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스톡커] 250兆 ‘위법 관세’ 대혼돈, 韓협상 일단 뭉개야
美대법 “대통령에 상호관세 부과 권한 없다”
韓 등 무역협상 ‘올스톱’...환급 줄소송 예고
트럼프 “전 세계 10% 추가 관세 즉각 부과”
적자 증가→신용 악화→국채 금리 급등 우려
뉴욕 증시는 일단 반등...4월 對中 협상력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각국에 부과한 상호관세에 대해 미국 연방대법원이 “위법”이라는 최종 판단을 내렸다. 이에 따라 전 세계 무역 관계는 물론 글로벌 금융시장도 큰 혼란에 빠졌다. 당장 한국과 같은 무역 협정 체결국가들은 상호관세 인하를 근거로 한 합의 자체가 원천 무효 상황에 처함에 따라 재협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각국이 받아야 할 관세 환급금도 250조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규모가 될 전망이다. 오는 11월 3일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법 122조에 근거해 전 세계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겠다며 일단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동안 현 15%인 상호관세를 25%로 올리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에 추가 협상을 타진하던 한국도 일단은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가에서는 한국이 유럽연합(EU), 일본, 대만, 중국 등 다른 거대 경제권이 이번 판결을 계기로 어떻게 대응하는지 다 지켜본 뒤 최대한 시간을 벌며 대응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 대법원은 20일(현지 시간)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이 대통령에게 관세 부과 권한을 주지 않는다며 상호관세 관련 사건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의 패소를 전격 선고했다. 이 사건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4월 2일 만성적인 대규모 무역적자를 국가 안보·경제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IEEPA에 근거해 상호관세를 매기면서 시작됐다. 와인 수입업체 등 관세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 5곳이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4월 14일 국제무역법원(USCIT)에 소송을 제기했고, 같은 달 23일에는 오리건주를 비롯한 12개 주가 법적 분쟁에 가세했다.
IEEPA는 1977년 제정된 후 주로 적성국에 대한 제재나 자산 동결에 이용된 법이다. IEEPA에 무역수지나 제조업 경쟁력, 마약 밀반입 등의 이유를 갖다 붙여 관세를 부과한 지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지난해 5월과 8월 1·2심은 “관세를 부과할 배타적 권한은 의회에 있다”며 상호관세를 철회하라고 명령했다. 11월 5일 열린 대법원 첫 변론에서 대법관들도 각자의 정치 성향과 무관하게 상호관세의 합법성에 의문을 표시하는 발언을 내놓았다. 대법원은 결국 하급심 판단이 옳았다고 판단하며 트럼프 상호관세는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 9명 가운데 ‘위법’은 6명, ‘합법’은 3명으로 의견이 나뉘었다. 현 대법원은 보수와 진보 대법관의 비율이 6대3으로 트럼프 행정부에 유리하게 구성됐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진보 성향인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리나 케이건,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은 예상대로 모두 원고 승소를 지지했다. 여기에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비롯해 닐 고서치,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 등 보수 인사 3명까지 추가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다. 트럼프 행정부의 손을 들어준 대법관은 새뮤얼 알리토, 클래런스 토머스, 브랫 캐버노 등 3명뿐이었다.
이날 미국 사법부의 최종적인 위법 판단을 내린 관세는 IEEPA를 법적 근거로 삼은 상호관세와 합성 마약 펜타닐 유입을 막겠다는 명목으로 지난해 2월에 매긴 대(對)중국·캐나다·멕시코 관세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IEEPA가 대통령에게 부여한 권한 가운데 하나가 수입을 규제할 권한이며 관세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주장했으나, 대법원은 이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판결 과정에서 ‘중대 문제 원칙(major questions doctrine)’도 적용했다. 이 원칙은 의회가 명시적으로 권한을 위임한 경우가 아니라면 행정부가 법규를 유연하게 해석해 국가에 경제·정치적으로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단독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법리다. 대법원은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시절 학자금 대출 탕감 등 민주당의 여러 정책에도 중대 문제 원칙을 적용해 제동을 건 바 있다.
