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관세 위법판결] 전문가들 "韓, 섣부른 재협상 거론, 정 맞을 수 있어"

김동규 2026. 2. 2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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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플랜B 관세' 즉각 가동…"판도라 상자 열려, 불확실성 더 커졌다"
"관세 자동환급 기대 어려워…소송 통한 환급에 상당 시간 소요"
"EU·캐나다 등과 공조, 대미투자·협상 채널 관리로 전략적 대응해야"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김동규 기자 = 통상 전문가들은 미국 연방대법원이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를 위법으로 판단했지만, 한국 정부와 기업이 관세 환급 및 무역 합의 조정 등을 먼저 거론하며 나서기보다 신중하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법원 판결로 상호관세는 무효가 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당장 이를 대체할 신규 관세에 서명하고 더 많은 관세를 거두겠다고 공언한 만큼 소탐대실(小貪大失)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도 평택항에 쌓여있는 수출입 컨테이너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21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이번 판결로 지난번 한미 통상 협상 결과와 합의가 어떻게 될 것인지가 가장 큰 관심 사안일 것"이라면서 "지금 우리 쪽에서 여기에 대해 주도적으로 뭔가 하려다가는 상당한 부작용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법원 판결 직후 상호관세를 대체하기 위한 수단으로 무역법 122조에 근거해 '글로벌 10% 관세'에 서명한 것을 거론하면서 "1심과 2심을 거치며 대법원 판결도 어느 정도 예상됐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가 미리 검토한 '플랜B'를 철저히 가동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 15%를 대체할 수 있는 수단으로 무역법 122조뿐 아니라 무역확장법 232조, 무역법 301조, 관세법 338조, 수입 라이선스 수수료 등을 거론하며 앞으로 더 많은 관세를 거두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며 "이번 상호관세 위법 판결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셈이어서 외국 정부나 기업이 안도하거나 축배를 들 수 없는 상황"라고 말했다.

허 교수는 "어느 나라 정부이건 지금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정을 맞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워싱턴 로이터=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정책을 만능키처럼 써온 것에 대법원이 브레이크를 걸었다는 게 우리로선 나쁘지 않은 것 같다"면서도 "그러나 오히려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는 것이 문제"라고 짚었다.

김 교수는 한미가 맺은 양해각서(MOU)와 발표한 조인트 팩트시트에 상호관세 개념이 들어가 있어 이를 고쳐야 할 수 있다면서도 "이 경우 우리가 원하는 핵연료 처리, 핵잠수함 연료 공급 등을 미국이 지체하거나 없었던 일로 하자고 할 가능성도 있어 적극적으로 이 상황을 활용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권남훈 산업연구원장 역시 "트럼프 행정부가 대법원 위법 판결에 대비해 대응책을 마련해 둔 만큼 기본적으로 한미 통상 협정이 단기간에 바뀌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진단했다.

권 원장은 "우리 대미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와 반도체에 적용할 수 있는 품목 관세 틀이 아직 살아있고, 자동차, 철강도 상호관세가 아닌 품목 관세 적용을 받아 대법원 판결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며 "이것만으로도 미국은 한국에 충분한 지렛대로 쓸 수 있어 당장 투자 협정을 변경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봤다.

경기도 평택항에 수출용 자동차가 세워져 있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와 기업이 이런 맥락을 고려해 신중히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상호관세 환급 등 기술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 25% 부과를 전제로 미국과 협상해 타결한 무역 합의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가 남겨진 과제"라며 "미국과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꺼낼지는 상황을 면밀히 살피면서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이 교수는 "정부가 내부적으로 상황을 분석하고 재협상 등 다양한 대응책을 준비하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먼저 나서서 재협상을 거론하는 것은 상당히 성급하고 적절하지 않은 대응"이라며 "법적 문제를 넘어 정치, 외교, 경제, 안보 분야 파장이 예상되는 만큼 다른 국가들의 움직임 등을 보고 조율하면서 대응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도 "트럼프 행정부가 다른 무역법을 활용할 수 있는 만큼, 관세 정책의 방향 자체가 크게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당분간 한국은 대미 투자를 통상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완화하고 상호 호혜적 실익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경기도 평택항에 쌓여 있는 철강 제품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상호관세 무효화에 따라 대미 수출 기업에 대한 관세 환급이 이뤄져야 하지만, 이 같은 조치가 쉽게 이뤄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장상식 원장은 "법리적으로는 관세 환급 가능성이 열려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 발언을 감안할 때 자동 환급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예상했다.

장 원장은 "수입 통관 후 314일이 지나지 않은 미정산 건은 사후정정을 제출한 뒤 미 세관국경보호국(CBP)의 판단을 지켜볼 필요가 있고, 정산이 완료된 건은 이의제기 및 소송 절차를 거쳐야 해 최종 환급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민 교수도 "관세를 낸 기업들은 이를 하루라도 빨리 돌려받으려 여러 조치를 취하려 할 텐데, 상당히 복잡한 절차와 실무 작업 필요하다"며 "여기에 미국이 새로운 관세를 들고나오면서 이를 시행하기 위한 조사 등 절차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할지 혼란스러운 상황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정관 장관, 한미 제조업 파트너십 양해각서 체결식 (서울=연합뉴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해 8월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월라드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열린 한미 제조업 파트너십 양해각서(MOU) 체결식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2025.8.26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국익 관점에서 중장기적으로 대미 투자를 신속히 진행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허윤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법적 리스크 때문에 한미 투자 협상 결과를 빨리 기정사실로 하고 싶었던 것"이라며 "우리로서는 지금까지 미국과 약속했던 것들은 충실히 이행하려는 자세가 향후 트럼프 2기 3년 기간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허 교수는 "김정관 산업부 장관과 러트닉 미 상무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과 그리어 USTR 대표, 구윤철 부총리와 베선트 미 재무장관 등 한미 간 공적인 소통 채널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여러 가지 갈등이 발생할 소지가 있는 상황을 관리해 나가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김태황 교수도 "이제 미국의 움직임에 더 민감하고 더 긴밀하게 협의할 채널을 강화해야 된다"며 주미한국대사관의 역할을 보다 강화하고, EU나 호주, 캐나다, 영국 등이 미국에 대응하는 국가와도 협력 관계를 맺고 공조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로 미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약화될 소지가 있는 만큼, 이런 상황을 유리하게 활용하기 위한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권남훈 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무소불위로 휘두르던 관세 카드가 견제받게 되면서 한국이 작년처럼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던 상황에서 벗어나 협상의 여지가 다소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측면에서 한미 FTA 등을 상기시키면서 이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d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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