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 8년 숨긴’ 박탐희, 맑은 얼굴로 전한 건강한 근황 “컨디션 좋습니다”

이슬기 2026. 2. 2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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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탐희가 밝은 근황을 전했다.

박탐희는 "다행히 둘째 아이는 기억을 못하는데 첫째한테 너무 미안하다. 초1 때 너무 큰 걸 감당해야 했다. '엄마가 아픈 걸 사람들이 알아선 안돼' 하고 감춰야 했다. 첫 번째 항암 땐 몸에 있는 세포가 다 죽은 느낌이었다. 구역질도 하고 그랬고 관절 힘이 없어 걷질 못했다. 항암 후 2주간 죽은 사람처럼 살았다. 팔로 기어가는 모습을 아들이 봤다. 그게 가슴이 아픈거다. 화장실에서 구역질을 하고 나오면 아들이 항상 문 앞에 서있었다. 항상 날 안아줬다. 지금까지도 미안하다. 애가 철이 너무 빨리 들어서 나한테 투정도 없었고 해달라는 것도 없었다. 사춘기가 심하게 오지도 않았다. 그게 너무 미안하다. 항암 수술을 받을 때 통가발을 쓰고 운전했는데 '엄마 울어. 울고나면 눈물이 다 없어질거야'라고 하더라"며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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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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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이슬기 기자]

배우 박탐희가 밝은 근황을 전했다.

박탐희는 2월 20일 소셜미디어에 "몸도 가벼워 컨디션이 참 좋습니다"라며 사진을 게재했다.

그는 "너무.... 힘들죠 컨디션. 배가 가벼워지고 몸이 가벼워지면? 컨디션이 올라가고 마음도 맑아지고 자신감도 올라가고! 유산균은 오늘 나의 가벼운 하루 그리고 장기적으론 나에게 제일 중요한 건강이죠"라고 덧붙였다.

한편 박탐희는 지난해 채널 '새롭게하소서'를 통해 2017년 5월 최초 암 진단을 받았다고 털어놔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는 "내가 슬프고 아픈 건 내가 죽을까 봐가 아니었다. 그것보다 우리 아이들이 엄마 없이 자라야 된다는 게 나한테 너무 공포로 다가왔다. 난 가난하게 살았지만 엄마 아빠가 계셔준다는 존재만으로 단단하게 클 수 있었다. 그런 엄마가 우리 아이한테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고백했다.

박탐희는 암 투병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이후 암 수술을 받게 된 박탐희는 예상보다 심각한 상태에 놀랐다. 항암치료까지 받아야 했다고. 박탐희는 "초기인줄 알았다. 그래서 드라마 한참 들어올 때니까 나가서 해야지 하고 계획했다. 근데 열어보니까 암이 전이가 된 상태였다. 끝이 없더라. 3분의2 정도를 도려내고 큰 수술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온 거다. 항암을 해야 된다더라. 항암을 하면 머리가 빠지지 않나. 몇 년 간은 활동을 못하는 상황이 오는 거다. 너무 괴로웠다. 왜냐하면 나는 일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연기하는 게 제일 행복한데 하나님이 내 팔다리를 다 끈으로 묶은 듯한 기분이었다. 케모포트를 심는 날 처음으로 한 번만 울어도 되냐 하고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그때 수간호사도 엉엉 울었다. 몇몇 분들이 완벽하게 날 지켜주신 시간이었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이후 힘든 시간이 계속됐다. 박탐희는 "다행히 둘째 아이는 기억을 못하는데 첫째한테 너무 미안하다. 초1 때 너무 큰 걸 감당해야 했다. '엄마가 아픈 걸 사람들이 알아선 안돼' 하고 감춰야 했다. 첫 번째 항암 땐 몸에 있는 세포가 다 죽은 느낌이었다. 구역질도 하고 그랬고 관절 힘이 없어 걷질 못했다. 항암 후 2주간 죽은 사람처럼 살았다. 팔로 기어가는 모습을 아들이 봤다. 그게 가슴이 아픈거다. 화장실에서 구역질을 하고 나오면 아들이 항상 문 앞에 서있었다. 항상 날 안아줬다. 지금까지도 미안하다. 애가 철이 너무 빨리 들어서 나한테 투정도 없었고 해달라는 것도 없었다. 사춘기가 심하게 오지도 않았다. 그게 너무 미안하다. 항암 수술을 받을 때 통가발을 쓰고 운전했는데 '엄마 울어. 울고나면 눈물이 다 없어질거야'라고 하더라"며 눈물을 흘렸다.

박탐희는 8년간 완벽히 감출 수 있었던 이유를 묻자 삭발한 뒤 모자를 쓰고 다녔다고 답했다. 박탐희는 "김장봉사 빼고 다 했다. 일단 단발머리로 자른 다음 가발을 맞추러 갔다. 중을 연기한다고 거짓말 하고 가발을 맞췄다. 골룸 같았다. 남동생한테 머리를 밀어달라 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박탐희는 "항암 후 6개월에 한 번씩 검사를 계속 한다. 아직 동그란 게 있어 추적 중인데 병원에 가면 6개월을 받아오는 거다. 6개월을 받아오니까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한 거다. 아침에 일어나면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엎드린다. 5년이 지나면 1년마다 검사를 한다. 이젠 1년씩 받아온다. 지난 4월 갔다왔는데 또 1년 받았다. 괜찮다더라. 너무 신난다. 하루를 분초 단위로 쪼개서 산다"고 근황을 알렸다.

뉴스엔 이슬기 rees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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