대법원은 “미국 헌법 제정자들은 평시 관세 부과 권한을 ‘의회 단독’으로 부여했다”며 “관세에 외교적 영향이 있다고 해서 모호한 표현이나 신중한 제한 없이 의회가 관세 권한을 포기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은 자신의 보기 드문 권한 행사를 정당화하기 위해 의회에서 명확하게 권한을 부여받았음을 제시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대법원은 또 “대통령은 수량, 기간, 범위의 제한이 없는 관세를 일방적으로 부과하는 엄청난 권한을 주장하고 있다”며 “대통령이 주장하는 권한의 폭, 역사와 헌법적 맥락을 고려하면 이런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의회의 분명한 승인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이 상호관세가 위법하다고 최종 판결을 내리면서 그간 행정부에 관세를 낸 미국 기업과 외국 회사들의 환급 소송이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도 판결에서 이미 징수된 관세에 대한 환급 문제는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았다. 환급 소송을 마주할 하급 법원에 지침을 내리지 않음으로써 또다른 혼란 가능성을 남긴 것이다. 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이후 독립기구인 연방거래위원회(FTC)의 민주당 추천 위원 해임, 이민 단속 집행 허가, 성소수자 지원금 삭감, 연방 교육부 직원 해고, 트랜스젠더 군 복무 배제, 출생시민권 제한 명령 효력 허용 등 논란이 된 사건 대다수에 대해 현 행정부의 손을 들어주다가 결정적인 역사적 사건 앞에서는 다른 판단을 보였다.
이미 여러 미국과 해외 기업들은 1·2심 결과를 바탕으로 관세 반환 소송을 낸 상태다. 중국 경제전문 매체 차이징에 따르면 세계 최대 전기차 제조업체인 중국 비야디(BYD)의 미국 자회사 4곳도 지난달 말 미국 국제무역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날 소수의견을 낸 캐버노 대법관은 “정부가 수십억 달러를 반환해야 하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며 “그 과정은 엉망진창(mess)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펜실베이니아대의 ‘펜-와튼 예산 모델(PWBW)’의 경제학자들을 인용해 환급 요구액이 1750억 달러(약 254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CNN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대법원 판결 소식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주지사들과 조찬 회동을 하다가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직후 “수치스러운 일(a disgrace)”이라며 “대체 수단(backup plan)”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CNN은 아울러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그간 대법원의 관세 관련 판결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개인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고 보도했다. 또 많은 것이 걸린 상황에서 대법원이 관세에 반대하는 판결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3시간 뒤 백악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무역법 122조에 근거해 전 세계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바로 서명한다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관세가 3일 뒤 발효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끔찍한 판결에 매우 실망했다”며 “좋은 소식은 IEEPA에 따른 관세보다 강력한 수단, 방법, 법규, 권한이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년간 우리를 뜯어낸 다른 나라들이 황홀해하고 있고 너무 기뻐서 거리에서 춤을 추고 있다”며 “그러나 오랫동안 춤추지는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IEEPA 대신 사용할 관세 부과 수단으로 무역확장법 232조, 무역법 122조·201조·301조, 관세법 338조 등을 거론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10% 추가 관세 부과의 근거로 제시한 무역법 122조는 대통령이 국제수지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관세를 부과하거나 수입량을 제한하는 쿼터를 설정하는 것을 허용한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의 크고 심각한 국제수지 적자 대응’ ‘외환시장에서 달러의 임박하고 중대한 평가절하 방지’ ‘국제수지 불균형을 수정하기 위한 다른 나라들과의 협력’이 관세 부과의 명분이다. 무역법 122조에 근거한 관세는 15%를 넘어서는 안 되며 의회가 연장하지 않는 한 150일 동안만 유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5개월 동안 우리는 다른 나라에 대한 공정한 관세를 부과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조사를 할 것”이라면서 “궁극적으로 우리가 이전보다 더 많은 돈을 걷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울러 행정부가 무역법 301조에 근거한 관세 조사를 시작한다고도 알렸다. 무역법 301조는 미국의 무역을 제한하거나 부담을 주는 외국 정부의 부당하거나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행동, 정책, 관행에 관세 부과 등으로 대응할 권한을 행정부에 부여하는 조항이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USTR)는 기자회견에서 “무역법 301조 조사는 법적 근거가 매우 탄탄하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느 국가를 상대로 무역법 301조 조사를 개시할지는 밝히지 않았다. 앞서 쿠팡의 미국 모회사 쿠팡Inc의 지분을 보유한 미국 투자회사들은 지난달 22일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을 문제 삼으며 트럼프 행정부에 무역법 301조를 근거로 한 조사에 착수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 외교 무기가 무력화되면서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무역 협상도 전부 재설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무효화된 상호관세를 무역법, 관세법 등 다른 수단으로 완전히 대체하는 데에는 예상보다 시일이 걸릴 수 있다. 각 조치가 조사, 보고서 작성 등 최소한의 행정 절차는 거쳐야 하기에 관세가 회복될 때까지 최소 몇 달은 소요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관세 공백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각 국가와 기업들의 환급 수요가 잇따를 경우 이에 일일이 대응하는 작업도 만만찮은 일이다. 이번 판결에 자동차와 철강·알루미늄 등 품목별 관세는 적용되지 않는다.
