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에게 듣는 ‘문학’과 ‘독자’… 청소년 문학잡지 ‘빈칸’ 3호 [인천에서 산 책]

박경호 2026. 2. 21. 11:54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내 유일 청소년 문학잡지 발간
청소년 독자 참여 대담 특집
청소년소설 현실성 부족 지적
고전·현대 넘나드는 독서 경향
문학 주체로 성장 가능성 주목

‘빈칸’(BLANK) 3호 표지.

현재 국내에서 ‘청소년 문학잡지’가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이 발행하고 있는 연간 잡지 ‘빈칸’(BLANK) 3호가 최근 나왔습니다. 청소년 소설이나 시는 물론 요즘 청소년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일상을 보내는지 살필 수 있는 흥미로운 잡지입니다.

이번 3호에서는 청소년들이 독자로서 문학을 어떻게 접하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풀어 낸 ‘잡담회: 청소년문학과 청소년독자’ 특집이 눈에 띕니다. 평소 적극적으로 문학을 읽는 고등학생 1명과 중학생 3명, 송수연 어린이청소년문학 평론가와 오시은 어린이청소년문학 작가가 나눈 이야기들(2025년 7월 19일)입니다. ‘잡담’이라고 하기엔 진지하고 깊이 있는 내용이 듬뿍 담겼네요.

청소년들이 생각하는 ‘청소년소설’에서는 미성숙한 자아, 성장, 교훈 등의 키워드가 공통으로 나왔습니다. 중학생 이서린은 소설과 청소년 소설의 차이에 대해 “궁극적인 차이점은 성장이라고 생각해요. 청소년소설의 주인공은 미숙한 자아를 가졌는데 몸은 다 커버렸고, 그런 청소년이 이러저러한 깨달음을 얻으면서 본인의 자아를 성장시키는 이야기가 정석”이라고 말했습니다. 학업, 연애, 일상, 진로 등의 소재가 주로 등장하고 청소년의 혼란스럽거나 불안한 감정을 포착하는 작품들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송수연 평론가는 “어른은 성숙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고등학생 나현욱은 “성년이 된다는 건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 어른이 되는 시작점”이라며 “사실 어른이라고 취급받으면서부터 어른이 되는 과정을 밟는 거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완벽한 어른은 현실에서 만나기 힘든데, 그래도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것을 추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어른 독자 여러분은 동의하시나요?

청소년 독자들이 청소년소설만 읽는 건 아닐 겁니다. 잡담회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나니아 연대기’(C. S. 루이스), ‘스노볼’(박소영·창비·2020), ‘위저드 베이커리’(구병모·창비·2009) 같은 국내외 청소년 문학뿐 아니라 ‘돈키호테’(세르반테스), ‘고도를 기다리며’(사무엘 베케트) 같은 고전도 탐독하고 있었습니다.

‘빈칸’ 잡담회 현장 모습. /출처 : ‘빈칸’ 3호 33쪽


이들이 생각하는 청소년소설에 대한 단점도 새겨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소설 속 청소년의 일상이나 생각이 현실적이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중학생 유현지는 “초등학생도 하지 않을 것 같은 말과 행동들도 많”다며 “인물이 너무 어리고 본능에만 충실한 생각을 한다든가, 자기 감정에 따라서 함부로 행동을 해버린다든가 하면 꺼려”지고 현실적이지도 않다고 했습니다.

소설 속 체험학습 묘사에서는 아무도 손에 문제집을 들고 가지 않는데, 실제로는 반에서 한두 명은 무조건 문제집을 갖고 버스에서 푼다는 ‘현실 고증’ 지적도 나왔습니다. 작품에서 새로운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방식이 “무조건 전학”이라 식상하다는 얘기도 재밌는 의견이었습니다.

잡담회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보통 용돈으로 책을 구매한다고 합니다. 요즘 청소년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걱정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우인 것 같기도 합니다. 진행자들은 ‘주체적인 청소년 독자’에 대해서도 질문했습니다. 중학생 김유신은 “학교 독서 동아리 할 때, ‘우리 어떤 책을 읽을까’ 하면서 애들끼리 직접 투표하고 원하는 책을 고르고 그런 과정에서 재미를 많이 느끼”고 있다며 “지원금처럼 학생들한테 뭔가를 준 다음에 네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 봐라” 같은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나현욱은 독후감보다는 자유롭게 토론하는 자리가 책 읽기 욕구를 더 불러일으킬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도서비 지원 같은 제도가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었습니다.

이외에도 청소년 문학과 독자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청소년들이 문학의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이번 잡담회를 읽고 난 저의 대답은 “예스(Yes)”입니다.

이번 호에도 청소년이 읽기 좋은 시, 소설, 희곡, 에세이 작품들이 다양하게 실렸습니다. 서평을 통해서는 읽을 만한 책을 고르면서 책 읽기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 같고요. ‘우리들의 네칸’,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 감상기’를 다룬 ‘우리들의 빈칸’ 등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코너에서 생각을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생각을 직접 읽을 수 있는 앙케이트 ‘빈칸의 질문들’ 또한 색다른 시도입니다.

잡지 ‘빈칸’은 도서관 등에 무료로 배포됐습니다. 온라인에서는 인천문화재단 홈페이지 내 ‘재단 자료실’ - ‘한국근대문학관자료’에서 내려받아 읽을 수 있습니다. 1년에 한 번씩 발행되는데, 더 자주 접하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청소년과 어른 모두에게 권하는 잡지입니다.



/박경호 기자 pkhh@kyeongin.com

Copyright © 경인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