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비폭증 10년… K방산은 지속 성장할 수 있을까 [박수찬의 軍]
냉전 이후 장기간 침체를 거듭하던 글로벌 방위산업계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다만 K방산이 글로벌 방위산업계처럼 오랜 기간 고도 성장을 거듭할 지는 불확실하다. 급변하는 트렌드에 맞춰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모멘텀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쟁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
냉전이 끝나자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라의 운명을 건 전쟁은 이제 없을 것’이라는 인식에서였다.

‘전쟁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유럽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군비 증강이 시작됐다. ‘군사력=국력’이란 인식이 퍼지게 된 것이다.
세계 각국 정부와 방산업체는 생산력 강화와 신무기 개발을 선언하고 있다. 지난 20∼30년간의 신무기 개발 공백을 빠르게 메우면서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다.
캐나다는 5000억 캐나다달러(약 530조원)를 투자하는 방위산업 전략을 최근 발표했으며, 호주도 인공지능(AI)·자율시스템·양자 기술에 민간 자본을 유치, 첨단 국방 기술 개발을 지원할 10억 호주달러(1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한다.

중국의 압박에 맞서 대만은 미국에서 전투기와 정밀유도무기 등을 대량 구매했고,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도 군함과 전투기 등의 신규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같은 요소들은 세계 각국의 국방비 지출이 상당 기간 크게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국방비 증액은 무기 수요를 늘리고, 방위산업체의 생산 및 연구개발 물량을 증대한다. 이는 글로벌 방위산업의 고도 성장을 지속하는 동력이 된다.
최근 유럽의 6세대 전투기 개발 계획인 미래전투항공체계(FCAS)와 관련, 프랑스·독일 간 갈등이 증폭되자 독일에서 독자 개발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국방비 급증 및 방위산업 역량 강화와 무관치 않다.
다만 방위산업의 성장세를 주도할 분야는 과거와는 달라질 전망이다.

미국과 유럽에선 2030년대 지상·해상·공중·우주·사이버를 단일 네트워크로 묶는 다영역통합작전 개념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AI와 빅데이터, 네트워크, 소프트웨어가 핵심적 역할을 하는 자율 인지·연결 우위 개념이 확대되고, 2040년에는 이같은 방식이 기술적 성숙 단계에 접어들면서 보편적 전투방식으로 자리를 잡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육·해·공군 분야도 이같은 변화에 맞춰 발전을 지속할 전망이다.

스텔스기 내부무장창과 무인기 날개 장착이 가능할 정도로 작고, 기존 항공무장보다 사거리·위력·정밀도는 우수한 기종이 널리 쓰이게 된다. 이같은 소형 정밀유도무기는 스텔스기와 무인기의 공격력을 대폭 끌어올린다.
육군은 전방에 배치한 정찰 무인체계가 탐지한 정보를 AI와 빅데이터 기술로 실시간 융합, 포병과 지대지 미사일 등에 할당하는 구조로 바뀔 전망이다.
해군은 AI 기반 신호 융합·처리 기술이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선진국 방위산업도 개편될 전망이다. 록히드마틴·보잉 등의 체계종합업계와 더불어 AI·센서·클라우드·데이터 분석 업계가 방위산업의 한 축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간이 갈수록 전통적 방위산업보다 소프트웨어·AI·데이터 분야 매출이 더 빠르게 증대되는 방향으로 바뀔 것이다.

이같은 글로벌 추세에서 K방산이 수혜를 입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K방산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대외적 위상도 높아졌지만, 잠재적인 약점은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K방산의 주요 수출 아이템은 K-2 전차, 천무 다연장로켓, K-9 자주포, 천궁 지대공미사일 등이다. 10∼20여년 전에 개발된 지상장비다.
단기적으론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수출이 순조롭다.
하지만 글로벌 방위산업과 국방 트렌드가 재래식 무기에서 첨단기술 장비로 변화하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K방산의 성장세를 유지할 AI·소프트웨어·빅데이터·무인 등의 기술을 갖춘 차세대 K방산 아이템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도 국산 호위함을 샀거나 관심을 보이는 국가들은 레이더나 전자전 장비 등을 고를 때 유럽·이스라엘산이 먼저다.

전차를 비롯한 재래식 무기는 구매국이 우위에 있다. 세계 각국 제조사들은 산업협력과 기술이전, 현지에서의 유지·보수 확대 등을 구매국에 제안하는 수출 전략을 구사한다.
이는 단기적으론 수주와 매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반면 중장기적으론 유지·보수 분야 매출을 줄이고 잠재적 경쟁자를 늘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K방산도 이같은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AI와 소프트웨어는 업데이트와 데이터 축적을 통해 시간이 갈수록 성능이 우수해진다. 따라서 모든 구매국 또는 기업은 업데이트 작업, 유지·보수, 시뮬레이션, 훈련 등의 다양한 서비스를 장기간 필요로 한다.
AI와 소프트웨어 제조업체는 이를 통해 지속적이고도 광범위한 매출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가치의 포획’이 이뤄지는 것이다.
단일 프로그램을 제작·검증하면 다수의 플랫폼과 체계에 탑재할 수 있다. 재래식 무기처럼 구매국 요구에 맞는 개조·개발 수요도 훨씬 적다. 영업이익률과 마진이 재래식 무기 판매보다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
재래식 무기 위주의 수출 상품을 지닌 K방산이 팔란티어와 엔트로픽처럼 국방 AI·소프트웨어·데이터 서비스 확대로 방위산업계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하는 글로벌 디지털 기업과의 경쟁에서 앞서기는 쉽지 않다.
K방산의 호조에 따라 현 정부는 수출 증대를 위한 컨트롤타워 구축 등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단기적인 성과에 초점을 맞춘 ‘숏폼’ 방식의 정책은 지속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오히려 잠재적 경쟁자 증가, 글로벌 트렌드에 뒤쳐진 산업 구조 혁신 실패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지금은 20∼30년을 내다본 미래 먹거리 육성, 무기도입 소요 시간을 대폭 단축하는 국방획득체계 개편을 통한 내수 시장 활력 증진, 연구개발 동기부여 강화 등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래야 K방산이 글로벌 방위산업 시장에서 오랜 기간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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