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사장들의 얼굴에서 경기를 읽는 사람 [.txt]

한겨레 2026. 2. 22.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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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의 초상 l 경영지도사 이진욱씨
20년 남짓 인사·노무 분야에서 일하다
3년 전 회사 나와 경영지도사의 길로
근로계약·정책자금 상담 요청 잦아
경기 침체 속 ‘불법 브로커’도 기승
최영 작가가 인공지능 제미나이에 “경영지도사가 중소기업 현장에 나가서 상담 업무를 진행하는 모습을 그려”라는 지시어를 입력해 생성한 이미지.
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
대한민국은 중소기업의 나라이다. 물론 중소기업 하기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중소기업 숫자가, 그리고 중소기업 종사자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2025년 8월에 중소벤처기업부에서 ‘2023년 기준 중소기업 기본통계 결과’를 발표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수는 829만8915개이며, 종사자 수는 1911만7649명이란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우리나라 기업의 99.9퍼센트는 중소기업이며, 종사자의 80퍼센트 이상은 중소기업에서 일한다. 반면에 중소기업의 매출은 전체 기업 매출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0.1퍼센트의 극소수 기업이 전체 기업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이 결과를 보고 최소한 두가지 사실은 알 수 있다. 하나는 우리나라 대기업 생산성이 정말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이다. 그에 비해 중소기업 생산성은 현저히 낮다. 이러한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생산성 격차는 날이 갈수록 커져서 두 기업군 사이의 부익부 빈익빈을 가속화시킨다. 다른 하나는 국민 대부분이 행복해지려면, 중소기업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문제 해결은 간단치 않다. 세계 경제 혹은 국가 경제 차원에서 다루어야 할 구조적이고 정책적인 측면과 개별 중소기업이 처한 산업적, 지역적, 개별적 문제가 얽혀 있다. 이러한 문제 더미 속에서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상담하고, 문제 해결책까지 제시하는 사람을 만나 ‘일하는 사람의 초상’을 그려 보았다. 경영지도사 이진욱(가명·53살)씨다.

진욱씨의 아침은 분주하다. 재작년까지는 직장에 출근하느라 새벽 여섯시에 맞춰 놓은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지금은 알람을 맞춰 놓을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거의 비슷한 시각에 눈이 떠진다. 일어나서 씻고, 밥 먹는 것까지는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남들이 부랴부랴 집을 나설 때, 진욱씨는 두 자녀를 챙긴다. 두 아이 모두 아직 중학생이다. 결혼이 좀 늦긴 했다. 맞벌이 직장인이었을 때는 교사인 아내가 조금 더 아이들을 챙겼다면, 지금은 진욱씨의 몫이 더 늘어났다.

아이들과 아내가 각자의 배움터와 일터로 모두 떠나면, 집은 고요해진다. 이러한 고요가 진욱씨는 낯설다. 설거지를 할 때 그릇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것도, 거실 소파에 자기 혼자만 덩그러니 앉아 있는 것도 어색하기만 하다. 직장 생활을 할 때의 구속된 일과에서 벗어났다는 핑계로 혹시라도 게을러질까 봐, 진욱씨는 텔레비전을 끄고 정해진 시각에 사무실로 나선다.

사무실은 노원구 집에서 30분쯤 걸리는 성북구와 종로구 경계에 있다.

“지도사님, 일찍 나오셨네요.”

함께 사무실을 쓰고 있는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진욱씨를 반갑게 맞는다. 네명이 사용하는 공동 사무실을 구한 가장 큰 이유는 사무실 임대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고객사 사람이 왔을 때 앉을 만한 회의실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매번 카페에서 만나기보다 그래도 사무 공간에서 만나면 신뢰도 면에서 낫겠다 싶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짧았음을 이곳에 온 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아 알게 되었다. 먼저 대부분의 일은 고객사가 있는 현장에서 진행되었다. 그리고 누가 일부러 사무실로 찾아와 상담받는 일은 드물었다. 손님 맞을 일이 많은, 그야말로 잘나가는 경영지도사라면 모르겠지만, 이제 3년차에 접어든 진욱씨는 우편물 받을 주소 정도만 있으면, 업무 진행에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함께 사무실을 쓰다 보니 프라이버시랄까, 개인 업무 공간이 확실히 보장되지 않는 불편함이 있다.

