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의 산림치유 일지] 겨울 산의 리프레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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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 눈 산행을 다녀왔다.
3년 만에 다시 간 눈 산행이다.
특히 겨울 산의 묘미를 알게 해준 덕유산의 배신(?)은 눈 산행에 대해 생각을 달리하게 했다.
겨울 눈 산행에 다시 나서게 된 것도 리프레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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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 눈 산행을 다녀왔다. 3년 만에 다시 간 눈 산행이다. 겨울 산행의 백미인 눈꽃과 상고대의 환상을 보지 못했지만, 두터운 눈밭을 마음껏 누빈 하루였다. 설천봉에서 향적봉과 중봉을 거쳐, 오수자동굴과 백련사와 구천동에 이르는 코스를 혼자 걸었다. 거의 매일 산행을 즐길 만큼 숲속 생활을 일상화하는 사람으로서 눈 산행을 3년 만에 간 것은 정말 낯선 일이다.
눈 산행의 처음은 덕유산이었다. 덕유산은 20여 년 전 등산 초보자인 내게 눈 산행의 환상을 경험하게 해준 고마운 곳이다. 산행 전날 전국에 폭설이 내린 덕분에 덕유산은 눈꽃과 상고대를 화려하게 피우고 있었다. 따뜻하고 쾌청한 날씨는 등산객의 도파민을 더욱 넘치게 했다. "와! 와!" 소리 밖에 내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날 경험으로 겨울철 산행 리스트에는 항상 덕유산을 첫 번째로 올렸다.
겨울 산행과 멀어지게 된 것도 아이러니하게 무등산과 덕유산에서 아픈 경험을 한 탓이다. 특히 겨울 산의 묘미를 알게 해준 덕유산의 배신(?)은 눈 산행에 대해 생각을 달리하게 했다. 산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오래전 무등산과 덕유산을 연거푸 눈 산행을 했다. 아쉽게도 무등산에서 강한 눈보라와 매서운 바람으로 생고생을 경험했다. 친구들이 걱정할 정도로 힘들어했다. 1주일 후 남덕유산 산행에서는 더 끔찍한 날씨와 함께했다. 덕유산의 맹추위를 도저히 견디지 못해 함께 간 친구를 두고서 홀로 내려왔다. 내게는 겨울 산의 아픔을 준 산행이었다.
심리학자 폴커 키츠는 그의 책 『마음의 법칙』에서 리프레이밍(reframing)의 중요성을 얘기한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만든 프레임 속에 갇히게 되는 건 피할 수 없다. 이럴 때 낡은 테두리를 버리면, 전혀 새로운 일상이 열린다고 강조한다. 즉, 리플레이밍은 틀을 바꾸어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어니스트 새클턴은 탐험의 역사에서는 실패한 사람이지만, 영국의 수많은 탐험가 가운데 드물게 귀족 작위를 받은 인물이다. 새클턴은 남극 탐험을 두 번이나 실패했다. 특히 대원 27명과 함께 나선 남극대륙 종단 탐험은 거대한 부빙에 좌초됐다. 위기에 빠진 새클턴은 '남극대륙 종단'에서 '전원 살아서 돌아간다'로 리플레이밍을 했다. 새클턴과 대원들은 영하 30℃를 넘나드는 남극에서 634일 동안이나 사투 끝에 모두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다.
올해부터 다시 백수가 됐다. 자연히 산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나 자신을 자주 돌아본다. 겨울철 금기어였던 '눈 산행'도 떠올랐다. 주위에서 "눈 산행 어때?"라고 해도 애써 바쁜 척하며 외면했었다. 겨울 눈 산행에 다시 나서게 된 것도 리프레이밍이다. 눈 산행을 '견디기 힘든 추위'에서 '눈꽃, 상고대'처럼 겨울 산의 환상으로 시선을 바꾸자, 겨울 산행의 매력이 다시금 꿈틀거렸다.
늙어 간다는 것은 나이를 먹는 게 아니라, 꿈이 없어지는 거다. 청년도 꿈꾸지 못한다면 겉모습은 젊지만, 늙은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스스로 만들거나 경험한 수많은 프레임 속에 갇혀 있다. 특히 우리의 낡은 틀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 단단하고 굳어진다. 그래서 삶의 현장에서도 리플레이밍이 항상 필요하다. 그 방법을 찾기 위해 나는 오늘도 숲을 걷는다.
김태일 Story 산림치유연구소장·산림치유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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