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을 잡아라” 증권가, 퇴직연금 유치 전쟁

최동훈 시사저널e 기자 2026. 2. 21. 17:0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증권사 퇴직연금 적립금 3년 새 1.5배↑…IRP도 54% 증가
프로모션 제한 속 ‘편의성·상품 경쟁’으로 승부

(시사저널=최동훈 시사저널e 기자)

성과급 시즌을 맞아 증권가에 '연금 개미' 모시기 전쟁이 벌어졌다. 은행권의 낮은 수익률에 실망한 투자자들이 ETF(상장지수펀드) 실시간 매매가 가능한 증권사 IRP(개인형 퇴직연금)로 대거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증권사 퇴직연금 적립금은 131조원을 돌파하며 1년 새 50% 넘게 폭증했다. 단순한 사은품 경쟁을 넘어, AI 로보어드바이저와 이색 상품으로 무장한 증권사들의 '쩐의 전쟁'을 들여다봤다.

2월11일 서울 여의도 증권가 모습 ⓒ시사저널 이종현

'법인 고객 잡기' 총력전

금융감독원 퇴직연금 통계에 따르면, 증권사가 고객에게서 확보한 퇴직연금 적립금은 최근 수년간 크게 증가했다. 퇴직연금 적립금은 작년 말 기준 131조5026억원으로, 전년 동기(86조4106억원) 대비 52.18% 증가했다. 개인이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IRP의 적립금도 작년 말 기준 46조4556억원으로, 전년(30조1078억원) 대비 54.3% 늘었다.

DB형, DC형은 증권사를 비롯한 금융기관들이 법인 고객과 계약을 체결하고 고객사 임직원들의 퇴직연금계좌 개설을 진행하는 유형이다. 퇴직연금 적립금을 회사가 위탁한 기관에서 운용하면 DB형, 임직원이 직접 운용하면 DC형으로 각각 분류된다. 증권사는 계약을 체결한 고객사의 임직원 전체를 퇴직연금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사들과 영업 경쟁을 벌이고 있다.

IRP는 수령 전 급여액에서 퇴직연금 부담금이 자동 공제되는 DB, DC와 달리 투자자가 부담금을 직접 적립하는 유형이다. IRP 적립금 증가세는 금융소비자들의 연금 투자 규모가 확대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IRP는 연금저축계좌와 합산한 연간 납입금 900만원까지 일정 비율로 세액공제돼 절세 상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최근 ETF 투자 열풍이 불고 있는 점도 개인형 IRP의 운용 규모를 더욱 확대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2024년 10월31일부터 퇴직연금계좌로 투자한 실물을 그대로 다른 증권사로 이전할 수 있는 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은행, 보험사 등 타 기관과의 경쟁도 더욱 치열해졌다. 이 가운데 증권사들은 투자 편의, 운용 상품 다양성 등 측면에서 타 기관과 차별화한 요소를 강조하고 있다.

증권사 IRP 고객은 직접 투자 규모와 상품을 수시로 조정하고 위탁 운용하는 은행, 보험사 IRP에 비해 수수료 부담을 덜 수 있다. 증권사를 통해 개설하는 IRP는 개별 종목 주식을 제외하고 ETF, 리츠(REITS) 등 상품을 실시간 매매할 수 있다. 

은행과 보험사에선 주로 원금, 이자가 보장되는 예금·보험이나 퇴직연금 전용 펀드, 투자신탁, 타깃데이트펀드(TDF) 등 일부 상품만 선택할 수 있는 점에서 증권사 IRP와 대조된다. 적립금 운용을 각 기관에 맡기거나, 금융상품 거래를 기관에 요청해야 일정 시간이 경과한 후 체결할 수 있는 점도 증권사와 대조되는 부분이다.

누리꾼 A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모 은행 IRP를 이용 중인데 ETF 같은 상품이 바로 매매 체결되지 않는 것이 불편하다"며 "가입 기간 1년을 초과해야 계좌 이전 시 수수료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해 기다렸다가 증권사로 갈아타려고 한다"고 말했다.