특히, 쇼핑몰 사업을 준비 중이라는 입주자 한 사람은 진욱씨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일이 잦다. 처음에는 잠재 고객이라 생각하고, 아는 범위 내에서 친절히 답변해주었는데, 여러번 반복되니 귀찮은 구석도 있고, 재무 관련해서는 진욱씨 또한 상세히 알지는 못해서 조언해주기 곤란한 내용도 있다. 경영지도사도 주력 분야가 인적자원관리, 재무관리, 생산관리, 마케팅 등으로 나뉜다. 진욱씨는 인적자원관리가 전문 분야다.

박사 학위를 마치고, 대학 강단에도 서고, 대기업 연구소와 공공단체에서도 일했다. 모두 인사나 조직 분야와 관계된 일이었다. 20년 남짓 일한 세월 동안, 인사 및 조직 분야에도 여러번 이슈가 바뀌었다. 성과급, 경영상 이유로 인한 해고, 목표에 의한 관리, 애자일(Agile) 조직, 오케이알(OKR) 등 유행처럼 새로운 개념이 업계를 휩쓸고 지나갔다. 그러나 실제 경영지도사가 접하는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이런 거창한 개념보다 근로계약서나 취업규칙 작성, 취약계층 채용 시 받게 되는 정부 지원금처럼 곧바로 체감되는 일들을 상담받길 원할 때가 많다.

경영지도사 진욱씨가 들고 다니는 태블릿피시. 강의 자료부터 정부 지원 자료까지 온갖 자료가 들어 있다. 고객사의 땀과 눈물도 함께. 본인 제공

진욱씨는 믹스커피 한잔을 타 와서 자기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컴퓨터를 켜고,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주로 방문하는 사이트는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등의 홈페이지다. 고객사의 신뢰를 얻으려면, 지원사업과 정책자금 등을 꼼꼼히 알아 두어야 한다. 세무사들이 정부의 새로운 세제 혜택에 관해 자세히 알지 못하면 제대로 상담할 수 없는 것과도 비슷하다. 중요한 내용을 추려서 정리하면, 어느새 종이컵에 든 커피 한잔이 비워진다. 이번주는 도대체 몇잔의 믹스커피를 마셨는지 모르겠다. 아메리카노는 숭늉 같아서 먹기 싫다는 사장님들 수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기는 하다. 그래도 진욱씨가 방문하는 현장에는 아직 하얀 수염의 멋진 사내가 광고하는 캡슐 커피보다 탕비실의 믹스커피가 대세다.

자료 정리가 끝난 뒤, 시계를 보니 벌써 정오가 다 되어 간다. 오후 두시에 인사 제도 설계에 관한 강의가 잡혀 있다. 강의를 요청한 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대상은 스타트업 대표 여남은 명이라고 한다. 판교까지 가려면, 점심을 후딱 해치워야 할 것 같다.

근처 식당으로 가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패스트푸드’인 돌솥비빔밥을 주문한다. 듬직한 무게의 돌솥이 테이블에 놓이자 진욱씨는 숟가락을 들어 요령껏 비빈다. 자글거리는 소리가 여름에 내리는 소낙비 같다. 그때 진욱씨의 재킷 안주머니에 든 스마트폰이 울린다. 두달 전 컨설팅을 나갔던 봉제완구 업체 사장님이다.

