곳은 이지순(60) 뜻있는도서출판 대표가 만든 책방이다.

"책을 사도록 권하고 추천하려면 내가 많이 읽어서 알고 있어야 해요. 종일 책방에 앉아 책을 읽고 보이차를 마시고 있으니 언제든 오세요. 책 이야기 마음껏 하게요."

이 대표는 2021년 <새로 쓰는 주역강의>로 첫 책을 출판했다. 이어 2023년 4월 뜻있는도서출판 현대문학 임프린트(하위 브랜드)인 사유악부를 만들어 지역에서 의미 있는 책을 한 권 한 권 쌓아 올리고 있다. 그에게서 삶을 살아가는 방식, 지역에서 어떤 책을 낼 것인가의 고민 등을 들었다.

살아가는 이유 알려주는 책
이지순 뜻있는도서출판 대표가 뜻있는책방 서가에 있는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주성흭 기자

책방은 세로로 긴 공간이다. 제일 긴 벽면에 서가를 두고 책을 쌓았다. 최근에 이 대표의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은 책들은 작은 책상 위에 빼꼼히 나와 있기도 하다. <내면소통>(인플루엔셜), 말콤 글래드웰의 <당신이 무언가에 끌리는 이유>(김영사), <조화로운 삶>(보리) 등 분야가 다양하다. 이 대표가 소장 가치가 있다고 엄지를 치켜세운 책은 <신영복 전집>(돌베개·2026)이다. 올해 1월에 출간된 11권이 멋스러운 검은색 곽에 알차게 들어있다.

그는 말하는 이와 시선을 맞추면서 책을 추천했다. 굳이 사라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책을 사게 만드는 희한한 책방이었다. 서가에는 뜻있는도서출판과 사유악부가 낸 책도 물론 있다. 그는 꼭 자신의 출판사에서 낸 책이 아니더라도, 어떤 책이든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고 있다.

처음에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에 책방을 열었다가 지난해 10월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이 대표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옮긴 것이기는 하지만, 그는 창동을 떠난 게 못내 아쉽다.

"창동은 마산의 중정 같아요. 다시 책방을 열게 된다면 '중정책방'으로 열어야지 싶어요."

지난해 이 대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심하게 앓았다. 몸이 아파도 창동 골목을 거니는 일은 계속했다. 이 덕분에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는 생각도 막연하게 해본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아플 때는 보이차를 마셨다. 책방에는 다기도 마련해 뒀다. 아직 개시하진 않았지만, 대용량 전기 물통도 갖췄다. 보이차는 녹차와 다르게 펄펄 끓는 물에 우려서 마시기 때문이다. 보이차에 대한 이야기는 <건강을 마시는 습관, 보이차>(전나무숲·2024)를 통해 알게 됐다.

이처럼 이 대표에게 생활의 시작과 끝은 책이다. 이 대표 스스로가 책으로부터 힘을 얻어온 덕분이다. 그는 몇 번이고 뜻있는 책방의 서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책 한 권 읽고 나면 삶의 의욕이 벌떡 일어나요. 책 한 권을 잘 읽고 나면 너무너무 흐뭇하고 뿌듯하고 충만하죠."
이지순 뜻있는도서출판 대표가 창원시 성산구에 있는 뜻있는 책방에서 책을 읽고 있다. /주성희 기자

지역성 담아 꾸준히 출판

그동안 사유악부에서 낸 두 책 <사랑의 다른 말>(2024)과 <우포늪 나무의 시간들>(2024)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문학나눔'으로 2년 연속 선정됐다. 이 대표는 모두 지역성을 지녔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지역성을 담은 책을 계속 내놓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편집장인 성윤석 시인에게 허락을 구한 이 대표는 계획 중인 책에 관해 미리 말해주었다. 소설가 지하련(본명 이숙희)과 그의 배우자이자 항일독립운동가 임화가 주인공인 책이다.

