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혈진압 정권에 저항하는 의사들···시위대 몰래 치료하는 ‘비밀 조직’

이란 정권의 반정부 시위 유혈 진압이 극에 달했던 지난달 8일(현지시간), 테헤란의 의사 나르게스(가명)는 핏자국을 따라 한 건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다리에 총상을 입은 여성이 숨어 있었다. 나르게스는 히잡으로 지혈대를 만들어 상처를 지혈했다. “24시간 전에 독감 환자를 치료했지만 이젠 총에 맞은 환자를 치료하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 나르게스는 젊은 의사들을 모아 거실·부엌·식당 등에서 부상을 입은 시위대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나르게스는 배낭에 진통제와 메스 등 의약품을 잔뜩 넣어 다녔다. 메스는 오븐과 가스레인지에서 소독했다. 나르게스는 전에 본 적 없는 끔찍한 학살 현장을 마주했다. 14살 소년은 금속 파편에 맞아 만신창이가 됐고, 한 남자는 종아리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미 시사주간지 뉴요커는 11일 이란에서 정권의 탄압을 피해 심각한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의료 전문가들의 ‘비밀 조직’이 구성돼 활동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란 정권이 부상당한 시위 참가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병원을 뒤지고 환자들을 체포하면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이들이 치료를 받기 어려워지면서 의료진이 자발적으로 네트워크를 만들고 나선 것이다.
뉴요커는 많은 정부 운영 병원들이 보안군의 하위 기관처럼 운영되고, 치료를 받으려는 환자들을 표적으로 삼는다고 전했다. 이란 북부 도시 라슈트의 한 병원에서 일하는 아누쉬는 “병동은 마치 정권의 폭력배들이 장악한 전쟁터 같았다”며 사복 요원들이 시위대를 따라 수술실까지 들어왔다 수술이 끝나면 체포해 가며, 수술 도중 경찰관이 끼어들어 의료진과 몸싸움을 벌이는 일도 벌어진다고 전했다.
이란 정권은 시위 유혈 진압의 참상을 최전선에서 목격한 증인인 의료진 또한 표적으로 삼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연락처를 공개하며 부상당한 시위대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게시물을 올린 외과의사 알리레자 골치니는 며칠 후 경찰에 체포돼 폭행과 심문을 당했다. 이란 의사협회장은 17명의 의료종사자가 시위와 관련해 법적 조치를 받았다고 전했다. 한 의사 네트워크는 수십명의 의료진이 체포됐다고 전했다.
미국에 본부를 둔 인권의사협회 사만 지아자리피 사무총장은 “이란 정부는 병원에서 진실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잘 알고 있다”며 “여론을 통제하기 위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부상자들이 심각한 상처에도 불구하고 체포를 우려해 의료시설에 가는 것을 꺼리고 있다. 정부 운영이 아닌 사립 병원이 부족하고 환자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서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외곽에서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이에 자원봉사자들은 의료 수송대를 조직해 환자들을 전국 각지의 안전한 수술실로 이송하고 있다.
지난달 자원봉사자들의 의료 수송대는 밤사이 320㎞ 떨어진 도시까지 5시간 동안 차를 몰고 가 눈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환자를 안전한 장소로 이동시켰다. 하지만 치료의 ‘골든 타임’을 놓치고 말았다. 며칠 후 젊은 여성은 눈을 적출해야 했다. 자원봉사자 중 한 명은 “우리는 총으로 무장한 정부를 상대로 나무 숟가락으로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간호사·자원봉사자로 이뤄진 의료 네트워크는 전국 곳곳에 고립된 시위대를 찾아가 수십건의 수술을 진행해왔다. 이 네트워크 조직을 주도한 외과 의사 카림은 2018년부터 반정부 시위가 벌어질 때마다 비밀리에 의료 전문가 그룹을 이끌며 시위대의 치료를 도왔다. 그 과정에서 시위대를 수술한 사실이 발각돼 당국에 체포되기도 했다. 한 차례 옥고를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카림은 지난달 보안군이 시위대를 향해 실탄을 발사한 이후 다시 의료 네트워크를 활성화시켰다.
카림은 도시들을 돌며 집, 카페, 병원을 찾아 환자들을 치료했다. 그는 “이번의 잔혹함은 달랐다. 보안군들은 한 세대를 말살하려는 듯 총을 쏘고 있었다”며 “내가 살리지 못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내 아이들이 떠오른다. 나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 정권이 인터넷을 차단·통제하고 시위대 사망자 수를 축소하는 가운데 자체적으로 의료 기록 작업을 벌이는 의료진들도 있다. 아누쉬는 응급실에서 엑스레이와 CT 등을 기록하며 약 500명의 외상 환자 기록을 수집했다. 그는 “이 사람들이 존재했고, 자유를 위한 대가를 치렀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11일 미국에 본부를 둔 인권운동가통신(HRANA)에 따르면 유혈 진압으로 인한 사망자는 7002명에 달한다. 이는 이란 정부가 지난달 21일 밝힌 사망자 3117명에 비해 두 배가 넘는 규모다. 영국에 본부를 둔 반체제 매체 이란인터내셔널은 지난달 8~9일 양일간 3만6500명이 넘게 사망했다고 추산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601271639011
https://www.khan.co.kr/article/202602081725001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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