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받는 이들에 ‘조건 없는 사랑’ 전하고 싶어”
첫 앨범 ‘다시 십이월’ 발매…참사 이후 삶 담아
“비슷한 트라우마 있는 모든 사람들 치유되길”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들이 떠난 뒤 두 번째 설날마저 지나갔지만, 사고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여전히 요원하다. 세상은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가고 기억도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다. 그러나 남겨진 유족들의 시간은 아직도 그날에 멈춰 있다.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우려 애쓰는 동안 가슴에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만 덧나고 있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더군요. 사고 전까지는 ‘사랑’이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냥 하는 말에 불과했죠. 그런데 가족을 잃고 나니, 사랑이… 그저 조건 없는 사랑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주에서 활동해온 싱어송라이터 김세형(29)이 주축이 된 밴드 ‘김세형과 들꽃’이 지난 13일 첫 앨범 ‘다시 십이월’을 발표했다. 12·29 참사로 누나와 매형을 잃은 김 씨가 무너진 삶의 자리에서 다시 일상을 붙잡기까지의 시간을 음악으로 기록한 작품이다.
기자는 최근 광주 광산구 선운동의 한 카페에서 ‘김세형과 들꽃’ 멤버들을 만나 이번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김세형은 지역에서 꾸준히 공연을 이어온 뮤지션이자 음악 강사로 활동해왔다. 인디 무대에 오르며 전국을 다녔고, 학교와 교육기관에서 기타를 가르치며 생계를 이어갔다. 음악은 그에게 직업이자 일상이었다.
그러나 참사는 그의 삶을 통째로 흔들었다. 김세형은 “누나와 매형을 잃은 것도 크지만 그 이후에 일상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 가장 무서웠다”고 했다. 당연하던 연락, 당연하던 약속, 당연하던 내일이 사라지자 ‘음악을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남았다.

이번 앨범은 총 10곡으로 구성됐다. 김세형은 “12·29 참사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지만, 의미를 억지로 구겨 넣고 싶지는 않았다”며 “결국은 ‘사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앨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첫 트랙 ‘사랑의 프로젝트’다. 노래 대신 단어로 채운 스포큰 워드(spoken word) 형식으로, 50여 명이 “사랑해”라고 말한 음성을 하나씩 모아 이어 붙였다. 누군가의 웃음 섞인 목소리도 있고, 조심스럽게 속삭이는 목소리도 있다.
김세형은 “사고 이후 너무 힘들고 피곤했을 때, 무언가를 해야 위로받는 방식이 아니라 그저 듣기만 해도 되는 위로가 필요했다”며 “조건 없이 ‘사랑해’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참사 유가족이 아니더라도 마음이 지친 사람들, 직장과 학교에서 하루를 버티는 이들에게도 조건 없이 건네는 이 말이 작은 힘이 되길 바랐다”고 덧붙였다.
9번 트랙 ‘반짝반짝’은 김세형이 휴대전화로 녹음한 데모 버전이 그대로 실린 곡이다. 한국작가회의가 펴낸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추모시집에 실린 이원규 시인의 시에서 출발했다.
“그대 떠난 것 같지 않아 / 어금니를 꽉 물고 살아보려고 하네 / 한 겨울밤, 하늘 보며 손을 흔들어 / 아는 척 좀 해줘요, 내 두 눈을 보며.”
날것의 목소리와 문장이 겹치며, 남겨진 이들의 시간을 담담히 전한다.
앨범 제작에는 여러 손길이 더해졌다. 밴드 로고와 앨범 커버는 김세형의 아버지이자 화가였던 고(故) 몽피 김경학 씨의 작품이다. 딸을 떠나보낸 뒤 지난해 11월 세상을 떠난 그는, 생전 마지막까지 아들의 음악을 함께 준비했다. CD 케이스와 MD 디자인은 ‘sisi(탁시현)’가 맡았고, 마스터링은 제주 ‘스튜디오 램프 사운드’를 운영하는 강경덕 엔지니어가 담당했다. 앨범 배급은 동양표준 음향사를 통해 이뤄진다.
김세형은 앨범을 누구에게 가장 먼저 전하고 싶냐는 질문에 “희생자들뿐 아니라 그 주변의 사람들”을 언급했다.
“179명의 희생자와 유가족, 친구들뿐 아니라 당시 현장에서 함께했던 봉사자들과 기자들, 소방과 경찰까지 모두 비슷한 트라우마 속에 있을 겁니다. 이번 앨범을 만들며 음악이 가진 치유의 힘을 매일 실감했고, 공항에서 오랫동안 함께했던 이들에게도 그 힘이 전해지길 바랍니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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