2015년 6월 24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에 있던 오래된 주택이 불이 났다. 시민사회와 학자들은 그 불에 탄 주택이 엄청난 역사를 지닌 주택임을 강조하면서, 재개발 구역에 있지만 원형보존의 필요성과 방향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 주택은 '지하련 주택'이라고 불린다.

이 주택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건축학·문학·역사적인 가치가 압축돼 있기 때문이다. 지하련의 셋째 오빠 이상조가 토지를 매입한 후 새로 지은 집인데, 지상 2층 목조 가옥으로 일식 시멘트 기와지붕으로 구성됐다. 일제강점기 때 한국인이 살았던 고급 주택이 이처럼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건 흔치 않다. 또 지하련이 요양차 그 집에 머물던 때가 1940년이었고, 그의 남편인 임화도 그 집을 드나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하련이 그 주택에 머무는 동안 '일기', 단편소설 '결별', '체향초'를 쓴 것으로 추측된다. '결별'은 지하련의 등단 작품이다. 당시 내놓은 작품들은 1930년대 중후반, 1940년대 초반 마산에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기에 지하련 주택의 장소적 의미는 무엇보다 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화재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지하련 주택은 노후화되고 방치된 채로 있다. 시민들은 지하련 주택도 지하련도 점점 잊어가는 현실이다. 이 대표는 골조만 남고 폐허와 다름 없는 지하련의 주택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는 지하련의 존재를 가벼이 여길 수 없었다. 그래서 책으로 담기로 했다.

기획 단계라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시간의 문제일 뿐 출판은 무조건 하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책의 형식은 수필이 될지, 소설이 될지 더 고민하고 논의해 봐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다만 저자는 정해졌다. 성윤석 시인이 임화가 돼 시를 쓰고, 김애영 작가가 지하련이 돼 소설을 쓸 예정이다.

지역 출판으로 지역에 기여
성윤석 시인의 시 창작 모임 '맹렬한 시작' 시판. /주성희 기자

내고자 하는 책이 더 많지만, 소개해 줄 책이 한 권이 더 있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황원호 목수가 참여했던 시 창작 모임 '맹렬한 시작(詩作)'이 써 내려갔던 시를 책으로 엮을 예정이다. 황 목수는 마산에서 태어나고 자라 <경남매일>과 <경남도민일보>에서 기자로 있다가 2007년에 경남 도민 프로축구단 경남FC 창립 구성원으로 있었다. 이후 2012년 12월 31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에 '창동모꽁소'를 열었다. 목수로 일하면서 사회에 봉사하고 기부하며 사람들을 끌어안으려 했다.

성 편집장도 '맹렬한 시작'에 함께 하고 있었기에 황 목수가 나무로 깎아 만든 현판이 뜻있는 책방에 걸려있다.

이 대표가 살아가는 이유와 책을 내는 목적은 그 맥을 같이 한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선비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책임과 사명이다.

옛말에 벼슬길에는 녹사와 행도가 있다고 했다. 녹사는 녹을 받아서 가족 먹여 살리는 일이다. 행도는 도를 행해서 나라를 발전시키고 백성 잘살게 하는 일이다. 이 대표는 이제 녹사의 삶은 어느 정도 마무리한 나이대가 됐다. 그러니 행도를 해야 할 때라고 그는 설명했다.

"출판사를 열심히 운영해 돈을 벌어서 지역에 의미 있는 책을 내려는 것은 사명감 때문이기도 해요. 또한 이런 책이 나오면 독자에게 가 닿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겠지요."

이 대표는 모든 말에 힘을 주지 않고, 웃음과 함께 흘러 넘어가게 두기도 한다. 이 대표가 웃을 때 크고 굵게 만들어지는 눈웃음이 매력적이라 눈에 띈다. 그 눈웃음은 그의 노고나 고민을 살짝 감추는 기능도 있다. 웃음으로 가렸지만 그가 운영하는 출판사가 '뜻있게' 이어 나가야 한다는 의지가 전해졌다.

/주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