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하루만 늦어도 전액배상… 신탁업계 ‘책임준공’ 리스크 확산
책임준공 도미노 패소에 ‘사면초가’
부동산 침체기에 채무이행 폭탄으로
지방 시행사·시공사 연쇄 부도 초읽기

시공사의 부실을 떠안는 조건으로 수수료를 챙겼던 신탁 업계가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시장 침체로 책임준공 리스크가 터지면서 사면초가에 빠졌다. 특히 법원이 준공 지연 사유를 불문하고 대출 원리금 전액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잇달아 내놓으며 신탁 업계 전반에 재무건전성 악화 우려가 번지고 있다.
21일 건설 업계와 신탁 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중앙지법 등에서 시공사의 책임준공 미이행 시 신탁사의 배상 책임을 폭넓게 인정하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대주단은 대출 원리금 전액 배상을 요구하는 반면, 신탁사는 지연 이자 정도의 배상을 주장하며 법적 분쟁이 이어지고 있었다.
대주단은 책임준공을 약속한 만큼 준공 기한을 어겼으니 신탁사가 시공사를 대신해 대출 원리금 전액을 상환하는 채무인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신탁사는 준공이 늦어져 발생한 추가 지연 이자 등 직접적인 손해액만 물어내겠다며 맞섰다.
하지만 최근 대주단과 신탁사 간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의 판단은 단호하다. 법원은 대출 원리금 전액과 지연이자를 신탁사가 모두 갚으라며 대주단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지난 1월 KB부동산신탁(KB신탁)은 인천 논현동 주상복합 개발사업장에서 발생한 책임준공 미이행 소송에서 패소했다. KB신탁은 PF 대출을 순차적으로 상환하고 있었다는 점을 들어 원리금 전액 배상은 과도하다며 즉각 항소를 제기했다.
신영부동산신탁도 인천 간석동 오피스텔 사업장에서 책임준공 의무 미이행에 대한 책임이 있다며 70억원과 지연이자를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을 받았다. 신영부동산신탁도 항소로 대응한 상태다.
신탁 업계가 주장한 준공 지연의 사유도 참작되지 않았다. 신탁사들은 원자재 수급난, 파업, 악천후 등 다양한 외부 요인이 ‘불가항력적 사유’이므로 배상 책임이 면제되거나 경감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신영부동산신탁의 경우 대주단의 자금 집행 지연이라는 변수가 있었고 준공 기일을 단 하루 넘겼음에도 전액 배상 판결을 피하지 못했다.
앞서 신한자산신탁 역시 지난해 5월 경기도 평택 물류센터 건설사업 준공 지연에 대한 대출 원금 256억원과 지연 이자를 지급하라는 법원 판결을 받았다. 이는 부동산 신탁사가 책임준공 의무를 진 사업장에서 대출 원리금 전액에 대한 배상 책임이 있다고 법원이 인정한 국내 첫 사례였다.
이후 신한자산신탁은 경기 안성 물류센터(60억원), 인천 원창동 물류센터(575억원) 사업장 등에서도 연달아 패소했다. 결국 유사한 소송 약 10건을 약 3000억원 규모로 합의 후 종결하는 고육지책을 택했다. 소송 장기화에 따른 지연 이자와 불확실성을 감당하느니 매몰 비용을 지불하고 리스크를 빨리 해소하겠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신탁사들이 시공사를 대신해 직접 공사비를 투입하는 비용은 크게 증가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주요 14개 신탁사의 대손충당금은 지난해 3분기 기준 2조4500억원을 돌파했다. 이는 지난해 1분기(1조9800억원)와 비교해 24% 급증한 것이다. 중소 신탁사인 무궁화신탁은 영업용순자본비율(NCR)이 69%까지 추락하며 규제 기준인 100% 미만으로 떨어지면서 2024년 금융 당국의 경영개선명령을 받기도 했다.
신탁사들이 리스크 관리를 위해 책임준공 확약 수주를 사실상 중단하면서 중소 시행사들의 자금 조달 통로도 막힌 상태다. 신탁사의 신용 보강 없이는 본 PF 전환이 불가능한 중소 시행사들은 고금리 후순위 대출을 찾아 사채 시장을 전전하는 실정이다.
국내 시행사 임원 A씨는 “신탁사들은 직접 돈을 투입하는 차입형 신탁 상품보다 신탁사 신용도 보증으로 시행사·시공사가 금융기관에서 빌려오는 책임준공 신탁 상품이 리스크는 낮고 수익성이 크다고 봤다”며 “부동산 호황기였던 2020년부터 2022년 상반기까지 시공사가 부도날 확률이 낮다고 판단해 책임준공 상품 수주에 열을 올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사비가 단기간 급등하고 금리 인상이 이어지면서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침체되자 특히 지방에 사업장을 둔 시행사·시공사들이 자금난으로 줄줄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신탁사에 부실이 전이되고 있는 것”이라며 “신탁사가 책임준공 상품 영업을 중단했기 때문에 지방 중소 시행사·시공사들의 연쇄 부도는 시간문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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