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한 남편, 아내에게 탈의 요구…“죄지은 게 없으면 뭐가 무서운데?” [씨네프레소]

박창영 기자(hanyeahwest@mk.co.kr) 2026. 2. 22.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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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프레소-175] 영화 ‘어쩔수가없다’

*주의: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 독자는 뒤로가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IMDb]
실직한 가장 만수(이병헌)는 아내 미리(손예진)의 외도를 의심했다. 젊고 잘생긴 치과 병원장과 병원 직원인 자신의 아내가 바람났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심지어 아내에게 “죄지은 게 없으면 뭐가 무섭냐”며 속옷을 벗어보라는 선 넘는 요구까지 한다. 직장을 잃으며 자존감이 완전히 무너져버린 모습이다.

정신적으로 위태로워진 만수는 연쇄 살인을 계획한다. 경력상 자기 경쟁자가 될 만한 남자들을 죽이면 본인이 채용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계산했다. 그러나 만수는 살인의 대상이 될 적들을 만날 때마다 연민했다. 자기와 마찬가지로 직장에서 쫓겨난 범모(이성민)를 볼 때 더 그랬다. 범모의 아내는 남편 몰래 젊은 남자와 연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쩔수가없다’(2025)가 던지는 질문은 여기에 있다. 왜 착한 남편 만수는 자신이 동병상련을 느끼는 남자들을 살해할 수밖에 없을까. 영화의 제목처럼 만수의 선택이 불가피하다면 관객은 도대체 이 작품을 보면서 무엇을 느껴야 하는가. 인공지능(AI)의 시대에 다른 이의 자리를 뺏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하며 사는 수밖에 없다는 것일까.

경력직 면접을 보는 만수. 얼굴에 햇빛이 비쳐 불편하지만 면접관들은 알아채지 못한다. 일부러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각별히 배려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기에 인지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IMDb]
줄거리 요약 : 효율화한 시스템이 나를 ‘비효율’로 지목할 때
줄거리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제지회사에서 25년을 근무한 만수는 하루아침에 백수가 된다. 그가 다니던 회사가 미국계 기업에 인수되면서 구조조정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 등으로 근근이 버티던 그는 결심한다. 부인과 아들딸을 지키기 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취직하겠다고 말이다. 그가 떠올려낸 ‘무슨 수’가 극단적이라는 점이 극에 긴장을 부여한다. 만수는 국내 제지기업 중 상대적으로 건실한 업체의 종사자 한 명을 살해해서 경력직 자리를 마련하려 한다. 그리고 해당 경력직에 지원했을 때 자신보다 앞선 평가를 받을 것이 분명한 사람들을 차례로 죽이기로 한다.

자신을 바라보는 자식과 아내는 만수가 살인을 합리화하는 이유가 된다. [IMDb]
개연성이 부족한 살해? 사실은 없었던 게 아닐까
‘어쩔수가없다’는 관객들에게서 극단적으로 갈린 평가를 받았다. 역시 박찬욱, 이라며 극찬한 무리가 있었는가 하면 반대쪽에서는 살해의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성실하게 살아가던 가장이 “집이라도 팔고 마트 가서 짐이라도 나를 수 있는데”(이건 만수가 범모의 무기력을 지적하며 하는 말이기도 하다) 취직을 위해 세 사람이나 죽인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이야기다. 게다가 CCTV가 사방에 깔려 웬만해선 내 흔적을 숨기기 힘든 시대에 만수처럼 치밀하지 않은 살인자가 잡히지 않는다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있었다.
만수의 살인은 은밀하지 않게 이뤄진다. ‘시체를 어떻게 숨기지’에 대한 고민은 있지만 ‘내 동선을 어떻게 감추지’에 대한 설계는 부족해 보인다. [IMDb]
그렇다면 이런 가설은 어떨까. 사실 만수는 살인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영화 속에서 엉뚱한 사람을 용의자로 지목하며 ‘무능력하게’ 그려지는 경찰이 실제로는 살인자를 제대로 찍어냈다고 가정해보자는 것이다.

