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은 0원인데 건보료 23만원, 말이 돼요?"...15억 아파트 퇴직자의 '착각' [은퇴자 X의 설계]
직장 다닐땐, 회사랑 '반반' 부담하던 건보료
퇴직 동시에 '지역가입자'..자산 있으면 내야


[파이낸셜뉴스] “회사 다닐 때는 건강보험료를 의식해본 적이 없었다. 은퇴하고 나니 제일 먼저 체감되는 고정지출이 그거더라.”
주된 직장에서 물러난 50대 후반 은퇴자들 사이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말이다. 은퇴 이후 고정 수입은 줄어들거나 아예 사라졌는데, 건강보험료 고지서는 퇴직 직후 곧바로 날아온다. 그것도 재직 시절보다 훨씬 큰 금액으로 말이다.
‘버는 돈은 줄었는데, 왜 보험료는 더 늘었나.’ 은퇴자들이 느끼는 이 의문은 개인의 착각이 아니다. 은퇴와 동시에 바뀌는 ‘건강보험 계산 방식’에서 비롯된 필연적인 결과다.

국민건강보험공단, NH투자증권100세시대연구소에 따르면 2024년말 기준 건강보험 총 적용인구는 5143만9000여명이다.
이중 직장가입자는 전체 건강보험적용인구 10명중 4명꼴(39%)이다. 3명 정도(31%)는 직장가입자에게 주로 생계를 의존하는 피부양자로 등록되어 있으며, 나머지 3명(30%)은 지역가입자로 분류된다.
직장가입자가 퇴직 후 재취업을 하지 않거나 피부양자로 등록되지 못할 경우 지역가입자로 전환된다.
2026년에는 보험료율 자체도 인상됐다. 2026년도 건강보험료율은 7.19%로 전년 대비 0.10%p 오른 수준이다.
은퇴 직후 건강보험료가 충격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단순하다. 신분이 바뀌기 때문이다. 직장에 다닐 때는 ‘직장가입자’였지만, 퇴직과 동시에 대부분은 ‘지역가입자’가 된다. 이 순간부터 건강보험료를 계산하는 기준이 완전히 달라진다.
▶직장가입자 : 월급(보수) 기준, 보험료를 회사와 개인이 50:50으로 부담
▶지역가입자 : '소득 + 재산' 기준, 보험료를 본인이 100% 부담
쉽게 말해 회사에서 대신 내주던 보험료를 개인이 전부 떠안게 되고, 이전에는 계산에 포함되지 않던 집과 자산이 ‘월급처럼’ 계산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은퇴자들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지점이다. 근로소득도 없고 연금도 아직 안 나오는데 매달 20만~30만원의 보험료가 책정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유는 건강보험공단이 ‘재산’을 단순한 자산이 아니라 매달 일정한 소득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으로 보기 때문이다. 지역가입자의 재산 점수에는 토지, 주택, 건축물, 선박, 항공기가 모두 포함된다. 만약 무주택자라면 전월세 보증금도 일정 비율(30%)로 환산되어 재산 점수에 합산된다. 실제로 돈이 들어오느냐와 상관없이 ‘자산이 있으니 낼 능력이 있다’고 판단하는 셈이다.
공단은 보유한 집이나 토지를 ‘재산 점수’로 바꾼 뒤, 이를 다시 가상의 월 소득으로 환산해 보험료를 매긴다.

