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의 미식가 허균, 유배지에서 맛을 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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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1569~1618)은 16세에 소과 초시에 급제하고, 28세에는 문과 중시에 장원으로 급제했지만, 정치보다는 소설 등 창작 능력이 발군이었다.
허균의 저서 중 음식 품평서인 《도문대작(屠門大嚼)》은 그리 길지 않은 글이다.
《독서광 허균》 등을 출간하며 국내 대표 허균 학자로 활동해온 김풍기 강원대학교 국어교육학과 교수는 최근 《허균의 맛》을 내놨다.
저자는 그래서 허균이 유학자들에게는 비난과 질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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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허균(1569~1618)은 16세에 소과 초시에 급제하고, 28세에는 문과 중시에 장원으로 급제했지만, 정치보다는 소설 등 창작 능력이 발군이었다. 그에게는 '조선 최고의 미식가'라는 또 다른 얼굴이 있었다. 허균의 저서 중 음식 품평서인 《도문대작(屠門大嚼)》은 그리 길지 않은 글이다. 명문가 출신의 엘리트로 조선 팔도의 음식에 통달하고, "맛난 고기든 아름다운 꽃부리든 씹어보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한 그가 이 글을 쓴 시기는 42세 때다. 중국 사신을 접대하는 접반사로서 최고의 음식에 경험했던 그는 유배지에서 거친 음식을 먹으며 자신이 경험했던 미식의 세계를 꼼꼼히 회고한다.
《독서광 허균》 등을 출간하며 국내 대표 허균 학자로 활동해온 김풍기 강원대학교 국어교육학과 교수는 최근 《허균의 맛》을 내놨다. 이 책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강릉'이라는 공간을 공유하면서 맛과 감각을 나눈 책이라는 점에서 돋보인다.
임진왜란 당시 피란길에서 아내와 아들을 잃은 허균은 외가가 있는 강릉으로 돌아온다. 천신만고 끝에 노모만 모시고 외갓집 애일당에 도착한 허균은 텅 빈 마음을 달래려 주변의 풍광을 감상하며 시를 지었다. 그때 그의 상처받은 영혼을 어루만져준 음식이 바로 방풍죽이다. 김 교수는 자신이 경험한 방풍죽의 맛을 책을 통해 공유했다. 허균은 육해공을 가리지 않고, 식재료와 음식을 소개한다. 특히 지역별로 유명한 과일이나 간식 등을 소개하니, 당대 농림업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를 지닌다.
허균은 《홍길동전》 같은 반항성 짙은 소설이나 귀신 이야기가 가득 찬 한문소설을 써내면서 당시 지식인들에게 숱한 질시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천재성을 바탕으로 세상을 아래로 보는 거만함도 있으니,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저자는 그래서 허균이 유학자들에게는 비난과 질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썼다. 하지만 허균은 음식 앞에서는 가장 정직한 지식인이었다.
"게다가 숭어에 얼음을 채워넣어 이송할 때 역마(驛馬)로는 감당할 수 없어 백성의 소를 징발해야 할 정도였다 하니, 조헌은 백성에게 끼치는 이러한 민폐를 지적하면서 특산물 징수의 절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상소문에 담았다."
책의 후반에 번역한 《도문대작》과 원문을 싣고, 본문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음식문화사를 써내려갔다. 그 시대 풍물을 담았다는 점에서 쉽게 대할 수 없는 소중한 문화를 남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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