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장애인 성폭력…‘도가니’ 이후 20년, 달라진 건 없었다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시설장, 법인 이사장·협회장 겸임하며 ‘제왕’처럼 군림
(시사저널=정락인 탐사저널 사건전문기자)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의 외진 곳에는 중증발달장애인 거주시설 '색동원'이 자리잡고 있다. 뇌병변이나 지적장애 등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중증장애인들에게 재활 서비스와 거주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2008년 설립된 사회복지시설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인 강화군으로부터 매년 약 10억원의 보조금과 장애인 수당을 지원받고 있다. 색동원은 겉으로는 중증장애인들의 따뜻한 보금자리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외부와 차단된 채 성폭력 등에 노출되는 등 인권 사각지대였음이 드러났다.

경찰, 피해자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 확대
2016년 색동원에 입소한 40대 여성 A씨는 지난해 2월 이곳에서 퇴소했다. A씨가 머리를 다쳐 병원에서 치료했다는 색동원 측 연락을 받은 그의 가족은 다친 경위와 연락이 늦은 이유 등을 따져 묻는 과정에서 시설 측의 석연치 않은 해명에 의문을 품었다. 가족은 곧바로 A씨를 퇴소시킨 후 시설에서 겪었던 일을 자세하게 물었다. 자신이 안전하다고 판단한 그는 "입소 때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A씨의 몸에서는 이를 뒷받침할 상처도 발견됐다.
A씨 가족은 변호인을 통해 대처 방안을 논의했고, 이런 사실을 서울경찰청에 신고했다. 관할인 인천경찰청에 신고하지 않은 이유는 색동원 시설장인 김아무개씨(남)가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경찰은 A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내사에 착수했다. 발달장애인들의 특성상 피해 사실을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진술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다행히 A씨는 기억이 또렷하고 의사표현도 비교적 정확한 편이었다. 경찰은 이후 추가 피해자를 확보해 강제 수사에 나섰고, 색동원 시설장 김씨를 성폭력처벌법상 장애인 강간·강제추행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수사 착수 4개월여 만인 같은 해 9월에는 색동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색동원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고, 경찰은 70여 명 규모의 '색동원 사건 특별수사단'을 꾸려 전방위 수사에 나섰다. 당시 색동원에는 남성 17명, 여성 16명 등 중증장애인 총 33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 중 22명은 가족과 연락이 끊긴 무연고자였다. 이들을 돌본 직원은 26명이다. 사회복지사와 조리원, 간호 인력 등이다.
경찰 수사와는 별도로 강화군은 지난해 말 대학 연구진에 의뢰해 색동원에 입소 중이던 여성 장애인 17명과 퇴소자 2명 등 19명을 대상으로 심층조사를 벌였는데, 대다수가 김씨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피해자들은 몸짓으로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며 피해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강화군은 조사보고서 일부를 공개하려고 했으나 색동원과 조사기관인 대학 측에서 '민감 정보'와 '영업상 기밀'을 이유로 비공개를 요청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강화군은 입장문을 통해 "경찰을 통해 색동원에 제기된 성폭력 의혹이 확인돼 기소 의견으로 송치되면, 그 즉시 시설에 대한 폐쇄 조치 등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강력한 행정 처분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을 보면 시설장 김씨는 여성 입소자들을 대상으로 장기간에 걸쳐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벌인 것으로 의심된다. 피해자들은 여러 명의 장애인이 함께 쓰는 다인실과 공용 소파, 2층 카페 등에서 강제추행과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 피해자는 자신이 피해자이면서 동료가 성폭력을 당하는 것을 본 목격자였던 것이다.

시설 종사자들, 은폐 가담했거나 담합 의심돼
경찰은 피해자가 더 있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색동원이 개소한 후 시설을 거쳐간 장애인은 약 87명, 종사자는 약 152명이다. 경찰은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이들을 상대로 전수조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은 또 보건복지부 등 관련 부처와 범부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성폭력과 학대는 물론 보조금 유용 전반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보조금 유용 의혹은 입건 전 조사(내사) 단계다. 경찰은 종사자들이 보조금이나 입소자 개인 자산 등을 횡령한 정황을 들여다보고 있다.
경찰 수사망이 좁혀오자 시설장 김씨도 부장판사 출신 변호인을 선임해 대응하고 있다. 그는 두 번의 경찰 조사에서 중증장애인인 피해자들 진술의 신빙성을 문제 삼으며 성폭행 등 혐의 대부분을 전면 부인했다.
색동원에서 오랜 시간 성폭력과 학대가 있었음에도 이런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피해자들은 가족들이 면회를 와도 보복 등을 우려해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무연고자의 경우에는 시설 종사자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상황이어서 피해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은 금기에 가까웠다.
