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이 백성 집 빼앗는 병폐를 개탄하노라” [.txt]

1655년(효종 6) 7월15일, 대사헌 홍명하는 사대부들이 ‘여가’(閭家)를 빼앗아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면서 이 사태를 은폐한 한성부 관료들을 처벌할 것을 효종에게 요청했다. ‘여가탈입’(閭家奪入)이란 말로 요약되는 문제의 시작이다. ‘여가’는 여염의 집(일반 백성의 집)이란 뜻이고, ‘탈입’은 빼앗아 들어가 사는 것이다. ‘여가탈입’은 곧 사대부들이 백성의 집을 강탈하는 행위다.
홍명하의 요청으로 여가탈입은 사라졌던가. 그럴 리 없다. 그랬다면 조선이 아니다. 여가탈입은 현종, 숙종 때도 계속 문제가 되었다. 1678년 숙종은 즉위 첫해부터 여가탈입의 금지를 강력하게 지시했다. 하지만 1698년, 1719년에도 계속 문제가 되는 것을 보면, 사대부들이 백성의 집을 강탈하는 행위는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
1724년 8월 말 영조가 왕위에 올랐다. 한달 뒤 그는 한성부에 여가탈입의 사례를 조사해 보고하라고 지시했고, 최소한 3명 이상이 체포되어 수감되었다. 이후 영조는 수시로 여가탈입의 조사와 처벌을 지시했다. 왕의 강력하고 지속적인 관심으로 인해 처벌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덧붙이자면, 여가탈입은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1729년(영조 5년) 부교리 이종백은 강원도로 옮겨 사는 서울 사대부들 역시 여가탈입으로 주거를 마련하는 것이 너무나도 놀라웠다고 말했다.
1731년 7월 영조는 여가탈입의 경우를 조사해 보고하게 하였다. 예조 정랑 유굉이 걸려들었다. 유굉은 시골 출신으로 민가에 세를 들어 살고 있었는데, 영조는 이것을 여가탈입으로 판단해 그를 유배형에 처했고, 한성부 관료들도 책임을 물어 파직하거나 시말서를 쓰게 하였다.
영조가 유굉을 유배형에 처한 것은 7월10일이었다. 닷새 뒤 정언 이성효(李性孝)는 어떤 고위 관료도 동일한 행위를 했지만, 유굉과 달리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 고위 관료는 곧 영의정 홍치중이었다. 홍치중은 수어청의 총책임자로서 민가를 빌려 군교(軍校)들이 머무르는 곳으로 삼았고, 그 역시 이따금 와서 거처했다고 한다. 홍치중은 상소를 올려 변명했고 영조는 영의정인 그를 처벌하지 않았지만, 원칙은 원칙이라면서 군교들과 한성부 관료들은 모두 처벌하라고 지시했다. 물론 이내 우승지 조명신의 요청으로 지시를 철회했지만, 영조는 내심 어떤 형태로든 사족 관료가 백성의 집에 사는 것 자체를 극도로 꺼렸던 것이 분명하다. 어떤 이유가 있었던가?

1726년 영조는 서울에 와서 벼슬하는 사족이 민가의 바깥채를 빌려 사는 것과 집 전체를 빼앗아 사는 것이 아주 다르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바깥채를 빌려 사는 것조차 금지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우리나라는 사대부와 상놈의 등급이 칼로 자른 듯하여 상놈은 감히 사대부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대부가 처음에는 바깥사랑을 빌렸다가 차츰 집 전체를 빼앗고 마는 병폐가 있게 된다. 물론 상놈이 사적으로 빌려주는 것이라면 해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근래 온갖 일이 다 해이해진 결과 처음에 엄하게 금지한 일도 이내 폐기되어 시행되지 않는다. 선조(先朝, 숙종을 말한다) 때 여가탈입을 엄하게 금지한 바 있지만, 끝내는 해이해졌고, 심지어 ‘세를 들어 산다’는 명분을 들이대며 번번이 집을 빼앗고 들어가 사는 폐단이 있어, 내가 항상 개탄해 왔다. 이것이 깡그리 금지하게 된 이유다.”
양반과 상놈은 이미 현격한 신분적 격차가 있다. 처음에는 빌려 쓴다고 하다가 결국 집 전체를 빼앗아도 신분적 격차 때문에 상놈은 항의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니 애초부터 각박할 정도로 법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조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가?
‘영조실록’의 사신(史臣) 역시 영조의 태도를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대개 사대부들이 백성의 집을 빼앗는 것이 고질적인 폐단이 되어, 편안히 제 거처에서 살 수 없게 된 백성들이 왕왕 있었다. 임금은 즉위 초부터 민간의 질고(疾苦)를 깊이 알아 법을 만들어 여가탈입을 엄격히 금했고, 때때로 그런 사례가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게 하였다.” 이 말에 이어 사신은 영조가 만든 법이 국가의 기본 법전에 실렸다고 말했다. 과연 여가탈입 처벌법은 ‘속대전’(續大典·1746)에 실린다. 조문은 이렇다. “여염집을 강탈해 들어가 사는 자는 도형(徒刑) 3년에 처한다”라고 하고, 거기에 다시 설명을 덧붙였다. “집을 빌렸다고 핑계를 대는 자도 동일하게 처벌한다.” 물론 여가탈입을 알고도 보고하지 않는 한성부의 관료도 처벌의 대상이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은 소수 기득권층의 재산 증식 수단이 되었다. 나머지 대부분의 국민은 부동산으로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 정교하고 강력한 법의 실행만이 이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정부의 부동산 관련 정책이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을 보고, 문득 ‘속대전’에 실린 ‘여가탈입’ 처벌법이 떠올라 이렇게 써 본다. 추가하자면,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성실한 젊은이라면 누구나 노력에 따라 소유를 꿈꾸어볼 수 있는 ‘살 만한 집’을 대거 공급하는 일도 병행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 밖에도 방법은 허다할 것이다. 늘 실천이 문제일 뿐이다.
인문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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