특히 한미 양국은 지난해 11월 13일 미국이 자동차 품목 관세와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내리고 한국이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단행하기로 한 내용의 공동 팩트시트(자료집)를 발표한 바 있다. 미국이 한국의 우라늄 농축,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핵추진 잠수함 도입을 지원·승인하기로 한 내용도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다 한국 국회가 ‘한미 전략적 투자 관리를 위한 특별법안(대미 투자 특별법)’을 빨리 처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난달 26일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기존 15%에서 25%로 다시 인상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후 김민석 국무총리를 비롯해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잇따라 미국을 찾았지만, 양국 간 논의는 교착 상태에 빠졌다. 쿠팡 사태를 포함한 한국의 정보통신망법 개정 움직임도 양국 갈등 요인이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올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나랏빚이 급격히 늘고 있기에 관세는 포기할 수 없는 정책이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지난달 연방정부의 국가 총부채는 38조 5100억 달러(약 5경 3000조 원)에 이르렀다. 4월쯤이면 39조 달러 돌파가 유력시된다. 트럼프 대통령 재당선 당시인 2024년 11월만 해도 36조 달러 수준이었던 나라 빚이 1년 남짓한 기간 만에 2조 5000억 달러 이상 더 급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IEEPA 관세를 활용해 다른 나라와 체결한 무역 합의가 여전히 유효하느냐’는 질문에는 “다수는 유효하고 일부는 그렇지 않을 텐데 그런 것은 다른 관세로 대체하겠다”고 답했다. ‘행정부가 지금까지 징수한 관세를 환급해야 하느냐’는 물음에는 “그들(대법관들)은 의견을 쓰는 데 몇 개월이 걸렸는데도 그 문제를 논의하지도 않았다”며 “앞으로 수년간 소송에서 다투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X(옛 트위터)에 글을 올리고 “대법원 판결의 유일한 효과는 대통령이 미국의 산업과 공급망을 보호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밴스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광범위한 관세 권한들을 보유하고 있다”며 ‘그것들을 사용해 미국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행정부의 무역 우선순위를 진전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댈러스 경제클럽’ 연설문을 배포하고 “무역확장법 232조와 무역법 301조의 관세 권한을 활용할 것”이라며 “122조 권한 활용에 강화될 가능성이 있는 232조·301조 관세가 결합되면 올해 관세 수익은 사실상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월가와 외교가 전문가들은 한국 등 각국이 대규모 대미 투자를 조건으로 맺은 큰 틀의 무역 합의는 와해되지 않을 가능성을 높게 봤다. 섣불리 이를 파기하려 했다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또다른 보복 카드를 꺼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재정 적자 폭이 커지면서 미국 국채 금리가 급등하고 신용등급이 하락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채권 금리 급등이 중장기적으로 유동성을 위축시켜 뉴욕 증시에 악재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관세 무기화에 힘이 빠지면서 미국 제조업 유치와 고용 활성화에도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시각도 제기됐다.
