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인물열전] ⑻ 탄자니아 국부 니에레레…맨발로 농촌 시찰
![줄리어스 니에레레 탄자니아 초대 대통령 [주한 탄자니아 대사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21/yonhap/20260221080143342dnxv.jpg)
(서울=연합뉴스) 김성진 기자 = 탄자니아 국부로 일컬어지는 줄리어스 니에레레(1922∼1999)는 지도자로서 청렴하고 인품이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별명이 '도사'로 시골에 현장 시찰을 나가면 차는 아예 제쳐놓고 수십㎞를 맨발로 돌아다니고 농부들과 한 밥상에서 식사하며 밤에는 한 장의 소가죽을 바닥에 깔고 잠을 청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동아프리카 내륙 탕가니카(현 탄자니아 본토)와 맞은편 섬 잔지바르를 합쳐 탄자니아합중국으로 만들었다. '우자마'(스와힐리어로 우애·가족애)라고 불리는 아프리카 사회주의 정책을 의욕적으로 펼쳐 사회통합을 이뤄냈다.
니에레레는 1922년 4월 13일 영국령 탕가니카의 자나키 민족의 한 추장 아들로 태어났다.
12살 때 무소마의 교회학교에 입학해 세례를 받고 20세에 가톨릭에 귀의했다. 인접국 우간다의 마케레레 사범대에서 교육받고 귀국해 2년간 교사로 지냈다.
이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1949∼1952년 에든버러대에서 경제학과 역사학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은 뒤 귀국해 정치인의 꿈을 키웠다. 전국을 다니면서 민초들의 고충을 직접 들었다.
1953년 시민단체인 탕가니카아프리카인연합의 대표가 된 뒤 이듬해 이 단체를 탕가니카아프리카민족동맹(TANU)이라는 정당으로 발전시켰다.
![아프리카 탄자니아 지도 [제작 양진규]](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2/21/yonhap/20260221080143511rnpb.jpg)
가나의 콰메 은크루마, 케냐의 조모 케냐타 등 나중에 저마다 자국의 국부가 되는 다른 아프리카 지도자들과 교류하며 머리를 맞댔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식민제도 청산에 뜻을 모은 것이다.
영국 런던을 방문해 독립 협상을 벌이고, 탄자니아 북부 킬리만자로산 인근에서 유럽인의 커피농장 조성으로 토지에서 쫓겨난 메루 민족 등 차별받는 사람들을 대변했다.
그의 뛰어난 언변과 성실성은 영국 총독에게도 인정받았고, 1961년 전쟁이나 유혈 사태 없이 독립을 이끌어냈다. 1964년에는 아프리카의 '흑진주'라 불리는 잔지바르섬과 연합해 공화국을 건설했다.
초대 총리에 이어 첫 탄자니아 대통령이 된 니에레레는 20년 넘게 일당제로 집권하면서 우자마 공동체 정신에 기반한 민주적 사회주의를 국가이념으로 설정했다.
민족 집단·종교·계급을 넘어 통합과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며 사회주의 농업을 통해 경제발전을 도모했다.
그는 중국과 우호를 중시해 13번이나 방중하기도 했다. 우자마는 마오쩌둥주의 영향도 받았는데, 토지 공공성을 강화하고 자급자족을 목표로 했다.
1967년 2월 5일 이러한 내용을 집약한 이른바 '아루샤 선언'(Arusha Declaration)을 발표해 다른 미개발국들에 영향을 미쳤다.
아프리카 국가 중 최초로 스와힐리어를 공용어로 지정하고 학교 교육을 권장했다. 그의 집권 21년 동안 초등학교 취학률은 학령인구의 25%에서 95%로 급증했다.
국제무대에서도 독재와 인종차별에 반대해 1978년 자국국을 보내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을 축출하는 데 이바지했다.
모잠비크, 짐바브웨, 앙골라 등 다른 아프리카 국가의 독립투쟁도 도왔다.
우자마로 대표되는 사회주의 정책은 이상에 치우쳐 현실에선 긴 그림자도 드리웠다.
국가 경제 자립 차원에서 은행, 무역회사, 보험사 등을 국유화했으나, 본인의 의도와 달리 국제 원조에 대한 의존은 더 심화된 채 사실상 실패했다.
주민들의 전통적 삶의 터전을 강제로 옮겨 집단마을을 조성했다. 1977년 농촌인구의 80% 이상을 우자마 마을에 정착시켜 아프리카 역사상 최대규모 강제이주라는 지적도 받았다.
집단농업체제는 개인의 동기부여가 제대로 안 돼 농업 생산량이 급감했다. 주된 외화 수입원인 커피 수확량도 크게 떨어졌다.
1985년 그도 너무 이르고 과도한 측면이 있었다면서 일부 정책 실패를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이어 알리 하산 므위니에게 대통령직을 자발적으로 물려줬다.
퇴임 이후 1990년까지 집권 탄자니아혁명당(CCM) 의장직을 수행하면서 르완다 집단학살·부룬디 내전 해결 중재 역할을 했다.
1999년 10월 14일 향년 77세를 일기로 별세해 고향 부티아마 마을에 안장됐다.
한국과 탄자니아는 탈냉전 시기인 1992년에야 수교했다. 현재는 토골라니 마부라 주한대사가 다른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일본이나 중국에 거주하며 대사 겸직을 하지 않고 한국만을 전담해 맡고 있다.
마부라 대사는 지난달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탄자니아 토지는 국가 소유이고 국민이 토지 사용권을 갖고 있어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일정한 구매력이 있다"면서 "때문에 삼성 핸드폰도 우리는 할부도 안 하고 바로 현금으로 주고 산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이어 니에레레의 우자마 운동이 크게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새마을운동과 같은 인센티브 제도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sungjin@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신격호 장녀' 신영자 롯데재단 의장 별세…향년 85세(종합2보) | 연합뉴스
- 브라질 영부인 "피아노 치시나" 金여사 "남편 정치 여정에 기회 없어" | 연합뉴스
- 산불조심 기간에 '음주운전' 청장 공석사태…산림청 내부 '당혹' | 연합뉴스
- 고객 금 3천돈 챙겨 달아난 금은방 주인, 경찰에 자진출석 | 연합뉴스
- 美1심법원, 테슬라 '자율주행' 사망사고 배상액 3천500억원 확정 | 연합뉴스
- 엡스타인 의혹에 왕자칭호 뺏긴 앤드루, 왕위계승권도 박탈위기 | 연합뉴스
- [샷!] "우리가 손흥민 팬이었지 토트넘 팬이었냐" | 연합뉴스
- 똑같은 사기인데…경찰 7년 전엔 유죄, 지금은 무혐의? | 연합뉴스
- "접근금지 처분도 무시"…흉기 들고 스토킹한 20대 체포 | 연합뉴스
- 개 훈련시켜 쓰레기 투기…이탈리아서 '기발한 범행' 덜미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