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 죽은 비델라, 사면 받아 편안한 죽음 전두환
'더러운 전쟁' 주도 무고한 민간인들 살상
500여 명 아기 강제입양 인륜마저 저버려
종신형 받고 사면됐다가 재구속 옥중 사망
전두환을 그대로 따라 하려 했던 윤석열은
내란 1심 무기징역 선고로 이제 단죄 첫 발

역사의 비극은 반복되는 속성이 있다. 특히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은 국경을 초월해 닮은꼴을 띤다. 아르헨티나 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인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Jorge Rafael Videla, 1925~2013). 그가 걸어온 길과 비참한 최후는 오늘의 한국 사회에 서늘한 경고장을 보낸다.
엘리트의 타락, "나라를 구한다"는 망상
비델라는 1925년 아르헨티나의 군인 명문가 출신이다. 독립전쟁 영웅인 고조부와 주지사였던 할아버지, 육군 대령인 아버지의 뒤를 이은 그는 육군사관학교를 상위권으로 졸업한 '전도유망한 엘리트'였다. 1975년 육군 총사령관에 오른 그는 이사벨 페론 정부의 혼란을 틈타 1976년 3월 24일 새벽, 탱크를 몰고 권력을 찬탈했다.

'더러운 전쟁', 국가가 저지른 인륜 파괴
비델라 정권 5년을 포함한 7년의 군부독재 기간은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시기였다. 군부는 '국가 재편성 과정'이라는 이름 아래 반정부세력 척결을 선언했다. 그러나 실제 타격 대상은 학생, 노동자, 기자, 수녀 등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최소 9,000명에서 최대 3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실종'되었다. 이들은 비밀 수용소에서 고문을 당한 뒤 대서양 한복판에 산 채로 수장되었다.
가장 경악스러운 대목은 '아기 탈취'였다. 수용소에서 출산한 여성 포로들을 살해한 뒤, 그 아기들을 군부 관계자 가정으로 강제입양시켰다. 약 500여 명의 아이가 자신의 뿌리도 모른 채 학살자의 손에서 자라야 했다.

독재는 경제를 살린다는 신화의 붕괴

끈질긴 단죄, 감옥에서 맞이한 최후
1983년 민주화 이후, 아르헨티나의 과거사 청산 과정은 험난했다. 비델라는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1990년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에 의해 사면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시민사회는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의 거울, 비델라, 전두환, 그리고 윤석열
비델라의 쿠데타는 3년 뒤인 1979년 한국의 12.12 군사반란과 전두환의 광주학살로 재현되었다. 하지만 비극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은 또다시 윤석열에 의한 '위로부터의 내란'을 목격했다.
비델라가 "국가재건"을, 전두환이 "공산화 방지"를 말했듯, 윤석열은 "반국가세력 척결"과 "헌정질서 수호"를 명분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오늘의 심판, '내란 우두머리'와 무기징역
현재 대한민국 사법부는 1997년 전두환·노태우 재판 이후 가장 중대한 역사적 시험대에 서 있다.
2026년 1월, 법원은 한덕수 전 총리 등 관련자들에게 중형을 선고하며 "12.3 사태는 위로부터의 내란, 즉 친위쿠데타"임을 명확히 판시했다.
내란 특검은 윤석열에게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적용해 사형을 구형했고 지귀연 판사는 지난 19일 내란 수괴 윤석열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아르헨티나는 비델라를 사면 후 재구속하여 감옥에서 죽게 했다. 하지만 전두환은 사면 받고 거액의 추징금을 미납한 채 자택에서 편안히 눈을 감았다. 광주학살의 발포 책임자와 실종자 행방 등 핵심 진실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우리가 써 내려가야 할 한 페이지
비델라의 이야기는 공포 영화가 아닌 교훈극이다. 아르헨티나는 30년이 걸려 독재자를 감옥에서 죽게 함으로써 그 이야기의 결말을 올바로 썼다.
전두환을 자택에서 편안히 보내주었던 한국은, 이제 윤석열의 '12.3 내란'이라는 새로운 사건을 통해 과거의 과오를 바로잡을 기회를 마주하고 있다. 권력이 국민의 생명과 헌법을 위협할 때, 법과 시민의 힘이 어떻게 그들을 단죄하는지 보여주는 것, 그것이 비델라의 그림자를 완전히 지우는 유일한 길이다.
비델라는 교도소의 차디찬 욕실 바닥에서 죽었고 전두환은 자택에서 따듯하고 편안하게 죽었다. 역사의 심판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지만, 비델라가 감옥에서 죽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아르헨티나의 역사는 제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전두환의 유해는 묻힐 곳을 찾지 못해 지금도 연희동 자택에 그대로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비델라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비델라의 비참한 죽음은 우리에게 몇 가지 명확한 교훈을 남긴다. 독재자는 항상 '구국'과 '질서'의 언어를 선점한다. 권력이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안보'를 외칠 때, 그것은 민주주의 위기의 신호다.
아르헨티나가 비델라를 감옥에서 죽게 한 것은 복수가 아닌 '기록'이자 '예방'이었다.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과거는 반드시 변종된 형태로 미래에 다시 나타난다. 전두환이 사면을 받은 곳에서 윤석열이 등장한 것이다.
비델라가 '미친 여자들'이라 비하했던 희생자 어머니들은 아르헨티나 민주주의의 심장이 되었다. 광장을 지키는 시민들의 발걸음만이 독재의 회귀를 막는 유일한 방파제다.
비델라는 샤워장 바닥에서 차갑게 죽어갔지만, 그가 남긴 교훈은 여전히 뜨겁다. 아르헨티나가 쓴 '정의의 결말'을 한국은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 비델라의 그림자를 지우고 민주주의 역사를 어떻게 써 내려갈 것인가. 그것은 이제 오롯이 우리사회의 몫으로 남아있다.
wadans@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