시설 종사자들은 조직적 은폐에 가담했거나 담합했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 현행 '장애인복지법'은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의료인, 교직원 등 신고의무자는 직무상 장애인 학대나 성범죄를 목격하거나 알게 된 즉시 의무적으로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시설 안에서 일어난 폭력을 신고하기는커녕 오히려 묵인했다. 일부 시설 종사자의 경우 폭행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직원 B씨의 경우 입소자를 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인천 색동원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대책위)'는 "사건 은폐를 위한 협박과 회유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직원들 중 일부가 시설장 김씨의 친인척이다 보니 문제 제기를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전현직 종사자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즉, 시설장과 그 주변 인물들이 시설 운영권을 독점하면서, 견제 세력 없이 독단적으로 시설을 운영해 왔다고 보는 것이다. 이 같은 족벌운영은 색동원뿐 아니라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장애인 권익시설의 고질적인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색동원 내부에는 인권지킴이단이 있었으나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매년 시설 이용자를 상대로 정기 점검을 실시했음에도 특이 사항을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다. 더욱이 인권지킴이단은 경찰이 색동원을 압수수색하고 관련 보도가 나온 뒤에야 이런 사실을 인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설이 주는 자료에 의존하는 등 구조적인 한계를 드러냈다고 봐야 한다.
강화군도 색동원 사건에서 자유롭지 않다. 군은 매년 색동원을 상대로 지도 점검에 나섰지만 시설 안에서 벌어진 폭행이나 학대 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군의 점검이 형식적인 것에 그치면서 감시 기능이 작동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이다. 이처럼 색동원에는 내외부에 감시 시스템이 있었으나, 전혀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배경에는 김씨의 영향력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는 색동원 시설장과 함께 법인 이사장직을 겸임하며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2022년 1월에는 인천장애인복지시설협회 협회장에 취임했고,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등기이사로도 활동하는 등 이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장애인 단체 등은 증거인멸 등을 이유로 김씨에 대해 구속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검찰은 김씨와 시설 종사자 B씨에 대해 각각 성폭력과 폭행 혐의로 법원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도가니 사건' 피해 규모보다 더 클 듯
색동원에서 벌어진 입소자들에 대한 성적 학대 사건은 2005년 청각장애인 교육시설인 광주 인화학교에서 발생한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모두 폐쇄적인 장애인 시설에서 발생한 조직적 인권 유린이라는 점에서 판박이처럼 닮아있다. 인화학교 사건은 공지영 작가의 소설 《도가니》와 동명의 영화로 더 많이 알려졌다.
두 사건 모두 시설장(교장·원장)이 종교적 배경이나 지역 내 영향력을 가진 제왕적 권력자였다. 이들은 또 외부 감시가 닿지 않는 성역을 구축했다. 피해자는 의사표현이 서툴거나 신체적 저항이 어려운 장애인들이었다. 특히 색동원은 피해자가 24시간 가해자와 함께 생활하는 '거주시설'이라서 탈출이나 외부 조력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였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두 사건 모두 가해자는 피해자가 신고하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해 장기간 반복적으로 범행을 이어갔다. 또 가해자 혼자만의 범행이 아니라 이를 묵인하거나 은폐에 가담한 행정직원 및 교사 등 조직적인 방조도 존재했다. 문제는 도가니 사건이 발생한 후 20년이 지났지만 또다시 비슷한 사건이 재발했다는 사실이다. 사건 이후 장애인과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 공소시효를 없애고, 가해자 처벌을 강화했지만 이를 비웃듯 장애인들을 상대로 한 성폭력이 장기간 은밀하게 진행됐다. 사회적 감시망과 현장 감시체계에도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인화학교 피해학생들은 수어를 통해 서로 소통하며 연대할 수 있었지만, 색동원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고통을 언어로 구조화하는 것조차 힘든 상태였다. 가해자는 이들의 무력함을 더욱 철저하게 이용했다.
피해 규모에도 차이가 있다. 도가니 사건은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직권조사를 한 결과 2000년부터 2005년까지 교장과 행정실장을 포함해 가해자 6명, 피해자는 초중고 학생 9명이었다. 색동원의 경우 경찰이 범죄 요건에 해당하는 피해자를 6명으로 특정했지만, 지자체 전수조사에서 피해를 호소한 인원이 19명에 달해 향후 수사 확대에 따라 피해 규모가 커질 전망이다. 도가니 사건이 주로 학교 내 성폭력에 집중됐다면 색동원은 시설 운영진의 보조금 횡령 및 운영비리 의혹까지 겹쳐 장애인들의 생존권 자체를 위협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색동원 사건은 우리 사회에 뼈아픈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중증장애인을 사회 밖으로 격리해 수용시설에 몰아넣는 것을 '보호'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도심에서 떨어진 외진 곳에 위치한 시설은 지역사회로부터 단절됐고, 이런 폐쇄성이 가해자에게는 범죄의 최적지가 됐다.
이번 사건은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는 한 제2, 제3의 색동원은 언제든지 다시 생겨날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 신호다. 색동원의 비극은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의 고통에 얼마나 무뎌 있는지를 보여주는 부끄러운 자화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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