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개인 경험의 고유성이 인간다움의 마지막 방어선"
여행 소재로 한 오토픽션…"인생에 여행 아닌 것 있나"
![문지혁 작가 [현대문학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22/yonhap/20260222080231049ljsm.jpg)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나이트 트레인'은 제 오토픽션 세계관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야기로, 20대에 막 접어든 1999년에 갔던 3주간의 유럽 여행을 소재로 쓴 소설입니다."
SF(과학소설)부터 오토픽션(자전소설)까지 폭넓은 문학적 스펙트럼을 구축해온 문지혁 작가가 새 작품으로 독자 앞에 섰다.
최근 장편소설 '나이트 트레인'(현대문학)을 펴낸 문 작가를 서면 인터뷰로 만났다.
배낭 여행 경험에 허구 보태 소설로…"이어달리기하듯 완주"
신작은 자신의 여행 경험을 녹여낸 오토픽션이자, 세 겹으로 구성된 '액자 소설'이다.
작품엔 1999년 3주간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난 20대 청년인 '나'와, 이때 여행을 하며 쓴 소설 속 '나'가 있다. 또 그로부터 25년이 지나 과거를 회상하며 여행을 재구성하는 40대의 '나'까지, 세 개의 층위로 구성된다.
작가는 "소설 속 20대의 '나'가 쓰는 소설은 실제로 제가 20대에 습작했던 소설이기도 하다"며 "당시에는 어떻게 해도 완성할 수 없던 소설을, 20여년 후의 제가 마치 이어달리기하듯 땅에 떨어진 배턴을 들고 완주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1999년 쓰기 시작한 소설의 마침표를 마침내 찍게 된 그는 "기록보다는 완주에 의미를 두고 싶다"며 "포디움(Podium·단상)에 올라갈 수는 없지만 스스로 후련하달까"라고 했다.
이야기는 어느 날 아버지가 보낸 택배 상자가 도착하며 시작한다.
상자에는 은색 소니 CD플레이어와 빛바랜 군복, 다이어리와 대학 교재, 사진, 시집, 원고 묶음 등 청춘의 오브제가 담겼다.
그중 녹슨 은반지를 발견한 40대의 나는 회상에 젖는다.
그 은반지는 한때 사귀던 여자친구가 작별선물로 건넨 것이었다. 이별을 겪은 20대의 나는 그녀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샀다는 은반지를 다시 빈에다 버리기 위해 유럽 여행을 떠난다.
일종의 애도 의식이자, 반지를 버려야 비로소 목적이 완성되는 여행. 하지만 여행은 계획대로, 목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문지혁 작가 [현대문학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22/yonhap/20260222080231234wqcs.jpg)
작품은 영화 '비포 선라이즈'로 대표되는 세기말의 감성을 감각적이고 유쾌한 필치로 그려냈다. 또 어리숙하고 풋풋한 청춘이 여행을 통해 성장해가는 과정을 담았다.
작가는 소설을 시작하며 이렇게 묻는다.
"이것은 여행에 관한 기록이다. 하지만 인생에 여행 아닌 것이 존재할 수 있나?"(11쪽)
하지만 그가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인생은 여행'이라는 케케묵은 비유가 아니다.
작가는 "무엇보다 여행 그 자체, 다시 말해 일상을 멈추고 어딘가로 떠났다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떠나고 돌아오는 것이 중요하단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항상 다른 곳에 도착하기 마련"이라며 "그 미묘한 차이가 여행 이후의 우리를 다른 존재가 되게 한다"고 덧붙였다.
"오토픽션, 쓸수록 매력…사실과 허구의 비율은 영업 비밀"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궁금증이 생긴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경험담이고 어디부터가 허구일까.
오토픽션이란 장르를 빼놓고 문지혁이란 작가를 이야기하긴 힘들다.
그는 자기 삶과 허구를 일정 비율로 섞어 벽돌과 시멘트를 만들고 이야기의 집을 짓는다.
작가는 "오토픽션은 제 작업을 대표하는 용어가 됐다. 처음에는 의도치 않게 시작했지만 지금은 깊이 들어갈수록 더 많은 매력이 있다고 느낀다"고 했다.
그는 "특히 오늘날처럼 인공지능이 대두하고 득세하는 시대에, 개인의 몸과 경험이 지닌 고유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다움'의 마지막 방어선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또 "'초급 한국어'에서도 쓴 적 있지만, '끝없는 1인칭의 중얼거림'만이 인간이 쓰는 소설로 남을 날이 머지않은 것 같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나이트 트레인 [현대문학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22/yonhap/20260222080231396arcd.jpg)
그렇다면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를 쓰는 데 어려움은 없을까.
"아니 에르노(자전적 문학을 대표하는 프랑스 작가)는 경험한 것을 다 씁니다. 어떤 작가는 고유 명사를 바꿉니다. 어떤 작가는 성별과 나이, 외모를 바꿉니다. 어떤 작가는 모든 것을 꾸며냅니다. 어느 것도 틀리지 않고, 어느 것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생각하고 믿는 대로 표현할 뿐입니다."
이어 그는 "제 경우, 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하고, 타인과 관련된 부분은 윤색하거나 왜곡한다"며 "비율과 방식은 영업 비밀"이라고 재치 있게 답했다.
문지혁은 2010년 네이버를 통해 SF 단편소설 '체이서'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이후 꾸준히 장편과 소설집을 펴내며 독자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올해만도 벌써 두권의 책을 냈다. 지난달에는 소설집 '당신이 준 것'을 펴냈다.
작가는 올해 출간될 책이 몇 권 더 남았다며 '초급 한국어'와 '중급 한국어'를 잇는 시리즈 세 번째 소설 '실전 한국어'가 봄에 출간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최근 입 안에 생긴 낭종을 제거하는 큰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라는 작가는 근황과 함께 독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2026년에는 다들 아프지 마시고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잘 회복하고 있으니 곧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찾아뵐게요. 감사합니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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