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점에 서 있는 제주4.3 연구...사료 발굴, 비교 연구, 협력 체계 필요
2028년이면 제주4.3은 80주년을 맞는다. 기나긴 야만의 시간을 지나, 특별법 제정과 희생자 보상까지 성사되는 등 많은 진전을 이뤄냈다. 그러나 그것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난 2월 5일부터 6일까지 열린 제주대학교 일반대학원 4.3융합전공 제5회 학술대회 '4.3연구, 80주년을 향해/너머'는 4.3 연구의 2기를 여는 자리로 평가받을 만큼, 유의미한 내용들이 공유됐다. [제주의소리]는 독자들과 함께 4.3 80주년 이후를 함께 고민하고자, 4.3융합전공과 함께 제5회 학술대회 기조발제문을 순차적으로 연재한다. [편집자 주]
3. 본질 연구의 의의: 사료 연구와 비교연구
본질 연구의 핵심은 1차 사료에 기반한 실증적 연구이다. 신생 정부의 체계가 불완전한 상황에서 국내의 공적 문서는 상당 부분이 남아 있지 않거나 아예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사건의 실체를 복원할 수 있는 사료는 미군정(미군 및 외교) 문서와 국내외 신문사료다. 미국 측 사료는 제주도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했는지를 가장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접근할 수 있다. 이들 사료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통해 사건의 실체를 재구성할 수 있다.
미국 측 문서를 활용한다고 해서 이것이 미국의 개입을 규명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보다 중요한 점은 문서들 속에 담긴 4.3의 편린들을 찾아 이를 정교하게 꿰맞추고, 교차 분석함으로써 사건의 전체적 실체를 복원하는 데 있다. 여기에는 4.3 경험자들의 구술 증언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나온 숱한 증언들을 해체하고 조합해 증언의 신빙성과 문서의 신빙성을 높여야 한다.
이미 새로운 사료의 발굴과 교차 분석을 통해 '4.28 평화협상'으로 알려졌던 제9연대장과 제주도인민유격대 사령관의 만남이 실제로는 '4.30 평화협상'이었음이 새롭게 확인됐고, 이는 협상 결렬이 이른바 '오라리 사건' 때문이 아니라 미군정 내부의 전략적 판단과 더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해석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은 정부 보고서의 전체적인 흐름과 결코 배치되지 않는다.
1949년 1월 대통령 이승만이 국무회의에서 "미해군이 (제주도에) 기항하여 호결과를 냈다"고 한 발언의 이면에는 미군이 작전에 개입한 것이 아니라 미해군의 요청으로 기항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4.3의 최종 국면에서 최후의 무장대 추격·섬멸 작전에 나섰던 경찰의 작전은 제주도경찰국의 독자적 결정이 아니라 한국전쟁 시기 미군의 전략 구도 속에서 더 큰 그림 속에 재배치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기존의 사료와 새로 발굴된 사료를 날줄씨줄로 꿰맞춰 사건의 진실에 접근할 때 본질 연구는 더욱 탄력을 받게 된다.
국내외 신문 자료 역시 본질 연구에 유효한 사료다. 2003년 정부 보고서의 발간 때만 해도 신문사료의 이용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지난 20여년 동안 디지털화로 접근성이 크게 강화됐다. 당시 통신시설의 제약 등으로 신문 보도에 오보도 상당한 편이다. 그럼에도 여러 신문의 보도를 대조 분석하고, 이를 다시 미국 문서나 증언과 비교 검토하다 보면 진실에 한발짝 다가갈 수 있다고 본다. 사료의 비판과 교차 검증은 기존 연구의 오류를 수정하고 사후 연구의 기반을 바로 세우는 데 필수적이다.
비교연구 또한 필요하다. 이는 4.3을 지역적 사건이 아니라 사건이 아니라 세계사적 관점에서 재위치 시키기 때문이다. 4.3 시기 제주에서 왜 대규모 민간인 학살과 초토화가 발생했는지, 국가폭력이 왜 그토록 거칠게 행사됐는지, 이는 단순히 지역적 문제나 일시적 폭력의 결과로 설명되지 않는다. 냉전체제 형성기 미국의 전략, 좌우 대립의 심화, 지역사회 내부 균열은 모두 4.3 시기 폭력의 중요한 구성 요소였다. 본질 연구는 이러한 맥락 속에서 4.3을 재배치함으로써 사건의 원인과 진행과정을 더욱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한다.
