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의 글로벌AI] “기술 덧칠은 끝났다”… AI스타트업, 이런 곳만 살아남는다
AI 거품 빠지고 수익성과 차별성을 증명해야 할 단계
"빨간불 켜지기 전 지식재산권·데이터 확보해야"
국내 '문서작성 AI'나 'AI 경로' 역할 기업들에 경고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시장에 경고등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수조원의 벤처 자금이 쏠리며 '묻지마 투자'의 대상이 되었던 AI 스타트업 중 상당수가 지속 불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에 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구글의 부사장이 직접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스타트업의 유형을 구체적으로 지목하면서 업계에 파장이 일고 있다.
IT 전문매체 테크크런치는 자사의 팟캐스트 '에쿼티'(Equity)에 출연한 구글 클라우드 글로벌 스타트업 부문 부사장 대런 모우리(Darren Mowry)의 발언을 인용해 '살아남지 못할 두 가지 유형의 AI 스타트업들'을 소개했다. 모우리 부사장은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아마존웹서비스(AWS)를 거쳐 현재 구글에서 스타트업 생태계를 총괄하고 있는 인물로, 그의 발언은 현재 AI 산업의 거품이 빠지고 수익성과 차별성을 증명해야 하는 냉혹한 검증 단계에 진입했음을 시사한다.
모우리 부사장이 가장 먼저 지목한 위험군은 'LLM 래퍼(Wrapper)' 기업들이다. 래퍼란 구글의 제미나이, 오픈AI의 챗GPT, 앤스로픽의 클로드와 같은 기존 거대언어모델(LLM) 위에 얇은 사용자 인터페이스(UI)나 특정 기능을 덧입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을 말한다.
이들은 초기 시장에서 '빠른 실행력'을 무기로 성과를 내는 듯 보였다. 예를 들어 복잡한 법률 문서를 요약해 주거나, 특정 어투로 마케팅 문구를 생성해 주는 서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모우리 부사장은 "단순히 기존 모델을 화이트 라벨링(White-labeling, 타사 제품에 자사 브랜드만 붙여 파는 것)하는 수준의 스타트업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고 단언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LLM을 개발하는 파운데이션 모델 제공업체들이 직접 그 기능을 자사 모델에 통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기에 유료 서비스로 제공되던 'PDF 요약'이나 '이메일 초안 작성' 기능은 이제 챗봇의 기본 기능이 됐다. 기초 체력(모델 성능)이 좋아질수록 그 위에 얇게 얹어진 서비스들의 가치는 수직 하락할 수밖에 없다. 사용자들은 이제 단순한 편의성을 넘어, 특정 산업 분야에 깊숙이 뿌리 내린 '수직적 가치'(Vertical Value)나 그 기업만이 가진 고유한 데이터 학습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두 번째로 사라질 운명의 기업 유형은 이른바 'AI 수집가(Aggregator)' 기업들이다. 이들은 여러 개의 LLM을 하나의 인터페이스에서 사용할 수 있게 연결해 주거나, 사용자의 질문에 따라 가장 적합한 모델로 라우팅(Routing)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퍼플렉시티(Perplexity)와 같은 AI 검색 엔진이나 여러 모델의 API를 통합 관리하는 플랫폼들이 이 범주에 포함된다.

모우리 부사장은 이러한 모델이 강력한 지적재산권(IP)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심각한 마진 압박에 시달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빅테크 기업들이 운영하는 클라우드 플랫폼(구글 클라우드, AWS 베드록, 애저 AI 등) 자체가 이미 멀티 모델 환경을 표준으로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대 플랫폼이 보안, 거버넌스, 비용 최적화 기능을 기본으로 탑재하기 시작하면서, 단순히 모델을 모아놓기만 하는 중간 매개자들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모우리 부사장은 이를 자신이 경험했던 초기 클라우드 시장에 비유했다. 클라우드 도입 초기에는 AWS나 MS 인프라를 단순히 재판매(Resale)하던 업체들이 호황을 누렸으나, 거대 기업들이 직접 엔터프라이즈 도구를 구축하자 중개업체들은 마진 확보에 실패하며 도태됐다. AI 시장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반복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테크크런치는 모우리 부사장이 인터뷰 내내 "체크 엔진"(Check Engine)이라는 말을 했다고 전한다. 자동차 계기판에 엔진 이상 경고등이 들어왔을 때 즉시 점검하지 않으면 결국 차가 멈추듯이, 스타트업들도 초기 인프라 설계와 비용 구조에서 발생하는 경고 신호를 읽어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무료 크레딧의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많은 스타트업이 초기에는 구글이나 아마존이 제공하는 대규모 클라우드 크레딧과 GPU 지원을 통해 화려한 프로토타입을 만든다. 하지만 실제 고객이 늘어나고 유료 결제 단계로 전환되는 순간, 비효율적인 인프라 설계로 인해 클라우드 비용이 매출을 상회하는 역마진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빨리 만들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지속 가능한 사업인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 그의 메시지다.
그렇다면 어떤 기업이 살아남을 것인가. 모우리 부사장은 여전히 낙관적인 분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 개발자 전용 플랫폼 및 코딩 도구의 보유다. 리플릿(Replit)이나 러버블(Lovable)처럼 개발 환경 자체를 혁신하는 도구들은 2025년 이후에도 기록적인 투자를 유치하며 강력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둘째, 직접적인 소비자형 AI 제품이다. 영화나 TV 콘텐츠 제작에 활용되는 AI 비디오 생성기처럼 전문 영역에서 창작의 도구로 쓰이는 서비스들은 강력한 사용자 충성도를 확보하고 있다. 셋째, 바이오테크 및 기후 테크다. 방대한 과학적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신약을 설계하거나 탄소 배출을 줄이는 솔루션처럼, 기술적 진입 장벽이 높고 고유한 데이터 자산을 보유한 스타트업은 빅테크의 공세 속에서도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할 수 있다.
테크크런치의 보도는 기술의 평준화가 이루어지는 시대에 남들이 만든 엔진에 올라타기만 하는 '무임승차형 모델'은 더 이상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한국에도 'K-AI' 열풍 속에 많은 스타트업들이 등장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극소수를 제외하면 모우리 부사장이 지적한 '래퍼'와 '수집가'에 머무르는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차별적인 글을 써주는 도구로 출발했으나 LLM에 의존한 UI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기업이나 "모든 모델을 한 곳에서"라는 모토로 출발한 기업들의 거품이 빠지고 있다. 자신만의 고유한 데이터와 특정 산업에 특화된 문제 해결 능력을 증명하는 기업만이 'AI 새판 짜기'에서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규화 대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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