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푸드처럼...전기도 '지산지소' 가능할까?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에너지 정책 방향도 변화하고 있다. 정부는 대규모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장거리 송전망을 통해 공급하는 중앙집중형 구조에서 벗어나,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지역에서 소비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형 분산 전력망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이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늘어나는 전력 수급 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환경성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도모하겠다는 취지다.
푸드 마일리지 줄이는 로컬푸드처럼...
이와 비슷한 취지의 접근이 과거에도 있었다. 먹거리 분야의 '로컬푸드(Local Food)' 정책이다. 로컬푸드는 생산지 인근에서 재배된 농산물을 해당 지역에서 소비하는 구조를 지향한다. 농산물의 이동 거리를 의미하는 '푸드 마일리지(food mileage)'를 줄이면 운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을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 받았다. 장거리 수송에 따른 냉장·포장·보관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 요소로 평가된다. 환경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더 효율적이었다는 시선이다.
물론 로컬푸드가 무조건 환경적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일부 국제 연구 등에서는 식품의 전체 온실가스 배출 가운데 운송이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적으로 10% 안팎에 불과하며, 생산 단계에서의 배출이 훨씬 크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즉 '지역 생산'이 항상 '저탄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생산 방식과 에너지 투입 구조에 따라 환경 영향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정부 등에서는 직매장 운영, 학교급식 연계, 공공기관 우선구매 등을 통해 로컬푸드 정책을 확산해 왔다. 일부 지역에서는 농가 소득 안정과 지역 내 소비 확대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환경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지역 순환' 모델이라는 점에서 정책적 의미를 인정받은 사례도 있다.
에너지 분야에서도 이 같은 '지산지소' 원칙을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정부는 분산에너지 활성화를 위한 법·제도 정비와 함께 차세대 분산형 전력망 구축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관련 예산을 투입해 배전망 중심의 운영 체계를 강화하고,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재의 전력 시스템은 2001년 전력산업 구조 개편 이후 대형 발전기와 송전망 중심으로 운영돼 왔다. 그러나 태양광·풍력 등 소규모 분산형 전원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지역 배전망 차원에서의 계통 관리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재생에너지는 날씨와 계절에 따라 발전량 변동 폭이 커 계통 안정성 확보가 과제로 지적돼 왔다.
분산형 전력망 장점은?
정부는 배전망에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유연성 자원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재생에너지의 추가 접속 여력을 늘리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ESS는 전력 생산이 수요를 초과할 때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 시 방전하는 방식으로, 재생에너지 변동성을 완화하는 핵심 설비로 꼽힌다. 다만 ESS 설치 확대가 실제로 어느 정도의 재생에너지 수용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투자 대비 효율성은 충분한지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분산형 전력망의 장점으로는 송전 거리 단축에 따른 전력 손실 감소가 거론된다. 일반적으로 송전 거리가 길어질수록 저항 손실이 증가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송배전 손실률은 국제적으로 낮은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어, 분산화에 따른 손실 감소 효과가 전체 전력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시장 제도 개편도 병행되고 있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잉여 발전 시 전력 가격이 하락하면 난방 자원화(P2H)나 전기차 충전(V2G) 등으로 수요를 유도하는 제도를 시범적으로 운영하거나 확대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는 공급 중심의 전력 운영에서 벗어나 수요를 유연하게 조정하는 구조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이러한 수요 반응 자원이 실제로 충분한 규모로 확보될 수 있을지, 소비자 참여를 어떻게 유도할 것인지는 과제로 남아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지역 단위의 설비 투자와 운영, 유지관리, 에너지 데이터 서비스 산업 등 새로운 시장이 형성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부는 산학연 협력을 통해 분산형 전력망 기술을 실증하고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구상도 밝히고 있다. 그러나 분산형 전원이 확대될 경우 지역 내 입지 갈등이나 전력 요금 체계 개편 문제 등 또 다른 사회적 쟁점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로컬푸드 정책이 환경적 이상과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목표를 동시에 내세웠지만, 실제 성과와 한계를 두고 다양한 평가가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에너지 분야의 지산지소 전략 역시 지속적인 점검과 보완이 필요하다. 분산형 전력망은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하나의 정책 수단이지만, 자동적으로 환경성과 경제성을 모두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실현이라는 장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중앙집중형과 분산형 체계를 어떻게 조화시킬지에 대한 정교한 설계가 요구된다. 지역에서 생산한 에너지를 지역에서 소비하는 구조는 분명 매력적인 대안이지만, 다만 실질적 효과는 기술적 타당성, 경제성, 사회적 수용성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할 때 보다 더 명확하게 입증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