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넘어 ‘메가 사이클’ 접어든 반도체, 언제까지 고공행진할까
(시사저널=송응철 기자)
창밖은 겨울이지만 반도체 시장에는 뜨거운 여름이 지속되고 있다. 한국 증시의 '투톱'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는 연일 고공행진하며 코스피 지수를 견인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반도체 호황이 '슈퍼 사이클(Super Cycle)'을 넘어 '메가 사이클(Mega Cycle)'에 진입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패러다임 변화가 반도체 산업의 지형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 시장을 향한 시선에는 기대가 가득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불안감도 적지 않다. 이번 호황의 끝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과거엔 물량, 현재는 기술과 가격 싸움
반도체 산업은 그동안 4~5년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해 왔다. 이른바 '실리콘 사이클'이다.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가격이 상승하면 반도체 제조사들은 설비 투자 확대에 나서고, 그 결과 공급이 과잉으로 돌아서면 가격이 다시 하락하는 패턴을 보였다. '슈퍼 사이클'은 이런 흐름 속에서 특정 수요처의 폭발적 성장에 힘입어 2년 이상의 장기 호황이 이어지는 시기를 말한다.
과거의 대표적인 슈퍼 사이클은 2017년 전후의 '클라우드 붐'이었다. 당시 구글과 아마존, 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들이 클라우드를 위한 데이터센터를 공격적으로 증설하면서 서버용 D램 수요가 폭발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당시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다.
그렇다면 당시와 지금의 슈퍼 사이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전문가들은 그 핵심 키워드로 '수요의 질'과 '기술의 난이도'를 꼽는다. 클라우드 붐 당시의 호황이 범용 D램 중심의 물량 싸움이었다면, 현재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스페셜티(Specialty·맞춤형) 제품 중심의 기술과 가격 경쟁력 다툼이라는 것이다.
현재 반도체 슈퍼 사이클을 견인하는 핵심 동력은 단연 AI 데이터센터다. 챗GPT로 촉발된 생성형 AI 경쟁은 이제 '학습'(Training)을 넘어 '추론'(Inference)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더 많은 데이터를 더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자연스레 HBM 등 고성능 메모리 수요가 급증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엔비디아 등 AI 가속기 제조사들이 HBM 물량 확보에 사활을 걸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주목할 점은 HBM의 낙수효과다. HBM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일반 D램의 2~3배 수준의 웨이퍼 면적(Die size)이 필요하다. 따라서 HBM 주문이 늘수록 범용 D램의 생산은 자연스럽게 감소한다. HBM 수요가 증가하면 범용 D램의 공급 부족을 유발해 가격 상승을 부추기게 된다. 여기에 AI 서버에 필수적인 '고용량 기업용 SSD'(eSSD) 수요까지 급증하면서 그동안 부진했던 낸드플래시 시장도 흑자 기조로 돌아섰다.
최근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TrendForce)는 올해 1분기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 계약가격이 전 분기 대비 각각 90~95%, 55~60% 급등할 것으로 관측했다. 트렌드포스는 "AI 서버 수요 강세가 지속되면서 D램과 낸드플래시의 평균판매단가(ASP)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며 "특히 HBM3E와 같은 차세대 제품의 비중 확대가 반도체 제조사의 수익성을 극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호황은 세계적인 추세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는 지난해 7720억 달러(약 1119조3000억원)이던 글로벌 반도체 시장 규모가 올해 9750억 달러(약 1413조6000억원)로 25%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메모리 반도체 성장률도 30% 이상으로 전망했다.

증권가 "한국 반도체, 여전히 저평가"
그러나 일각에서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반도체 시장이 호황과 불황 사이클을 오간 만큼 언젠가는 결국 '중력의 법칙'이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현재의 상승세가 2023년 무렵 시작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2027년 이후에는 정점을 지나 하락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대 리스크는 'AI 거품론'의 현실화다. 주요 글로벌 빅테크들은 AI 인프라 확대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하고 있지만, 아직까진 명확한 수익 모델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만약 AI 사업이 기대만큼의 수익을 내지 못하면 빅테크들의 설비 투자는 자연스레 축소될 수밖에 없다. 특히 스마트폰과 PC 등 범용 제품 수요에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AI 데이터센터에 대한 공급이 줄어들게 되면 지금의 슈퍼 사이클을 지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HBM 공급 과잉과 중국의 범용 반도체 저가 공세 가능성도 반도체 업황 전환을 불러올 수 있는 요소로 지목된다.
그럼에도 증권가는 올해도 국내 증시에서 반도체 상승 랠리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이 낮아 주가 상승 여력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올해 실적 전망치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각각 2.1배와 2.5배다. 세계 3위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5.4배)의 절반 이하다. 주가수익비율(PER) 기준으로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해 실적 전망치 기준 PER은 각각 9.5배와 5.1배로, 마이크론(13.3배)에 비해 낮다. 이처럼 글로벌 경쟁사 대비 PBR과 PER이 저평가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이 지속적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내는 물론 외국 증권사들도 올해 초 실적 발표 시즌을 전후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목표주가를 일제히 상향 조정했다. 특히 SK증권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26만전자'와 '150만닉스'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동희 SK증권 연구원은 "장기 공급계약 기반의 '선(先) 수주 후(後) 증설' 구조가 정착되고 있어 과거의 반복적인 업황 사이클에서 벗어나 구조적 변화가 시작됐다"며 "가파른 주가 상승에도 추가 상승 여력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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