만약 이 가설을 받아들인다면 만수가 살인하는 장면은 그가 자신의 경력직 취직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은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인공지능(AI) 발 대량 해고의 시대에 좁은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 취직에 성공한 자신의 행위가 어떤 의미에서는 살인의 성격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한 자리를 차지해 재기함으로써 남들은 기회를 상실하고 주저앉아 있어야 하니 말이다.

일례로 영화 초반부에 만수는 자신을 해고한 외국계 기업 임원에게 해고는 ‘모가지’를 자르는 일이라고 항의한다. 재취업의 기회가 극히 제한된 이 시대에 직장을 잃는다는 것은 사실상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실제 그가 죽이러 다니는 실직자들은 만수에게 죽임을 당하기 전부터 영혼의 어딘가가 이미 꺼져버린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아내의 외도를 알았지만 그저 모르는 척하기로 한 범모가 그렇고, 또 신발 가게 판매직을 힘없이 수행하고 있는 시조(차승원)가 그렇다.

범모(오른쪽)와 만수는 닮았다. 범모는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집에서 조용히 나왔고, 만수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파티장에서 슬그머니 퇴장했다. [IMDb]
새 직장 취직을 위한 면접 도중 만수는 자기 역할이 공장의 AI 기기 관리라는 점을 알게 된다. 수많은 인력을 AI로 대체해서 인건비를 줄이는 일 말이다. 다소간 죄책감을 느끼는 듯 보이던 만수는 이내 면접관들에게 되묻는다. “시대를 거스를 수야 있나요. 그래도 어쨌건 간에 사람 하나가 감시는 해야 하잖아요.” 영화 초반만 해도 대량 해고에 반발하며 동료들과 함께 싸웠던 만수는 이제 ‘남의 기회를 제한하는 직무’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미리는 집의 평화가 남의 시체를 거름으로 삼아 이뤄졌음을 알게 된다. [IMDb]
지금이 어떤 시대인지를 알고 산다는 것
‘어쩔수가없다’는 현대인이 느끼는 무기력감을 그대로 표현한 작품이다. 보고 나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기생충’과 ‘조커’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고발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와 닮았지만, 비판의 대상은 비교적 명확한 편이다. 두 영화는 빈부격차를 남의 일이라고 치부하는 순간, 그 사회적 비용은 빈자와 부자 모두가 나눠 갖는다는 얘기를 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사회적으로 남의 고통에 조금 더 귀기울이려는 노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어쩔수가없다’에서 드러난 문제는 (만수가 저지른 살인은 그저 은유와 상징일 뿐이라는 관점을 유지한다는 전제 하에)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보다 막연하다. 이것은 시스템이 효율화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여러 비효율을 덜어내며 일어난 일이다. 영화 속 제지회사들은 폐업하지 않기 위한 처절한 투쟁의 과정에서 AI를 도입하고 직원을 줄인다. 번창이 아닌 존속을 위한 몸부림인 것이다.

작품 속 개인들이 경쟁하는 것 또한 자기 목숨을 유지하기 위한 분투다. 더 많이 갖기 위한 탐욕으로 남을 해쳤다면 욕망을 줄이라고 하면 될 텐데 그렇지가 않다. 단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치던 결과로 이웃을 다치게 한 것이다. 개인이 생존을 도모하는 것을 비난하기가 쉽지 않다. 아마 AI에 의한 잇단 해고 사태를 보며 우리가 무력함을 느끼는 이유도 유사할 것이다. 누구를 비판해야 할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니 막막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삶을 돌아보게 할 기회를 제공한다. 러다이트 운동을 하자는 것도, 파업하자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이 시대에 살아남는다는 것의 의미를 직시하게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지금의 시대에는 열심히 살아간다는, 개인으로선 지극히 당연한 노력이 남의 생존을 위협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다음 논의를 하기 위해선 그걸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어쩔수가없다’ 포스터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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