“사장님, 어쩐 일이신가요? 정책자금요? 그 사업 융자에 관해서는 제가 들은 바가 없는데, 나중에 확인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현장은 춥다. 경기가 어렵다는 것을 직장 생활을 할 때는 뉴스로 알았는데, 지금은 사장님들의 표정으로 알게 된다. 정책자금에 기대려는 현장의 분위기가 상당하다는 것 또한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심지어 정책자금, 특히 융자를 알선하는 불법 브로커도 활개 치고 있다. 아예 정부 기관이나 금융 기관을 사칭해 이상한 명목으로 돈을 받기도 하고, 정책자금 요건이 안 됨에도 신청할 수 있게 서류를 위조해주기도 한다. 여기 사장님도 어디선가 이런 유혹을 받은 것 같다.

‘경영지도사’라고 자격증 명칭은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지도보다 상담하거나 조언하는 일에 가깝다. ‘어떻게 하라’라고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좋겠다’라고 조언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경영지도사는 자격증이 있는 경영 컨설턴트라고 말할 수도 있다. 진욱씨 또한 명함에는 ‘○○컨설팅 대표’라고 직함이 나와 있고, 그 옆에 작은 글씨로 ‘경영지도사’라는 자격증 이름을 기입해 놓았다.

경영에 관해 컨설팅해주는 직종은 경영지도사만이 아니다. 변호사, 변리사, 회계사, 세무사, 관세사, 법무사 등도 해당 분야에서 경영에 관해 조언한다. 그만큼 경영은 범위가 넓다. 특히, 진욱씨가 주력으로 하는 인사·노무 분야에서는 공인노무사라는 전문 자격사가 활동한다. 이러한 전문 직종은 법이 정해 놓은 ‘밥그릇’이 있다. 아무나 법원을 상대할 수 없다. 특허청, 관세청, 국세청, 노동위원회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을 통해야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는 것이다.

반면에 경영지도사는 확실한 밥그릇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경영지도사 및 기술지도사에 관한 법률’이 있긴 하다. 그러나 경영컨설팅을 받을 때 ‘반드시’ 경영지도사를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이유로 경영지도사는 고객사를 스스로 발굴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가 주관하는 사업에도 직접 참여 신청을 해야 한다. 누가 떠먹여 주는 밥은 없다.

고객사는 경험 많은 경영지도사를 선호하니까, 다른 전문 직종과 마찬가지로 경영지도사도 경력이 중요하다. 이때의 경력은 경영지도사로서의 경력뿐 아니라 이전의 회사 경력 등도 포함된다. 그래서인지 중장년 직장인이 많이 뛰어드는 자격증이기도 하다. 시험 경쟁도 치열하지만, 개업 이후는 더 치열하다. 다들 왕년의 경력을 내세우지만, 막상 조직의 울타리를 벗어나면, 나와 ‘왕년의 나’는 다른 사람이다. 춥고 배고파지기 쉽다.

돌솥비빔밥을 맛있게 비운 뒤 식당을 나와 지하철역으로 내려간다. 중요한 약속일수록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가 많다. 시간 엄수는 굳이 경영지도사가 아니라도 지켜야 할 덕목이다. 노선도를 보고 갈아탈 역을 미리 확인한 다음, 진욱씨는 오늘 강의할 내용을 태블릿피시(PC) 화면으로 다시 한번 확인한다. 전략적 인적자원관리와 인사관리 프로세스는 청중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받아들이는 때가 많으니, 한시간만 할애하고 나머지 한시간은 벤처기업 지원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다들 귀가 쫑긋해질 것을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사실 이렇게 웃을 수 있는 것도 큰 복이다. 얼마 전에 폐업 관련 컨설팅을 나갔을 때는 하마터면 울 뻔했다.

소설가 최영

최영 l 월급사실주의 동인. 장편소설 ‘로메리고 주식회사’, 메타픽션 ‘춘야’ ‘작은 빛’, 공저 앤솔러지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킬러 문항 킬러 킬러’ 등을 썼다. 수림문학상 수상.
최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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