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속 “진짜 음식” 강조한 트럼프 정부… 美 ‘초가공식품 전쟁’ 실효성은 [세계는 지금]
제2차 세계대전 軍 간편식 보급 계기
가격·시간 가성비 장점… 가정식 보편화
성인 36% 비만 등 건강 부작용 속출
美 사회, 식품 안전성 위기 공감 증대
트럼프 행정부 첨가당 섭취 자제 권고
육류·채소 등 자연식품 중심 식단 강조
정책 실효성·가공식 최소화 유도 과제
전문가 “가공식 탈의존 수십년 걸릴 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첨가당’(added sugar), ‘초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로버트 F 케네디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월 새로운 식이(食餌) 지침을 발표하며 “첨가물과 첨가당, 과도한 소금이 가득한 고도로 가공된 식품은 건강을 해치며 피해야 한다.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나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진짜 음식(real food)을 먹어라”라고 강조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케네디 장관이 내건 ‘마하’(Make America Healthy Again·미국을 다시 건강하게) 의제 중 일부이기도 하다.
미 주요 언론들은 케네디 장관의 ‘마하’ 정책 중 백신 회의론 등에는 부정적이면서도 초가공식품, 첨가당 등 식품 안전성에 대한 경고를 내건 것에는 공감하는 기류가 상당하다. 그만큼 미국 사회의 식품 안전이 위기에 처했고, 미국인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가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뜻이다. 미국 화가 앤디 워홀의 통조림 수프 그림, ‘캠벨 수프’는 현대 미국을 상징하는 그림이 되었을 정도로 가공식품은 미국인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미국에서 유통되는 식품의 70%가 초가공식품이라는 통계도 있을 정도다.

가공식품의 발달은 19세기부터이지만, 본격적으로 미국에서 가공식품 수요가 급증한 것은 전쟁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분말 치즈, 탈수 감자, 통조림 육류 등 상온 보관이 가능한 식품들이 군인들에게 공급하기 위해 개발되었는데 이 식품들에는 방부제, 향료, 비타민 등 첨가물들이 첨가돼 전쟁 중의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식품회사들은 이를 전환해 가정에 보편적으로 보급하는 것으로 상품 개발 방향을 바꾼다. 이들은 가공식품들이 우수한 영양을 제공하며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설득하는 광고들을 내보냈다. 1950∼1960년대 미국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진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지만, 여전히 여성들은 집에서 가족들의 식사를 챙기는 역할이 기대됐다. 이 역시 식품회사들이 공략하는 포인트였다.
1970년대엔 비료·농약·작물 개발의 혁신과 농업 보조금 정책이 맞물리면서 곡물이 과잉 생산되기 시작했다. 1970년부터 1990년 사이 옥수수와 밀 공급량은 거의 두 배로 늘어났고, 이 곡물들은 오늘날 초가공식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값싼 원료들(고과당 옥수수 시럽, 식물성 기름 등)로 전환됐다. 이 과정에서 식품회사들이 로비를 통해 미국 정부의 식품 안전성 기준을 낮췄다.
1970년부터 1993년 사이 미국의 아동과 성인들 사이에서 고과당 옥수수 시럽 소비는 100배 증가했다. TV 광고의 발전은 미국인들에게 고과당 식품 광고를 자주 노출했다. 이 역시 식품회사 로비의 결과다. 1980~1990년대에 담배 회사가 소유한 식품 제조업체들은 나트륨, 지방, 탄수화물을 점점 더 중독성 있는 조합으로 결합한 제품들을 개발했다. 경쟁사들도 이에 뒤따랐다. 크래프트 푸드, 제네럴 푸드 등을 인수한 필립스 모리스 등이 대표적이다.

