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올림픽’ 우리는 성숙해진 걸까, 무관심해진 걸까 [남인숙의 신중년이 온다]

남인숙 작가 2026. 2. 2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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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이 한마음이었던 88서울올림픽의 강렬한 추억…그땐 메달 자체가 국위선양
이젠 국가 이벤트에서 콘텐츠로 바뀐 스포츠 소비의 시대 살아

(시사저널=남인숙 작가)

"내일 동계올림픽 개막인 거 알고 있었어?" 며칠 전 지인과 대화하다 이런 질문을 받았다. 그것은 근래 필자가 들은 가장 충격적인 말이었다. 아무리 스포츠에 관심 없는 사람일지언정 이렇게까지 '깜깜한' 상태에서 올림픽 소식을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사실 이번에 이탈리아 밀라노와 코르티나담페초에서 분산 개최되는 동계올림픽과 관련해서는 한국에서 '관심을 받고 있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화젯거리였다. 이 담론의 중심에는 한 종편채널의 중계권 독점 문제가 있었다. JTBC가 2019년 지상파 3사 코리아풀을 거치지 않고 IOC와 단독 계약을 했으며, 이후 이들 지상파 방송사들과의 재판매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게 골자다. 그런데 방송사의 중계권 독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대에 SBS가 올림픽 독점 중계권을 가져갔고 그때도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도 이번에는 비난의 강도가 다르다. 

2월6일 이탈리아 밀라노 산시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입장하는 한국 선수들 ⓒUPI 연합

사상 초유의 지상파 3사 올림픽 중계 포기

가장 큰 이유는 접근성 문제다. 이번 올림픽 경기를 실시간으로 보려면 TV를 틀어 유료 케이블 채널에 들어가거나 네이버 스포츠에 접속해야 한다. 그나마 JTBC 메인 채널이 아니라 자회사 스포츠 채널 여러 곳에서 중계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TV를 켜도 한참 뒤로 넘겨야 한다. 케이블 사업자에 따라 900번대까지 채널 재핑(Zapping)을 해야 올림픽 중계를 볼 수 있다. SBS가 지상파 방송국이어서 누구나 TV를 틀면 볼 수 있었던 것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다. 

스포츠 이벤트는 각종 SNS에서 공유되는 콘텐츠로 확산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그마저 차단됐다. 원래 IOC에서는 중계권 보호를 위해 SNS에서 경기 장면 사진이나 클립 공유를 금지하고 있지만 그간 엄격하게 제한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네이버가 JTBC의 공식 온라인 파트너가 되면서 전에 없이 적극적으로 콘텐츠를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림픽 관련 한국어 게시물은 빠른 속도로 신고되어 사라진다. 한마디로 우리가 올림픽을 '우연히' 발견할 확률이 현저히 낮아진 것이다. 이렇게 화제성이 낮아진 탓에 다른 언론매체들에서도 올림픽을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단지 어느 방송사업자의 과욕이 낳은 부작용일 뿐인 걸까?

애초 이 사달이 난 것은 지상파 3사가 JTBC가 재판매하는 중계권을 구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잡한 중간 과정을 원초적으로 정리해 이유를 따져보면, 너무 비쌌고 투자한 만큼 회수할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다. 올림픽 중계는 더 이상 전처럼 돈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중년을 통과하고 있는 이들에게 올림픽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이벤트다. 한국이 전 세계에 존재감을 드러낸 데뷔 무대가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고, 실제로 올림픽 개최를 전후해 전에 없는 호황을 경험했다. 동시에 해외에 나가면 사람들이 대체로 코리아가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걸 확인하는 게 기본값이었던 시대이기도 했다. 자부심과 인정 욕구를 동시에 갖고 있던 우리에게 '올림픽 챔피언'이라는 영어 소개 멘트와 함께 한국인이 가장 높은 시상대에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짜릿한 경험이었다. 그것을 국위선양이라고 부르는 데 이견이 없었다.

