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접시의 음식, 누군가의 하루로 기억되고 싶다” [유한나가 만난 셰프들]

2026. 2. 2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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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푸 이민직 세프
요리하는 과정 존중
유럽 음식에 편안한 맛 추구
韓·伊 블렌딩 꽈배기 부라타 피자
쌉싸름 레몬 버터 파스타 인기
요리·사람·공간 이어지는
삶과 브랜드 만들고싶다
이민직 셰프가 운영하는 하푸(hapu)는 요리와 와인, 그리고 사람들이 머무는 시간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누군가에게 강하게 각인되기보다, 어느새 편안하게 스며드는 장소에 가깝다. 이곳에서는 ‘무엇을 먹을 것인가’보다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은가’가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그 흐름은 이 셰프가 요리를 대하는 태도와 닮아 있다. 그는 처음부터 셰프라는 직업을 목표로 했던 사람은 아니다. 다만 어릴 때부터 먹는 행위 자체보다,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더 큰 흥미를 느꼈다.
 
같은 재료라도 손을 어떻게 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점이 재미있었고, 왜 어떤 음식은 맛있고 어떤 음식은 그렇지 않은지 계속해서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요리는 목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어진 선택이 됐다.
이민직 세프
이 셰프는 지금도 스스로를 ‘요리하는 사람’이라기보다, 매일 실험하고 관찰하는 사람에 가깝다고 말한다. 요리는 결과물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이 태도는 그의 커리어 전반을 관통한다. 그의 첫 직장은 신라호텔이다. 이곳에서 그는 요리의 기본기뿐 아니라, 요리사로서 가져야 할 태도를 배웠다. 정확함, 반복, 그리고 긴 시간을 쌓아야만 몸에 남는 감각들들 익혔다. 이후 그는 해외로 나가기보다는 국내에서 해외 색채가 짙은 레스토랑들을 찾아다니며 경험을 쌓았다. 유학이나 해외 근무 경험은 없지만, 각 나라의 식문화가 한국 안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있는지를 현장에서 직접 보고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레시피를 외우기보다 늘 질문했다. “이 요리는 왜 이렇게 만들어졌을까.” 그 질문을 이해하려는 과정들이 쌓여 지금의 하푸로 이어졌다. 요리에 영향을 준 멘토에 대해 묻자, 그는 특정 개인보다는 한 셰프의 태도를 떠올린다.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을 통해 알게 된 프랑스 셰프 알랭 파사르로, 기술이나 화려함보다 재료를 대하는 시선과 태도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말한다. 그가 말한 “요리는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는 것”이라는 문장은 이 셰프가 요리를 대하는 기준이 됐다.

그의 직업 철학은 분명하다. 직업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리는 특히 그렇다고 말한다. 힘들고 반복적인 일이 많지만, 그 안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오래 버티기 어렵고, 그 감정은 결국 음식에 그대로 드러난다고 믿는다. 완벽함을 목표로 삼기보다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몰입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철학이다.
하푸의 음식 역시 특정 국가의 요리를 그대로 재현하지 않는다. 유럽의 식문화에서 출발했지만 무겁지 않고 어렵지 않게 풀어낸다. 브런치부터 와인과 함께 즐기는 메뉴까지 하루의 흐름에 맞춰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설명이 필요한 음식보다는, 한 입 먹었을 때 바로 납득되는 맛을 지향한다.
첫 번째 시그니처 메뉴는 꽈배기 부라타 피자로 하푸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이탈리아 밀가루와 한국 밀가루를 블렌딩해 부드럽고 풍미 있는 도우를 만들고, 꽈배기 형태에 맞춰 살짝 달달한 터치를 더했다. 전체적인 조합은 이탈리아의 캐주얼한 감성을 떠올리게 하지만, 동시에 익숙하고 편안하다.
꽈배기 부라타 피자
두 번째 시그니처 메뉴인 레몬 버터 파스타는 이 셰프가 생각하는 ‘편안한 맛’을 가장 잘 담아낸 요리다. 레몬의 산미와 버터의 풍미를 중심으로 균형을 잡았고, 레몬은 씨를 제거한 뒤 껍질부터 과육까지 모두 사용해 향과 쌉싸름한 깊이까지 함께 담아낸다. 자극적이지 않지만 계속 손이 가는 맛 덕분에, 이 메뉴는 동네 어르신들에게 특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런 반응은 이 셰프가 추구하는 방향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레몬 버터 파스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역시 화려하지 않다. 어느 날 한 손님이 오전에 혼자 조용히 식사를 하고 돌아간 뒤, 오후에 지인들과 함께 다시 매장을 찾았다. 같은 날 같은 공간을 두 번 찾는 일은 흔치 않다. 그 순간 그는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이 틀리지 않았구나’라는 확신을 얻었다.
앞으로의 목표는 빠른 확장이나 화려한 성과가 아니다. 요리를 오래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하푸라는 공간이 잠깐 소비되는 곳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자연스럽게 다시 찾게 되는 장소로 남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더 나아가 앞으로는 전 세계 여러 나라를 직접 다니며 각 나라의 주방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곳의 방식과 리듬을 몸으로 배우고, 그 경험을 요리와 기록으로 차분히 쌓아가고자 한다. 그 과정들이 다시 하푸의 음식과 공간으로 돌아와 조금씩 깊이를 더해주기를 바란다. 요리를 중심에 두고 사람과 공간, 시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삶과 브랜드를 천천히 만들어가는 것이 이 셰프가 그리는 미래다.
유한나 푸드칼럼니스트
그가 생각하는 요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다. 맛은 기본이고, 그날의 공기와 함께한 사람, 공간의 분위기까지 모두 포함된 하나의 경험이다. 접시 위에서 끝나는 결과물이 아니라, 사람의 하루 안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무언가다. 그래서 그의 요리는 설명보다 먼저 감각으로 다가온다.

스트레스는 의외로 업무와 상관없는 요리를 할 때 풀린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재료들을 꺼내 “이걸 왜 같이 써보지?”라는 호기심으로 혼자 조용히 요리를 해보는 시간, 누구에게 보여줄 생각 없이 오로지 관찰과 실험에 집중할 때, 그는 가장 맑아진다고 말한다. 이 셰프가 느끼는 셰프라는 직업의 매력은 결과가 솔직하다는 점이다. 맛있으면 바로 반응이 오고, 그렇지 않으면 숨길 수 없다. 늘 긴장하게 되지만, 그만큼 정직한 직업이다. 한 접시의 음식으로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기억을 남길 수 있다는 점이, 이 직업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라고 그는 말한다. 하푸의 음식이 조용히 오래 남는 이유도, 바로 그 정직함에 있다.

유한나 푸드칼럼니스트 hannah@food-fantas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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