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싸게 만드는 시대 끝…차세대 승부처는 '유연성'

김리안 2026. 2. 22. 10:3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규섭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이제는 발전단가(LCOE)만 보고 에너지 믹스를 짤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계통 유연성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승부를 가를 것입니다.”

이규섭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지난 19일 서울대 엔지니어하우스에서 열린 공과대학 ‘이슈 앤 보이스(Issue & Voice)’ 포럼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번 포럼은 서울대 에너지 이니셔티브 연구단(SNUEI)과 함께 ‘탄소중립을 위한 여정: 기술로 완성하는 에너지 믹스’를 주제로 열렸다.

이 교수의 발제 핵심은 분명했다. 탄소중립과 첨단산업 확대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시대에는 단순히 ‘싸게 만드는 발전원’보다 전력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전원이 더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한 해법은 ‘유연성(플렉서빌리티)’이었고, 이를 확보하는 방안은 세 갈래로 정리됐다.

우선 발전원 자체의 유연성 강화다. 태양광은 낮에만 발전하고, 풍력은 바람 세기에 따라 출력이 달라진다. 기존 화력발전처럼 연료 투입을 조절해 출력을 맞추는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이 교수는 재생에너지 설비에 적용되는 인버터를 고도화해 출력 제어 기능을 강화하는 ‘스마트 인버터’ 기술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계통 상황에 따라 출력을 능동적으로 조정해 변동성을 완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윤재호 한국에너지공대 교수는 “태양광 가격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고, 배터리 비용도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며 “스마트 인버터까지 결합한 패키지형 재생에너지는 앞으로 유연성을 갖춘 친환경 전원으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태양광과 배터리의 결합 비용이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과 경쟁 가능한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원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 교수는 “원전은 24시간 일정 출력을 유지하는 것이 강점이지만, 수요 변동이 큰 계통에서는 오히려 경직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처럼 수요에 맞춰 출력의 상·하향 조정을 허용하는 유연 운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심형진 서울대 교수는 “대형 원전도 기술적으로 일정 범위 내 유연 운전이 가능하며, SMR은 보다 탄력적인 운영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여기에 더해 수소터빈 등 새로운 동기발전 기술도 계통 안정성을 보완할 수 있는 유연성 자원으로 언급했다.

두 번째 축은 수요를 통한 유연성 공급이다. 전력거래소의 패스트DR처럼 주파수가 급락하면 즉시 부하를 줄이는 수요반응(DR) 제도가 이미 운영되고 있다. 다만 참여 수요를 확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 교수는 특히 데이터센터를 새로운 유연 자원으로 주목했다. AI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만큼, 데이터센터를 단순 소비자가 아니라 조정 가능한 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데이터센터는 UPS 등 설비를 갖추고 있어 일정 범위 내에서 전력 소비를 유연하게 조정할 잠재력이 있다”며 “미국 전력연구원(EPRI)의 ‘DC 플렉스’처럼 서버 부하를 탄력적으로 조정해 계통 안정에 기여하는 모델을 국내에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은 저장기술이다. 이 교수는 “발전과 수요 양측에서 충분한 유연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결국 에너지저장장치(ESS)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ESS는 발전사업자도, 수요자도 아닌 ‘중간 영역’에 위치한 자원이라는 점에서 제도 설계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공 주도로만 보급이 이뤄질 경우 비용이 전기요금에 전가될 수 있다”며 “사업 구조와 비용 분담 방식을 어떻게 설계할지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에선 에너지 믹스 논쟁이 ‘원전이냐 재생이냐’의 이분법을 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안병옥 교수는 “기술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라며 “발전원의 특성과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시장과 제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균등화발전비용(LCOE)이나 실제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발전원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발전·송전·저장·수요를 아우르는 시스템 관점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에너지 분야도 보다 유연하고 소프트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그래야 사회의 기본 동력으로서 지속가능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면서도 경쟁력 있는 전력망을 구축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새로운 수출 산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좌장을 맡은 이종수 서울대 교수는 이를 “결국 최적화 문제”로 정리했다. 그는 “전력 시스템과 이를 둘러싼 제약 조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어떻게 최적화할 것인지가 핵심”이라며 “정부의 전력수급기본계획 역시 다양한 제약을 반영한 결과물인데, 기술 혁신이 그 제약을 완화하고 돌파구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