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볼 시간조차 없어진 워킹맘… 새벽 배송은 적절한 구원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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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기자들이 직접 여러 사회 문제와 주변의 이야기를 젠더적 관점에서 풀어냅니다.
새벽 배송이 워킹맘의 일과 가족의 균형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생활 인프라로 전제되는 가운데, 워킹맘의 구원자로 담론화되는 것이다.
워킹맘을 비롯해 시간 부족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숫자가 많아져 새벽 배송이 늘어날수록, 물론 '소비자'라는 누군가는 24시간 쉼 없는 배송이라는 편익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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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가속화하는 새벽 배송
편집자주
한국일보 기자들이 직접 여러 사회 문제와 주변의 이야기를 젠더적 관점에서 풀어냅니다. '젠더, 공간, 권력' 등을 쓴 안숙영 계명대 여성학과 교수의 글도 기고로 함께 합니다.

설 연휴 첫날 동대구역에 들렀다. 역 광장에는 베를린과 뉴욕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그리고 국내 첫 번째로 2021년 4월 15일에 설치된 기후 시계가 있다. 지구의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상승하기까지 남은 시간을 표기하는 시계로, 0으로 갈수록 폭우나 가뭄 및 해수면 상승 등의 기후 재난 발생 확률이 높아진다는 걸 알리는 역할을 한다. 설치 당시 오후 3시 기준 6년 261일 6시간을 나타내던 시계에는 이제 3년 157일 17시간만이 남아 있었다.
기후 시계 앞에서 새벽 배송을 생각하다
기후 시계 설치 이후 5년이 채 지나지도 않은 시점에 거의 절반으로 줄어든 시간을 확인하다 보니, 최근 새벽 배송을 둘러싼 논의로 생각이 이른다.
한국 사회는 이제 새벽 배송 없이는 일상 생활이 불가능한 나라가 된 것처럼 보인다. 소비자 편익을 우선시하는 입장에서는, 특히 맞벌이하는 워킹맘의 숨 가쁜 일상을 새벽 배송이 필수인 대표적인 사례로 들곤 한다. 새벽 배송이 워킹맘의 일과 가족의 균형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생활 인프라로 전제되는 가운데, 워킹맘의 구원자로 담론화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워킹맘을 비롯한 소비자 편익을 위해 새벽 배송 규제를 완화하는 한편으로, 쿠팡 등 온라인 플랫폼과 대형마트 간의 공정한 경쟁이라는 이름 아래 이를 대형마트로까지 확대하는 게 최선의 해결책일까?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통해 14년간 금지됐던 대형마트의 심야 영업과 새벽 배송을 허용하고 전국의 수많은 대형마트 점포를 새벽 배송 거점으로 활용하면, 워킹맘의 일상이 더 여유로워지고 아이를 키우는 환경 또한 더 풍요로워질까?
시간 빈곤 속 워킹맘, 기후 위기 속 지구

이런 질문들에 답하려면 먼저 워킹맘들이 신선식품을 비롯한 식료품이나 아이들 학용품 등을 새벽에 받아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그것은 혹시 '시간 빈곤' 때문은 아닐까? 장시간의 임금 노동으로 집 근처 시장이나 마트에서 장을 볼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바쁘게 달려야만 하기 때문 아닐까? 또 워킹맘이라는 단어는 익숙하지만 워킹대디라는 단어는 아직 낯선 가운데,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주로 음식을 준비하고 아이를 돌보기 때문은 아닐까?
장시간의 노동 체제에 기초한 노동 중심 사회로서의 한국 사회가 워킹맘으로 하여금 시간 빈곤자로 살아가도록 만드는 현재를 비판적으로 돌아본다. 노동 시간 단축과 돌봄의 분배를 젠더 관점에서 논의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워킹맘을 비롯해 시간 부족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숫자가 많아져 새벽 배송이 늘어날수록, 물론 '소비자'라는 누군가는 24시간 쉼 없는 배송이라는 편익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노동자'라는 누군가는 건강을 지키기 어려워지고 '지구'라는 생태계는 잦은 기후 위기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기후 시계의 시간이 줄어드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생산과 소비 증가에 따른 지구 온난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새벽 배송 없이 일상을 꾸릴 수 있었다. 따라서 앞으로 새벽 배송을 더 확대할 게 아니라, 조금 불편하더라도 시간 빈곤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 노동자 건강과 지구 재생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고 삶터로서의 지역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우리 모두 가까운 곳에서 직접 장 보는 횟수를 늘려 보는 건 어떨까.
안숙영 계명대 여성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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