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판단 거스른 '지귀연 판결' 논란…"계엄은 고도통치" 尹 주장 수용?
탄핵소추 대리인단 이끈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 "헌재가 잘못이라 말하는 듯"
재판부 '계엄은 사법심사 대상 될 수 없다'… "경고성 계엄도 가능"
계엄 이틀 전 결심? "최소 국방장관 교체 때" 봐야…사실관계 지적도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법원은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인정해 유죄 선고하면서도 “계엄 선포는 사법 심사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을 불과 이틀 전 결심했고 물리력 행사를 자제했다고 판단했으며, 장기독재를 기도했다는 점도 인정하지 않았다. 상당수는 헌법재판소의 앞선 판단을 거스른 내용으로 윤 전 대통령 측 주장을 상당 부분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항소심에서 다툼 여지가 큰 만큼 내란에 대한 사법 판단이 일단락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25부(재판장 지귀연)는 지난 19일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자체는 내란죄에 해당할 수 없다.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계엄 선포가) 실체적 요건을 갖췄는지 여부에 대한 대통령 판단은 존중돼야 하고 이를 섣불리 사법심사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것은 자칫 필요한 경우 판단을 주저하게 만드는 저해 요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계엄 선포가 실체적·절차적 요건을 갖췄는지 여부를 사법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견해다. 같은 날 재판부 설명자료에도 동일한 표현이 나왔다.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 “헌재가 잘못이라 말하는 듯”
이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내용과 정면으로 위배된다. 헌재는 지난 4월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문에서 “이 사건 계엄 선포행위가 통치행위이므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피청구인 윤석열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명시했다. 윤 전 대통령이 △전시, 사변이나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가 아닌데도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지 아니하고 계엄을 선포하고 △국회 통고 없이 △계엄사령관을 임명했다며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점을 명확히 했다.
윤석열 탄핵심판 사건 국회 대리인단을 이끈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은 20일 통화에서 “의문이 든 대목은 (재판부가) 계엄선포 행위에 대해 사법 심사를 아예 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라며 “만약 형법상 내란죄 성립 여부를 절차와 실체적 요건만 가지고 심사할 수 없다고 했다면 이해할 수 있으나, 낭독한 내용은 사법 심사를 하는 것이 맞지 않다는 뜻으로, 헌재가 (계엄 선포에 대해 사법 심사한 것이)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판결문이 나오면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관련 기사 : “경고·호소용 계엄은 없다”…尹 궤변, 헌재에서 모두 기각 '완패' ]

지귀연 재판부 말대로면 “경고성 계엄”도 가능
김 전 재판관은 이를 두고 “1997년 전두환 (반란수괴 등 혐의) 대법원 판결문을 보면 비상계엄에 대해 사법 심사할 수 있는 경우를 써 놓았다. 그러나 이후 헌재 결정과 대법 판결 등 판례들은 이를 훨씬 앞서갔는데, 이번 재판부는 1997년도 판례만을 충실하게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헌법연구관 출신인 노희범 변호사도 같은 날 통화에서 “현대 입헌민주주의 국가에선 사법심사 대상에서 배제되는 대통령 행위는 없다는 것이 현재의 이론”이라며 “만약 절차적이고 실체적인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데도 대통령 권한이란 이름과 통치행위란 명분으로 상시적으로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경고성 계엄'도 할 수 있는 심각한 결과를 낳는다”고 말했다. 이어 “재판부는 윤 대통령 변호인이 주장하는 '비상계엄 선포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므로 형법 87조 내란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사실상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尹계엄 이틀전 결심? “적어도 신원식 국방장관 교체시기 봐야” 반박
윤 전 대통령이 쿠데타를 결심한 시점을 계엄선포 이틀 전인 12월1일로 보고, 장기집권을 획책한 점을 부인한 점도 실제 드러난 정황을 축소 해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판부는 “(야당의 탄핵, 예산 삭감이 이어지자) 2024년 12월1일 무렵에는 '더는 참을 수 없다.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국회를 제압해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이 사건의 실체에 부합한다”고 했다. 증거로 제출된 '수거 대상'과 3선 개헌 장기집권 구상 등이 담긴 노상원 수첩에 대해서는 작성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고 일부 내용이 불일치하며 중요 내용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일축했다.
김 전 재판관은 “탄핵 소추인단 입장에서는 적어도 신원식 국방장관을 경질하고 김용현으로 교체한 시점에는 (계엄선포 계획이) 분명히 드러났다고 봐야 한다고 본다”고 견해를 밝혔다.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은 국회 등에 출석해 국방장관일 당시였던 지난해 3월 삼청동 안전 가옥(안가) 회동과 7월 하와이 순방 등 두 차례에 걸쳐 윤 전 대통령이 '군의 정치참여'와 '비상조치' 등 계엄을 암시했다며 “저는 분명히 반대한다는 뜻을 전했다”고 말한 바 있다.
윤 전 대통령은 20일 밝힌 선고에 대해 입장을 밝히며 자신의 주장이 일부 받아들여졌다는 반응을 보였다. “제가 장기집권을 위해 여건을 조성하려다 의도대로 되지 않아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특검의 소설과 망상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면서 “그러나 제 진정성을 인정하면서도, 단순히 군이 국회에 갔기 때문에 내란이라는 논리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지귀연 '물리력 자제' 주장, 사실관계 문제”…2심서 다퉈질 듯

지귀연 재판부가 “대부분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다”며 “(윤 전 대통령이) 물리력의 행사를 자제시키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양형 감경 사유로 밝힌 부분도 앞선 헌재 결정과 법원 판단과 정반대다.
헌재는 지난해 4월 윤 전 대통령 파면을 결정하면서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수행 덕분”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21일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23년형을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재판장 이진관)은 내란사태에서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은 이유를 두고 “무장한 계엄군에 맨몸으로 맞서 국회를 지킨 국민의 용기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내란 가담자에 대한 형을 정함에 있어 피해 발생이 경미하였다거나 짧은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는 사정을 깊이 고려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노 변호사는 “윤석열이 물리력 행사를 자제한 것이 아니라 현장의 군인들이 실제 행사를 자제했기에 이 부분은 사실관계 문제가 있다. 항소심 재판을 통해 충분히 다퉈질 가능성이 있다. 2차 종합특검을 통해서도 사전 모의와 계획을 해 이뤄졌고 단순히 즉흥적인 내란범죄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해 이 점이 항소심에서 다퉈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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