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투쟁, 두 번의 수감…하총치 3.15의거 열사 별세
1·2차 항쟁 참여 여파로 경찰에 체포돼 수감 생활
지난 18일 지병으로 사망…이틀 뒤 동지 곁에 안치

독재 정권에 항거하다 두 차례 '옥고'
하 열사는 1941년 8월 19일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해방 후 마산으로 이주했다. 교방동에서 어머니, 남동생과 셋이 살았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다. 가난 속에 청소년기를 보냈다.
고등학교 졸업 한 달 뒤인 1960년 3월 15일, 3.15의거 시위대열에 합류했다. 그날 오전 9시께 "투표권이 안 나왔으니까 찾아봐라"라는 어머니 말이 계기였다. 동사무소를 찾았다가 어지럽혀진 현장을 목격했다. 자유당 사람들만 모여 수군대고, 민주당 참관인은 보이지 않았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 열사는 이날 오후 시위대 틈 속에서 마산시청 앞을 둘러싼 경찰들을 겨냥해 돌을 던졌다. 선거를 다시 하자고 하면서다. 경찰은 공포탄과 최루탄을 발포했다.
곳곳에서 실탄사격까지 이어졌다. 하 열사는 무학국민학교 담장 안으로 몸을 피했다. 함께 도망친 이들 중 여성들이 치마에 돌을 담아 나눠주면, 그 돌을 다시 담장 위로 올려 수비진을 쳤다. 얼마 가지 않아 무학산으로 도망쳤다.
다시 북마산 쪽으로 가던 길에 포위됐다. 하 열사는 오동동 한 탁구장에 몸을 숨겼지만, 경찰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탁구대 위에 쌓아뒀던 일부 돌덩이가 시위 참여 증거가 됐다. 수갑이 채워졌고, 몽둥이가 날아들었다.


마산형무소로 이감됐다. 검찰 조사까지 받고 나서 그해 3월 26일에야 석방됐다. 몸이 성치 않았지만, 집에서 상처를 추슬렀다. 치료 도중 김주열 열사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서 떠올라 도립마산병원(현 마산의료원)으로 옮겨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4월 11일이었다.
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에 달려갔다. 김주열 열사 시신을 마주했다. 분노한 시민들이 2차 시위를 전개했고, 일부는 마산시청 유리창을 깨부수며 반발했다. 하 열사는 확성기를 단 차를 타고 북마산 일대를 돌며 부정선거 규탄 목소리를 냈다.
그는 다음 날 또다시 체포됐다. 마산어시장 성냥공장에 숨어 있다가 발각됐다. 두 번째 구금이다. 경찰은 하 열사에게 친한 친구 9명과 찍은 사진을 들이밀었다. "3명만 찍으면 빼주겠다"고 했다. 그래도 "막걸리 한잔하다 찍은 사진일 뿐"이라며 입을 열지 않았다.
두 번째 형무소 수감 때 한 교도관은 그에게 "이 새X 두 번이나 오네"라며 비아냥댔다. "4월 27일날 사형될 예정이니 각오하라"는 말도 했다. 예고된 사형일 3일 전부터는 밥이 넉넉하게 나오고, 하루 3시간씩 바깥바람까지 쐬게 해줬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하 열사는 4월 26일 이승만 하야 후 석방되면서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긴장이 풀린 몸이 버티지 못했다. 실신 후 도립마산병원에 입원했다. 1년 정도 입원 치료받은 끝에 퇴원했다.
3.15의거 참여, 평생 남은 자부심
하 씨는 고문 후유증으로 몸이 편치 않아도 평생 자부심 하나로 삶을 버텨냈다. 16년 전 3.15의거기념사업회에 남긴 증언록에서 그는 "참지 못해 나섰고,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런 말도 꺼냈다. "젊은이로서 당연한 일을 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했다는 사실이 기쁘다. 자부심을 품고 살아가겠다."
그는 3.15의거 37년 뒤인 1997년에야 뒤늦게 4.19혁명 부상자로 등록됐다. 두 번의 투쟁, 두 번의 옥고를 치렀지만, 국가 예우는 충분하지 못한 셈이다. 실제 민주주의를 지킨 유공자 삶은 제도 속에서 방치됐다.



국립3.15민주묘지관리소(소장 이성철)는 '내란 수괴' 윤석열 씨가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다음 날인 지난 20일 3.15기념관에서 영결식을 진행했다. 묘역에서 안장식도 엄수했다.
하 열사가 묻힌 곳은 생전 술친구 옆자리다. 유가족들은 영결식 후 유영봉안소 밑 3.15묘역에 서서 "친구 옆에서 잠드시게 됐네"라며 반겼다.
삽을 들고 허토를 한 유가족들이 열사를 떠나보면서 눈물을 터뜨렸다. 큰딸 하수정(47) 씨는 장례 절차를 마무리한 뒤 묘역을 떠나기 전 이런 말을 남겼다.
"아버지는 민주주의 신념이 확고한 분이었다. 이승만 정권 부정선거 이야기를 가족들에게도 많이 하셨다. 윤석열 전 대통령 당선 뒤쯤부터는 치매 문제로 말씀을 잘못하셨고, 뉴스도 못 보셨지만, 독재를 용납하지 못하는 분이었다."
추가로 아버지에게 전하고 싶은 말도 덧붙였다. "아버지에게는 2023년 13살 나이로 먼저 하늘나라로 간 손녀가 있었다. 제 큰 딸인데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손녀였다. 생전에 아버지는 손녀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걸 좋아하셨다. 이제 하늘에서 손녀와 함께 둘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최석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