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 떠난 돈, 증권사로 향한다…퇴직연금·ISA '머니무브' 가속

김병탁 기자 2026. 2. 2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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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증권 점유율 26.5% 돌파…ISA도 투자금 3분의 2가 증권사로
사진=클립아트코리아
국내 자산관리 시장에서 은행을 떠난 돈이 증권사로 흘러드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저금리 시대 예·적금 이탈로 시작된 1차 머니무브 이후 퇴직연금과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통한 장기 자금의 구조적 이동이 진행 중이다. 예금 금리로는 물가 상승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투자자들이 ETF와 펀드 중심의 증권사 플랫폼으로 노후 자금과 절세 자금을 옮기는 것.


퇴직연금, 증권사 점유율 26.5%로 껑충


2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은 496조8021억원으로 전년(431조7000억원) 대비 15.1% 늘었다. 이 중 증권업권 14개 사업자의 적립금은 131조5026억원으로 같은 기간 26.5% 증가했다. 은행(15.4%), 보험(7.4%)의 증가율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증권업권 점유율은 전년 대비 2.2%포인트 오른 26.5%를 기록한 반면, 은행과 보험은 각각 0.4%포인트, 1.7%포인트 줄었다.

이 같은 쏠림의 배경엔 운용 구조의 변화가 있다. 회사가 책임지는 확정급여(DB)형 중심이던 퇴직연금이 이제 가입자가 직접 ETF·펀드를 고르는 확정기여(DC)형과 개인형퇴직연금(IRP) 중심으로 무게추가 기울었다. 2025년 말 기준 DC형(136조9000억원)과 IRP형(130조8000억원)의 합산 비중은 53.9%로, DB형(46.1%)을 큰 폭 웃돌고 있다. 개인이 직접 상품을 고르는 구조에서는 상품 다양성과 운용 역량을 갖춘 증권사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2025년 4분기 금융감독원 공시 기준 원리금비보장형 DC 수익률에서 KB증권(23.32%), 신한투자증권(22.87%), 삼성증권(21.02%) 등 주요 증권사의 수익률은 KB국민은행(19.11%), 신한은행(19.84%) 등 주요 은행 수익률 대비 4%포인트가량 웃돌았다. 이는 증권사가 ETF와 펀드 등 실적배당형 상품을 적극 활용한 결과다.
그래픽=클로드AI


ISA도 증권 쏠림 현상 심화…투자금 3분의 2가 증권사로


퇴직연금과 나란히 증권 쏠림을 이끄는 또 다른 축이 ISA다. 금융투자협회가 집계한 2025년 12월 말 기준 ISA 총 가입자는 765만명, 투자금액은 48조4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업권별로 보면 증권사가 가입자의 86.6%(663만명)를 차지하고 투자금액도 66.3%(32조원)를 점했다. 은행은 가입자 13.4%(102만명), 투자금액 33.7%(16조3000억원)에 그쳤다.

가입자 수 대비 은행의 투자금액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예·적금 목돈을 예치하는 신탁형 특성 때문이다. 실제로 주식·ETF 직접 거래가 가능한 투자중개형 가입자 659만명의 투자금 31조8000억원은 사실상 전액 증권사에 집중돼 있다. 반면 은행 ISA는 예·적금 비중이 93%에 달하는 신탁형이 중심이다. 돈이 몰리는 방향과 그 성격이 다른 것이다.

예컨대 삼성증권의 중개형 ISA 잔고는 2025년 말 기준 연초 대비 2배 가까이 불어났고, 고객 수는 137만명을 돌파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흐름이 단기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본다. 홍원구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퇴직연금 사업자의 수익률과 적립금 규모가 연동되는 선순환 구조의 조짐이 보인다"고 말했다. 고령화에 따른 연금 자산 확대,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 안착, IMA(종합투자계좌) 인가 확대에 따른 신상품 출시가 맞물리면서 증권 중심의 자금 유입 기조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변수는 있다. 금리 인하 사이클이 마무리될 경우 주식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투자 수요 일부가 위축될 수 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퇴직연금 사업자의 책임성과 운용 역량은 성과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며 "퇴직연금 질적 성장을 위해서는 사업자 간 건전한 경쟁과 운용 성과가 요구된다"고 했다. 시장이 커질수록 상품 라인업과 운용 성과로 승부를 가르는 증권사 간 서열 재편 또한 한층 빨라질 전망이다.

김병탁 기자 kbt4@sida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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