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남의 집 얹혀 살던 '동물농장 업둥이'의 듬직한 오늘
편집자주
시민들이 안타까워하며 무사 구조를 기원하던 TV 속 사연 깊은 멍냥이들.
구조 과정이 공개되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지금은 잘 지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가족을 만났다면 어떤 반려생활을 하고 있는지,
보호자와 어떤 만남을 갖게 됐는지, 혹시 아픈 곳은 없는지..
입양을 가지 못하고 아직 보호소에만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새 가족을 만날 기회를 마련해 줄 수는 없을지..
동물을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이라면 당연히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며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궁금한 마음을 품었지만 직접 알아볼 수는 없었던 그 궁금증, 동그람이가 직접 찾아가 물어봤습니다.

"오늘도 병원으로 가네요."
언제부턴가 '멍냥 뒷조사 전담팀'이 동물자유연대 '온센터'를 취재할 때면 꼭 들르는 곳이 생겼습니다. 바로 온센터 건물 한 켠에 자리잡은 동물병원입니다. 보호하는 동물들의 건강을 살피거나, 수술 이후 회복이 필요한 동물들이 머무르는 동물병원. 이곳을 찾는다는 건 대부분 만나기로 예정된 주인공의 건강에 무언가 이상이 있다는 걸 의미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날의 주인공 '별이'(15)는 예외였습니다. 적잖은 나이였지만, 별이의 몸 상태는 건강한 편이었습니다. 얼굴이 다소 떨리고, 뒷다리가 약한 듯 다소 위태롭게 서 있었지만 그건 평생을 안고 살아왔던 만큼 일상 속에서 관리되는 증상입니다. 그럼에도 별이가 동물병원에 머무르는 이유는 단 하나. 최근 수술을 받은 룸메이트 ‘봉선이’를 간호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사실 별이가 원해서라기보다는 봉선이가 별이 없으면 불안해하는 이유가 더 강해요. 그래서 별이가 옆자리를 지켜주는 거죠.
이민주, 동물자유연대 온센터 홍보캠페인팀장
그 말을 듣고 돌아보니, 약해 보이던 별이가 달리 보였습니다. 어쩌면 그 '약해 보인다'는 생각은 15년 동안 별이를 처음 본 사람들이 한 번씩은 품었던 동정 어린 선입견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새끼 좀 부탁하오" 어미마저 힘겨워한 강아지

지난 2011년, 인천 중구 영종도에 위치한 단독주택. 두 마리 진돗개를 키우던 이 집에 어느 날 갑자기 식구가 한 마리 늘었습니다. 집주인이 개집 밖에서 잠자고 있는 반려견을 이상하게 여겨서 주변을 살펴보다 태어난 지 몇 개월 안 돼 보이는 강아지를 발견한 겁니다.
두 마리 모두 수컷이라 둘 사이에서 나온 새끼일 리는 만무했습니다.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은 까닭에 반려견이 떠돌이 암컷 개와 교배했을 가능성도 떠올려봤지만, 검사해보니 그 또한 아니었습니다. 생판 남의 강아지를 자신의 반려견이 '업둥이'로 떠안은 이 상황이 집주인은 무척이나 당황스러웠습니다.
주변을 수색해 파악한 현실은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어디선가 새끼를 낳은 어미 들개가 새끼 중 한 마리를 이 집에 맡긴 겁니다. 강아지는 뒷다리가 불편한 듯 발을 잘 딛지 못했는데 이것이 다른 강아지들처럼 어미의 돌봄을 받지 못한 이유로 추정됐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강아지의 어미도 야생에서 뒷다리를 다친 듯 걸음이 성치 않았다고 해요.

구조팀은 수색 과정에서 찾은 새끼 강아지들까지 모두 구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무엇보다 어미의 건강도 걱정되는 점이 가장 큰 구조 이유였습니다. 또한 선천적으로 뒷다리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강아지를 구조한다면, 다른 강아지들도 함께 구조하는 게 서로의 사회화에도 좋겠다고 여겼습니다.
그렇게 남의 집 업둥이로 천덕꾸러기가 될 뻔했던 강아지는 '별이'라는 이름을 받고 형제들과 함께 구조돼 제대로 된 보호를 받게 됐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수리', '보리', '아리'는 이름을 받아 온센터로 향하게 됐습니다.

모두에게 '괜찮다' 말하듯 살아온 별이의 15년
구조 당시의 몸 상태가 좋지 못한 걸 다들 알고 있었기에 별이는 보호소에서 관심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구조 뒤에 실시한 검사 결과 머리에 혹이 있고, 안구에 미세한 떨림까지 발견됐습니다. 별이를 살펴본 수의사는 선천적인 신경 문제 같다고 진단했습니다.

몸 상태는 두고두고 별이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해외로 입양 갈 절호의 기회도 놓친 겁니다. 비행기에 탑승했을 때 별이의 신경 문제가 재발한다면 생사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내려지면서 결국 별이는 해외입양을 포기하고 온센터에 남아야 했습니다.
수리를 제외한 다른 형제들은 모두 새 가족을 찾았기에, 더욱 안타까워 보이지만, 별이는 그런 사람의 시선 같은 건 아랑곳하지 않는 듯합니다. 오히려 사람의 관심을 더 구하고, 사람을 보면 환하게 미소짓기도 하죠.

별이가 약간 ‘댕청미’가 있어요. 간식에만 집중할 때가 그렇죠. 간식을 한번 던져주고 나면 또 던져줄까봐 바닥 한번 보고 사람 보며 헤헤 웃는 게 좀 귀엽고 바보 같아 보일 때가 있어요. 사랑스럽기도 하고요.
이민주, 동물자유연대 온센터 홍보캠페인팀장
물론, 다른 개들이 친해지자며 달려들 때는 다소 귀찮아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래도 건강한 개들 사이에서 뚜렷하게 자기 의사를 보이며 보호소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활동가들은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답니다.
어쩌면 별이는 보호소에서 남은 생을 보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최근 별이는 췌장에 종양이 발견됐지만, 나이가 있어 마취 후 CT 촬영은 무리라는 판단에 약을 먹으며 관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식사 또한 조금씩 자주 먹는 방식으로 전환했습니다. 하지만, 안쓰러움보다는 별이가 편안하게 즐기며 지낼 수 있도록 돕겠다고 활동가들은 다짐합니다.

15년을 지냈고, 여기는 이제 별이의 집이잖아요. 집보다 더 편한 곳은 없을 거예요. 그렇게 느낄 수 있도록 다른 노견 친구들처럼 세심하게 돌봐줄 거예요. 별이도 그런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리라고 믿어요. 사람을 워낙 좋아하는 아이니까요.
이민주, 동물자유연대 온센터 홍보캠페인팀장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leonard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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