증권사들은 퇴직연금에 대한 투자자 관심도와 최근 성과급 시즌이 도래한 점을 감안해 법인, 개인 고객 유치에 더욱 공들이고 있다. 법인을 상대로 자사의 DB형, DC형 퇴직연금계좌를 선택지로 도입하도록 영업하는 중이다. 이 중 DC형이 최근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임직원은 DC형 퇴직연금계좌로 일부 수령 가능한 성과급에 대해 근로소득세를 부과받지 않아 절세에 유리해서다. SK하이닉스가 지난달 자사 직원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성과급의 일종인 초과이익분배분(PS)의 일정 비중을 퇴직연금계좌로 수령하길 원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증권사 입장에서도 성과급 일부를 퇴직연금계좌로 지급하는 법인 고객을 확보하면 적립금을 장기적으로 축적할 수 있어 이득이다. 증권사들은 이 같은 배경으로 법인 고객을 상대로 DC형 계좌 개설을 위해 영업에 힘쓰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영업 일선에 따르면 법인 고객들은 최근 임직원의 DC형 계좌 개설에 협력할 금융기관을 재구성하고 있다"며 "한국투자증권은 퇴직연금 전문가를 적극 채용해 인적 역량을 강화하는 데 힘쓰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IRP 시장 핵심 포인트 '이용 편의·전용 상품'

증권사들은 개인 고객을 대상으론 IRP 개설을 유도하기 위해 각 사 장점을 어필하고 있다. IRP는 개인 고객이 계좌를 개설할 증권사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유형이기 때문에 증권사 간 모객 경쟁도 더욱 치열하다.

증권사들은 인공지능(AI), 앱(MTS) 이용 편의 개선, 투자정보 콘텐츠 제공, 대면 컨설팅 등을 통해 고객들이 투자 성과를 확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중이다. 한국투자증권은 투자 편의를 강화한 점을 어필하고 있다. 사전 설정한 ETF 상품을 매월 자동 매수하는 'ETF 적립식 자동투자 서비스'를 시행하고, 타 온라인 은행 앱을 통해 퇴직연금계좌를 개설할 수 있도록 했다.

투자 컨설팅 서비스도 증권사 퇴직연금 전략의 주요 수단으로 꼽힌다.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주요 증권사들은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투자 자산(포트폴리오)을 자동 구성·운용하는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도입했다. 이 중 미래에셋증권은 2022년 9월 로보어드바이저를 도입해 지난달 말 3년4개월 만에 평가금액 6조6046억원을 기록하는 등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일찍이 퇴직연금을 '적극적으로 운용해야 할 자산'으로 정의했다"며 "이에 따라 자산배분 전략, 로보어드바이저, MP 구독 서비스 등 다양한 운용 솔루션을 선제적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신한투자증권은 고객의 생애주기와 투자 성향을 분석해 대면 투자 상담을 진행하는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를 운영하고 있다. 월간 모델 포트폴리오(MP), 투자전략 카드뉴스, AI 기반 맞춤형 상품 추천 등 서비스도 마련했다.

일부 증권사는 업계 내 유일한 상품으로 고객에게 어필하고 있다. NH투자증권은 'N2 퇴직연금 주가연계증권(ELS)'을 마련했다. ELS는 증권사의 신용을 담보로 만들어진 상품으로, 기초자산 가치가 만기 시점에 크게 변동해도 기본 설정된 비율에 따라 손실·수익 규모가 정해지는 특징을 갖췄다. NH투자증권은 증권업에선 유일하게 IRP로 거래 가능한 ELS 상품인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화자산운용은 안전자산 비중을 최소 30%로 유지해야 하는 퇴직연금계좌에서 100% 투자 가능한 금 ETF 'PLUS 금채권혼합'을 설정했다. 한화자산운용은 금과 국고채 3년물에 50%씩 투자한 ETF가 규정상 비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점을 활용했다.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별 IRP의 운용 방식이나 투자 가능 상품, 포트폴리오는 보기에 따라 대동소이하다고 볼 수 있다"며 "결국 소비자들은 사업자의 경영 안정성, 서비스 친숙도 등을 바탕으로 IRP를 개설할 증권사를 선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