서울 성동구에 시세 15억원(공시가격 10억원) 아파트 한 채를 보유한 58세 김현식씨를 가정해보자. 그는 퇴직 전까지 월 400만원을 받는 직장인이었다. 당시 건강보험료는 총 28만7600원이었지만, 회사가 절반을 부담해 실제 본인이 낸 돈은 월 14만3800원이었다.
퇴직 후 그는 지역가입자로 전환됐다. 다른 소득은 없다. 집 한 채뿐이다. 그러나 건보료는 오히려 올랐다.
서울 시세 15억원 아파트의 재산세 과세표준(재산세 과표는 공시가격의 60% 수준)은 약 6억원 수준이다. 여기서 기본공제 1억원을 빼면 5억원이 건보료 산정 대상이 된다. 공단은 이 재산을 월 200만원대 소득 능력으로 환산한다. 보험료율 7.19%를 적용하면 실제 고지서는 월 18만~23만원 선에서 형성된다.
월급은 0원이 됐지만 보험료는 오히려 월 5만~7만원 늘어난 셈이다. 이는 재직 시절 대비 약 39% 증가한 금액이다. 연간으로 따지면 60만~80만원 추가 부담이다.
결국 지역가입자에게 집은 더 이상 자산이 아니라, 매달 보험료를 만들어내는 계산 대상이다.
정부는 은퇴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제도를 손봤다.
2024년 2월부터 자동차에 대한 건보료 부과 폐지했고 지역가입자 재산 기본공제를 1억원으로 확대했다. 이로 인해 일부 가입자의 보험료는 실제로 줄었다.
다만 수도권 1주택 보유자처럼 재산점수가 여전히 크게 잡히는 계층에서는 체감 인하 폭이 제한적이다. '자동차 항목이 빠진 만큼만 줄었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건강보험료를 0원으로 만드는 가장 강력한 장치는 피부양자다. 직장에 다니는 배우자나 자녀 밑으로 들어가면 보험료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피부양자는 신분이 아니라 조건이다. 매년 소득과 재산을 기준으로 자동 재심사된다.
소득: 연 2000만원 이하
재산세 과세표준
5.4억원 이하: 소득 2000만원 이하 가능
5.4억 초과~9억원 이하: 소득 1000만원 이하
9억원 초과: 원칙적으로 불가
많은 은퇴자가 연금 설계를 할 때 기준으로 삼는 숫자가 있다. 바로 연 1500만원이다.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한 기준이다. 하지만 이 기준은 세금의 논리이고, 건강보험료는 전혀 다른 규칙으로 움직인다.
▶공적연금(국민연금·공무원연금): 건보료·피부양자 심사에 포함
▶이자·배당소득: 합산
▶IRP·연금저축 등 사적연금: 현재 기준으로 건보료에 미포함
세금만 보고 설계했다가 건보료에서 예상치 못한 부담이 생기는 이유다.
특히 피부양자 자격을 설계할 때는 배우자 간 소득 구조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부부 중 한 명이 소득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피부양자 자격을 상실하면 해당 배우자는 지역가입자로 전환된다. 이 경우 가계 단위의 건강보험료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건강보험료는 ‘절약’으로 해결되는 비용이 아니다. 무조건 아끼는 방법이 아니라, 제도를 이용해 줄이는 방법이다.
▶과세표준 확인: 실거래가가 아닌 ‘재산세 과표’를 기준으로 피부양자 가능성을 따져라
▶금융소득 만기 관리: 특정 해에 소득이 몰려 2000만 원을 넘기지 않도록 분산하라
▶세금과 건보료 기준 분리: 절세와 건보료 방어 전략을 동시에 짜야 한다
▶모의계산 필수: 공단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견적을 뽑아라
Q1. 은퇴했는데 왜 보험료가 늘죠?
A. 직장에 있을 땐 회사가 절반을 냈고, 은퇴 후엔 본인이 전부 부담한다. 게다가 재산이 소득처럼 계산된다.
Q 2. 피부양자면 정말 0원인가요?
A. 원칙적으로 그렇다. 다만 소득·재산 기준을 넘으면 자동 탈락한다.
Q3. 자동차 때문에 내는 건 끝났나요?
A. 2024년 2월부터 자동차 부과는 폐지됐다.
Q4. 탈락하면 바로 많이 내나요?
A. 케이스별 편차가 크다. 다만 전환 초기에는 한시적 경감이 적용된 바 있다.
건강보험료는 공과금이 아니다. 은퇴자의 삶을 숫자로 환산한 결과표다.
월급이 끊기면 지출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퇴직과 동시에 신분이 바뀌고 집이 ‘가상의 월급’으로 계산되기 시작한다. 연금이 시작되면 소득으로 잡히고 금융소득이 몰리면 피부양자 자격이 흔들린다.
은퇴 설계는 연금액을 계산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건보료를 먼저 계산하지 않으면 고지서가 설계를 무너뜨린다.
월급이 0원이 되는 날, 가장 먼저 날아오는 것은 의료비가 아니라 보험료다. 은퇴의 첫 비용은 치료비가 아니라 건보료일지도 모른다.
은퇴 후 건보료는 아는 만큼 줄일 수 있다. 준비해야 할 항목들이다.
□ 나의 ‘재산세 과표’를 정확히 알고 있나
시세나 공시가격이 아닌, 건보료 산정의 기준인 '재산세 과세표준(공시가격의 약 60%)' 수치 확인 필요
□ 금융소득(이자·배당)의 ‘만기 분산’ 전략이 있나
특정 연도에 예적금 만기가 겹쳐 금융소득이 2000만원을 초과하지 않도록 계좌를 분산하거나 ISA 등을 활용
□ ‘임의계속가입’ 신청 기한을 달력에 표시했는가
퇴직 후 지역가입자 보험료가 더 비싸다면, 퇴직 후 2개월 이내에 신청해야만 직장 시절 보험료를 유지할 수 있다.
□건보공단 ‘모의계산기’로 예상 금액을 뽑아봤는가?
kkskim@fnnews.com 김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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