그 무렵 각 선진국에 사는 지인들에게 그 나라 사람들은 올림픽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기 나라를 대표해 출전한 사람이 전 세계 사람들과 실력을 겨루는데 어떻게 목 놓아 응원하지 않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 사회는 십여 년 전의 그 '유명한 나라들'처럼 올림픽 메달과 각자의 성취를 의식 속에서 분리하고 있다.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아시아》에 출전한 몽골팀 ⓒ넷플릭스 유튜브 캡쳐

《피지컬: 아시아》에서 진심 다하는 몽골팀 응원

지난해 10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피지컬: 아시아》는 아시아 8개국 대표들이 출연해 국가대항전을 벌이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세계적인 흥행 대열에 합류한 이 시리즈는 한국에서도 꽤 화제가 되었는데, 정작 가장 많이 언급된 출연자들은 자국팀이 아니라 몽골 대표팀이었다. 몽골 참가자들의 압도적인 기량, 성실함, 감동적인 서사 등이 영향을 준 것이다. 온라인에서는 몽골팀이 우승하면 좋겠다는 한국인들의 응원글도 꽤 보였고, 그에 동조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제 한국인들도 국가가 정해준 응원 대상이 아니라 매력적인 진검승부를 보여주는 이들의 경기를 소비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일이었다.  

원래 현대 올림픽은 아마추어리즘에서 출발했다. 상금 없이 오로지 명예만 주어지는 것이 그 흔적이다. 현재는 전문 선수의 출전 금지 조항이 폐기되었지만 해외에서는 여전히 본업이 따로 있는 선수들이 출전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초기 올림픽의 주축이었던 서구 선진국들에서는 올림픽 메달은 국력의 증거라기보다는 개인의 영광이라는 일반의 인식이 더 강하다. 생활체육 기반이 약한 한국에서 본업이 목수인 스키 금메달리스트(스위스)나 직장인만으로 구성된 컬링 대표팀(미국)이 나오기는 힘들겠지만, 국가대표라는 역할과 자아를 동일시하는 인식만큼은 그들을 따라가고 있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비인기 종목 경기에 새삼 몰입하며 국가적 자존심을 찾던 시절에 비해 나라의 위상이 많이 달라진 게 가장 큰 이유다. 전 세계에 동시 송출되는 스포츠 중계방송에서 애국가가 흘러나오는 순간의 감격은 K팝, K드라마 등 한국 문화가 세계를 점령하다시피 한 상황에선 많이 무뎌졌다. 선수 개인의 영광을 국위선양으로 확장해 감정이입을 하게 만드는 환경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제 올림픽을 챙겨 보는 사람들도 메달 개수보다는 경기 자체의 재미에 초점을 맞추어 관람하고 있다. 

《피지컬: 아시아》에서 몽골을 응원하던 한국 시청자들의 감정은 복합적인 것이었다. 절반은 이제 다른 국가와의 경합에서 이겨야만 구성원으로서 자존감을 챙길 수 있는 시대를 지나 온전히 경기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된 여유,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전폭적인 국가적 지원과 응원을 등에 업은 몽골 대표팀의 서사에서 과거 우리 모습을 본 데 따른 공감이었다. 어쩌면 그 응원 속에는 한때 그랬던 것처럼 온 나라가 한 방향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간절히 원했던 시절에 대한 은근한 그리움도 섞여 있었는지 모른다.

설 명절에 모이고도 대화거리가 없는 가족이 올림픽 중계를 함께 보는 광경은 올해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올림픽 기간에 TV를 켜면 무조건 경기를 보게 되는 시대가 지나가고 있는 것을 목격하는 세대로서, JTBC가 중계권을 확보해 놓은 다음 하계올림픽은 어떻게 될지, 전 세계적으로 급전직하하고 있는 올림픽의 위상과 우리 사회의 변화가 궁금하다. 우리는 성숙해지고 있는 걸까, 무관심해지고 있는 걸까. 

남인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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