2000년대 미국 사회에서는 학교 급식을 포함해 초가공식품이 미국인의 삶을 거의 지배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2010년 미국 성인의 약 36%, 아동의 약 17%가 비만인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가 백악관에서 직접 딸들과 훌라후프를 돌리며 미국 청소년들에게 “움직여라(Move)!”고 촉구했을 정도다.
2011년 미국에서 논란이 된 이른바 ‘피자 토마토소스 야채’ 사건은 공화당 하원이 학교 급식의 피자에 들어가는 토마토 페이스트 2테이블스푼을 채소 1인분으로 인정하는 기존 규정을 유지하도록 오바마 행정부의 강화 기준(반 컵 요구)을 막은 데서 비롯됐다. 민주당은 이를 냉동식품 업계의 로비 영향으로 비판하며 “피자를 채소로 분류했다”고 공격했지만, 실제 법안은 피자를 채소로 규정한 것은 아니었고 토마토 페이스트의 채소 인정 기준을 둘러싼 공화당과 민주당 간 정책 충돌이었다. 비율이 어쨌건 토마토소스를 채소로 분류하는 기준이 미국에 있었을 만큼 초가공식품이 미국인의 식품을 지배하게 된 상징적 사례로 거론된다.

민주당은 공화당이 과거 일부 급식 정책에서 업계 로비에 우호적이었다고 비판해 왔다. 그러나 초가공식품의 확산은 수십년에 걸친 농업·유통·광고구조의 결과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케네디 장관과 브룩 롤린스 농무장관이 지난달 발표한 트럼프 행정부의 새 식품 권고안은 “고품질 단백질, 건강한 지방, 과일, 채소, 통곡물”을 우선 섭취하고, 고도로 가공된 식품과 첨가당 섭취를 줄일 것을 권장한다.
시각적 상징의 변화도 눈에 띈다. 기존 미국 식품 피라미드가 탄수화물을 아래에, 지방을 가장 위에 배치한 삼각형 구조였다면, 새 권고안은 이를 거꾸로 뒤집은 피라미드 이미지를 제시했다. 가장 넓은 상단에 육류와 채소를 배치해 단백질과 자연식품 중심 식단을 강조한 점이 특징이다. 이는 정제 탄수화물 중심 식단에서 벗어나겠다는 정책적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행정부 관계자들은 이 지침을 따르면 “만성질환의 발생을 예방하거나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방 섭취에 대한 권고도 제시됐다. 식사에 지방을 추가할 경우 “올리브유와 같이 필수 지방산을 포함한 기름을 우선하라”고 권고하면서, 버터나 쇠기름(beef tallow)도 선택지에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종자유(seed oils)에 비판적인 케네디 장관의 견해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다만 일부 영양학계에서는 포화지방 섭취 확대에 대한 신중론도 제기된다.
새 지침은 초가공식품과 첨가당 섭취 감소 외에 단백질 섭취 확대를 강조하며, 특히 성장기 아동과 청소년의 근육·대사 건강을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식품 라벨의 투명성 강화, 소비자가 성분과 첨가당 함량을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 접근성 개선도 병행 과제로 제시됐다.
다만 초가공식품의 발달이 미국 사회가 수십년간 만들어온 구조에 따른 것인 만큼 정책 실효성을 확보하는 방향, 즉 실제 초가공식품을 덜 먹게 하는 방향이 제시되지 않으면 제자리걸음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저소득층이 싼값에 초가공식품을 먹을 수밖에 없는 빈곤 문제와 사회적 구조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가 과제로 남는다.
뉴욕타임스(NYT)는 “우리는 ‘전환점’에 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며 “미국 식품 공급의 약 70%가 초가공식품이지만, 사람들이 이러한 식품을 약간 덜 먹기 시작했다는 신호도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데이비드 케슬러 전 식품의약국(FDA) 국장은 초가공식품에 대한 미국 사회의 의존이 “수십년에 걸쳐 형성된 것”이라며 이를 되돌리는 데에도 “수십년이 걸릴 수 있다”고 짚었다.
워싱턴=홍주형 특파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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