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대하는 가장 과학적 태도…까마귀 앞에서 과학자는 겸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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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활동이 지구환경을 좌지우지하는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로 들어섰다는 주장이 나온 지 오래입니다.
까마귀의 행동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실험 방법론에서 벗어나자 미련 없이 제외해 버린 것이다.
까마귀를 직접 기르기도 하고 숲속에 움막을 짓고 죽은 사슴 곁에서 밤을 지새웠다.
과거 늑대가 사라진 숲에서 까마귀는 소심했었지만, 늑대가 돌아온 옐로스톤의 까마귀는 당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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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인류의 활동이 지구환경을 좌지우지하는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로 들어섰다는 주장이 나온 지 오래입니다. 이제라도 자연과 공존할 방법을 찾으려면 기후, 환경, 동물에 대해 알아야겠죠. 남종영 환경논픽션 작가가 4주마다 연재하는 ‘인류세의 독서법’이 길잡이가 돼 드립니다.

이 책은 벨기에의 철학자 뱅시안 데스프레 덕분에 알게 됐다. 까마귀 하나로 이토록 두꺼운 책을 쓸 수 있다니! 베른트 하인리히의 '까마귀의 마음'은 생물학 책이라기보다 다른 종의 문화와 내면을 탐구하는 인류학적 보고서에 가깝다.
데스프레는 '진리는 무엇인가'보다 '진리는 어떻게 생산되는가'를 묻는 과학철학자다. 우리가 동물에 대해 갖는 관념도 과학이 만들어낸 구성물이다. 안타깝게도 그 안에는 인간의 우월성을 입증하려는 욕망, 동물은 수동적이라는 편견, 모든 행동의 동기를 번식으로 환원하려는 주류 남성 과학자들의 시선이 투영돼 있다.
동물의 지성은 어떻게 측정되는가?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스키너의 심리 상자'를 즐겨 썼다. 비둘기나 쥐를 상자에 넣고 이들이 레버를 누르면 먹이가 나오는 단순한 게임이다. 그런데 한 연구자가 심리 상자에 까마귀를 넣었다. 까마귀는 게임의 룰을 따르는 대신 상자를 부숴버렸다. 연구자는 어떻게 했을까? 까마귀를 실험 대상에서 제외하고 '말 잘 듣는' 비둘기 실험으로 돌아갔다.
이를 두고 데스프레는 그가 동물의 목소리에 '응답'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까마귀의 행동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실험 방법론에서 벗어나자 미련 없이 제외해 버린 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말이 통하지 않는 동물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데스프레가 동물 행동 연구의 모범으로 제시한 이가 저자 하인리히다.

하인리히는 실험실을 뛰쳐나가 별의별 경험을 다 했다. 까마귀를 직접 기르기도 하고 숲속에 움막을 짓고 죽은 사슴 곁에서 밤을 지새웠다. 야생 늑대를 재도입한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그가 목격한 것은 경이로운 '종간 협력'이었다. 그곳에서 까마귀는 '늑대-새'였다. 과거 늑대가 사라진 숲에서 까마귀는 소심했었지만, 늑대가 돌아온 옐로스톤의 까마귀는 당당했다. 그들은 죽은 사슴을 두고 파티를 여는 늑대 곁에서 고기를 채가고, 배가 부르면 늑대의 꼬리를 잡아당기며 장난을 쳤다. 늑대는 까마귀를 내치지 않았다. 그들은 공진화한 파트너였다. 까마귀는 상공을 선회하며 사슴을 발견해 늑대를 부르고, 늑대는 날카로운 이빨로 가죽을 찢어 까마귀에게 살코기를 내어준다.
협동은 인간과도 이뤄진다. 까마귀들은 한쪽 날개를 내렸다가 올리면서 '깍깍'댐으로써, 사냥꾼을 부른다. 여기, 사냥감이 있어! 사냥이 끝나면 인간은 내장을 남겨 보답한다. 현대의 까마귀들에게 총소리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다. 총성이 울리면 까마귀들은 도망가지 않고 사냥 현장으로 몰려든다. 까마귀에게 인간은 침입자가 아니다. 그저 '두 발 달린 늑대'일 뿐이다.
하인리히는 이 모든 관찰 앞에서 겸손하다. 그는 "지식이 뒷받침되지 않을 때 일화는 얼마든지 주관적으로 확대 해석될 수 있다"면서도 "모든 일화를 거부하는 것 또한 사실을 무시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우리는 돌고래가 사람을 구해줬다는 영웅담이나 동물이란 레버를 당기는 '스키너의 비둘기'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모두 듣는다. 진실은 그사이 어딘가 혹은 그 너머에 있을 것이다. 자신이 탐구하는 대상이 '무한대처럼 도달할 수 없는 목적지'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묵묵히 정진하는 게 가장 과학자다운 자세가 아닐까?
까마귀는 여전히 하늘을 가르고, 늑대는 여전히 숲을 달리고, 우리는 그들을 이해하려 애쓴다. 밤하늘의 별빛을 볼 때처럼 경이를 느끼고 겸손을 갖출 때, 우리는 비로소 까마귀의 마음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남종영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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