실제 19일 미 상무부는 지난해 미국의 수입이 2024년보다 1978억 달러(4.8%) 늘어난 4조 3338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이 가운데 관세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상품 수입이 4.3% 증가한 3조 4384억 달러로 역대 최대치로 치솟았다. 지난해 미국의 무역적자는 총 9015억 달러로 전년 대비 0.2%(21억 달러) 줄어드는 데 그쳤다. 상품 부문의 무역 적자는 2.1% 늘어난 1조 2409억 달러로 사상 최대 규모에 이르렀다. 관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지 않는 서비스 부문의 흑자가 상품 적자를 상쇄할 만큼 크게 확대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미국의 지난해 무역적자 규모는 조 바이든 전 행정부 시절인 2024년 9035억 달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또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했던 2022년 9237억 달러와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수치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도 연간 수입액과 무역적자가 줄지 않은 것은 미국 기업들이 지난해 1~3월 관세 예고에 앞서 수입량을 대폭 늘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4월 상호관세를 발표하며 적자를 축소했다가 하반기부터 EU, 일본, 한국, 중국 등과 무역 합의를 맺으며 일부 관세를 철회하거나 낮춘 영향이 경제 성과에 반영됐다. 실제 지난해 12월의 무역적자는 703억 달러로 2023년 월평균 적자인 645억 달러를 웃돌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는 교역 상대국별 무역량에도 유의미한 영향을 줬다. 지난해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는 2021억 달러로 2024년보다 934억 달러 급감했다. 이는 지난 2004년 이후 21년 만에 가장 적은 수치였다. 대신 멕시코(1969억 달러), 베트남(1782억 달러), 대만(1468억 달러) 등에 대한 미국의 무역적자 액수가 사상 최대치로 커졌다. EU 상대 미국의 무역적자(2188억 달러)는 사상 처음으로 대중국 적자 폭을 앞질렀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미국 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을 트럼프 대통령의 3월 31일~4월 2일 중국 방문 일정과 연계해 보도하기도 했다. 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3월 31일~4월 2일 방중 일정을 알리기 직전 판결을 내린 점에 주목한 보도였다. SCMP는 “미국이 중국에 압박을 가했던 강력한 수단이 제거됐다”며 “미국의 협상 입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의 통계를 인용해 지난해 12월 14일 기준으로 위법으로 판정된 상호관세 액수는 817억 달러, 펜타닐 관세는 378억 달러라고 계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패소 소식에 뉴욕 증시는 일단 강세를 보였다. 관세 판결 불확실성이 해소된 데다 기업들의 무역 갈등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는 기대가 반영됐다. 20일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0.47%,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0.69%, 나스닥종합지수는 0.90%씩 상승했다. 이날 뉴욕 증시는 역대 최장기간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여파로 지난해 4분기 미국 경제성장률(전기 대비 연율)이 전문가 전망치(2.5%)를 크게 밑돈 1.4%로 집계됐다는 소식에 모두 하락 출발했다가 반등했다. 지난해 12월 미국의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가 2024년 12월보다 2.9% 상승해 시장 예상치를 웃돌았다는 소식도 3월 금리 인하 기대를 낮췄다.
CNBC는 이번 판결로 지난해 33억 달러(약 4조 8000억 원)의 ‘관세 폭탄’을 맞았던 애플이 가장 큰 수혜를 볼 것으로 내다봤다. 애플은 다른 거대 기술기업(빅테크)과 달리 아이폰 등 완제품 제조업체이기에 그간 관세 부담이 유독 컸다. 아이폰17 시리즈를 본격적으로 판매한 지난해 4분기에만 14억 달러(약 2조 원)가량의 관세를 냈다. 애플은 미국 내에는 별다른 제조시설을 두지 않고 있고 중국, 인도 등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생산 기지를 미국으로 돌리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줄기찬 압박에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8월 6일 백악관에서 미국 내에 4년 간 1000억 달러(약 145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단행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이번 판결로 글로벌 무역 불확실성은 한동안 극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대체 관세의 범위와 효과를 알기 어려운 데다 각국이 미국과 맺은 무역 협정의 유효성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와 법원이 쏟아지게 될 관세 환급 소송에 어떤 논리를 들이댈지도 불투명하다.
나아가 다음달 31일부터 시작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전략도 크게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간 중국을 압박하는 미국의 최대 무역 무기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출 통제와 펜타닐 관세였던 까닭이다. 미중 관세 갈등은 전 세계 무역 지형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초대형 사안이기도 하다.
대내적으로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흔들릴 가능성이 생겼다. 여당인 공화당 내에서도 균열이 생기던 찰나에 대형 악재를 뒤집어 쓰게 됐다.
한국의 경우는 이번 판결에 독자 대응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후속 움직임과 EU, 일본, 중국, 대만 등 다른 주요국들의 반응을 살피면서 최대한 추가 협상을 서두르지 않을 공산이 크다. 대미 투자를 앞당길 명분도, 관세에 전전긍긍할 이유도 당분간은 사라졌다. 물론, 안보 동맹인 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추가 요구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청와대는 미국 대법원 판결 직후 “정부는 판결 내용과 미국 정부의 입장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국익에 가장 부합하는 방향으로 (대응 방안을)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청와대는 이후 관련 대응 관계부처 회의를 열었다.

뉴욕=윤경환 특파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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