필자가 그리스 내전을 비교 대상으로 삼았던 것도 같은 이유다. 1948년 5월 『UP통신』 기자 제임스 로퍼가 남한 정세와 그리스 정세, 특히 제주도를 연결해 보도했고, 주한미군사령관 하지 역시 남한과 그리스의 사태 전개가 매우 유사하다고 평가했다. 이 시기는 전후 냉전체제가 형성되던 시점이었다. 미국의 '트루먼 독트린'은 그리스내전을 계기로 나왔다. 나치 독일의 점령과 탈점령 이후 그리스가 처한 현실은 '제주도는 조선의 축도판'이라는 당시의 표현을 빗대면 '제주도는 그리스의 축도판'이나 마찬가지였다.
두 사건은 미국의 직간접 개입, 우익단체의 동원과 극단적 폭력, 좌우 대립의 첨예화, 민간인 학살, 초토화, 지역사회의 균열이라는 공통 구조를 지닌다. 이러한 비교는 4.3을 지역적 사건으로 보는 관점을 넘어, 세계 냉전체제 형성기의 국제적 맥락 속에서 해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4. 4.3 연구의 투 트랙 접근을 위하여
4.3 연구는 전환점에 서 있다. 정부 보고서 발간 이후 20여년 동안 사후 연구는 기억, 문학, 예술, 기념, 트라우마, 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크게 확장됐지만, 사건의 진실을 보다 촘촘하게 밝히는 본질 연구는 여전히 공백이 크다. 본질 연구가 취약한 상태에서 사후 연구만 확대될 경우 해석은 풍부해질 수 있으나, 그 해석을 떠받치는 사실적 기반과 구조적 분석은 취약한 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4.3 연구는 '사후 연구'와 '본질 연구'라는 투 트랙으로 접근해야 한다. 본질 연구가 충실하게 이뤄진다면, 사후 연구는 그 토대 위에 다양한 영역의 해석을 정교화할 수 있다. 본질 연구는 사건을 구성하는 사실, 구조, 지휘체계, 폭력의 동학 등 해명해야 할 실체에 접근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기반이 마련될 때 사후 연구가 풍부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명확한 가해자 기록과 4.3 시기의 개별 사건에 대한 사실 규명이 충실히 이뤄져야 기억 연구는 피해와 생존의 경험을 보다 정확한 맥락 속에 위치시킬 수 있다. 탄탄한 사실 기반 위에 있을 때 문학·예술 연구는 더 강력한 서사적 힘을 가질 수 있고, 교육·기념·치유 연구는 올바른 기억을 구성할 수 있다.
앞으로 본질 연구를 위한 과제를 보면, 첫째, 국내외 1차 사료의 발굴을 통한 사료 기반 실증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 사료의 발굴뿐 아니라 기존 사료의 재해석과 교차 검증 또한 필수적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정부 보고서가 나올 때와 비교하면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다. 4.3의 1차 사료 접근도 이런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가능하다.
둘째, 비교연구의 확장이 필요하다. 4.3을 냉전 형성기의 구조 속에 위치시키고 동시대의 사건과 비교 분석하는 작업은 4.3의 성격을 국제적 맥락에서 위치시킨다. 셋째, 본질 연구는 연구자 공동체의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본질 연구의 특성상 사료 발굴이 쉽지 않고, 사건의 재해석이 필요한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 보고서가 "다각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4.3사건의 전체 모습을 드러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히고 있듯이, 아직 규명해야 할 '진실 그 자체'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러한 투 트랙 접근은 4.3 진실 규명을 위한 필수 조건이자 4.3 연구의 지평을 확대하는 길이다.

제주 출생으로 1989년부터 2025년까지 한겨레 기자로 활동했다. 제주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제1회 4.3언론상 본상(2022)을 수상했다. ▲4.3, 19470301-19540921 - 기나긴 침묵 밖으로(2023) ▲그리스와 제주, 비극의 역사와 그 후(2014) ▲4.3, 미국에 묻다(2021) 등을 펴냈다. ▲현대 사회와 제노사이드(공동, 2005) ▲20세기의 대량 학살과 제노사이드(공동, 2006) 등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무덤에서 살아나온 4.3 수형자들(2002) ▲그늘 속의 4.3(2009) ▲4.3과 여성(전3권) 등 구술집 작업에도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