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미일 연합 훈련 거절한 軍, 미중 전투기 대치하자 美에 항의

미국이 제안한 한·미·일 연합 공중 훈련을 우리 정부가 거절해, 미·일 양국만 지난 16일과 18일 동해와 동중국해에서 연합 훈련을 실시한 것으로 20일 알려졌다. 미국의 대표적 전략자산 B-52 전략폭격기 4대가 여기에 참여했으며, 미국령 괌에서 출격한 B-52는 18일 제주도 남방에서 대만으로 이어지는 동중국해에서 훈련을 하다가 북상해서 한때 서해에도 진입했다고 한다.
주한미군도 18~19일 서해상에서 별도의 훈련을 진행했다. 주한미군의 F-16 전투기 수십 대가 이틀간 100여 차례 이상 출격해서, 전례 없는 대규모 훈련이란 평가가 나온다. 일본 열도에서 대만과 필리핀을 연결하는 방어선인 ‘제1도련선(島鏈線)’ 안에서 미국의 전략 자산과 일본 자위대, 주한미군 전투기가 사실상 동시에 전개된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트럼프 미 행정부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SS)’에서 제1도련선에서의 중국 견제를 강조했다.
주한미군의 독자 훈련 형식을 취했지만, 미·일 연합 훈련에 참여한 B-52가 서해에 진입한 당일에 시작된 데는 B-52를 호위하려는 성격도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군이 미군의 훈련에 대응해 자국 전투기를 출격시키면서, 18일 서해에서는 미·중 전투기가 대치하는 일도 있었다.
미국의 한·미·일 연합 훈련 제안을 거절했던 우리 군은 미·중 대치 상황이 발생하자, 미국에 항의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과 진영승 합참의장이 각각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에게 전화해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의 역할을 ‘대북 억지’에서 ‘대중 견제’로 변경하려는 미국의 구상과 미·중 갈등에 연루될 것을 우려하는 우리 정부 간의 이견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말이 나온다.
◇주한미군 단독훈련에 中도 전투기 띄우며 대치… 안규백, 美에 항의
우리 합동참모본부에 해당하는 일본의 통합막료감부는 19일 “안보 환경이 한층 더 엄중해지고 있는 가운데, 자위대와 미군이 공동 훈련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대표적 전략자산인 B-52 전략폭격기 4대와 일본 항공자위대의 F-2 전투기 6대, F-15 전투기 5대가 지난 16일과 18일 동해와 동중국해의 공역(空域)에서 각종 전술 훈련을 함께했다는 것이다.
제주도 남방에서 대만 북단으로 이어진 동중국해가 훈련 지역에 포함된 점 등을 보면 중국 견제를 위한 훈련으로 볼 수 있다. 일본 측은 “이 훈련을 통해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는 양국의 강력한 의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은 미일이 중국의 남중국해, 동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비판하거나 대만 침공 가능성을 우려할 때 통상 사용하는 표현이다.
20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우리 군 당국도 미국으로부터 이 연습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 군은 이를 거절했고, 연습 성격은 한·미·일 3국 연합 훈련에서 미·일 연합 훈련으로 변경됐다.

18일, 동중국해에서 훈련 중이던 B-52는 서해로 북상했다가 다시 남하해 제주 남방으로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서해상으로 출격한 주한미군 F-16 전투기들이 중국 측 방공식별구역(CADIZ) 인근까지 비행하자, 중국군도 이에 대응해 자국 전투기를 긴급 발진시키면서 공해상 공역에서 미·중 전투기가 대치했다. 이에 대해 중국 환구시보는 20일 “최근 미군 군용기가 서해의 중국 인근 공역에 전개했다”며 “중국인민해방군은 법과 규정에 따라 해·공군 병력을 조직해 전 과정에 걸쳐 추적 감시 및 경계 활동을 실시하고, 효과적으로 대응 조치를 했다”고 밝혔다.
미·중 전투기의 대치 상황이 발생하자, 우리 측은 미국에 항의의 뜻을 표시했다. 주한미군은 지난해 군산기지에 배치된 F-16을 오산기지로 이전해 F-16 60여 대로 구성된 슈퍼비행대대를 2개 편성했다. 당시부터 ‘중국 견제용’이란 관측이 있었는데, 이런 훈련으로 그런 성격이 분명해지면서 우리 정부가 부담을 느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달 방한한 엘브리지 콜비 미 전쟁부(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국방 전략은 제1도련선에서 ‘거부에 의한 억지(deterrence by denial)’를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며 주한미군도 역할을 하게 될 것을 예고했다. 반면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신년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관세 위협과 관련해서는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하며 “(동맹에) ‘연루’도 ‘방기’도 되면 안 된다”고 했다.
우리 정부가 대북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한미 연합 훈련 축소를 원하고 있는 것도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 지난 13일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안보 관계 장관 회의에서 남북 긴장 완화 방안의 하나로 9·19 남북 군사 합의 복원과 훈련 조정이 거론된 뒤, 군 당국은 미국 측과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우리 정부 구상대로 조정이 이뤄질 경우, 3월 중순 예정이었던 한미 연합 ‘자유의 방패’ 훈련과 연계된 야외 기동 훈련과 실사격 훈련이 대폭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군사분계선(MDL) 인근 비행 금지 구역 설정과 실사격 훈련 중지 등의 내용을 담은 9·19 군사 합의도 우리 측만 선제적으로 복원하면, 대북 감시·정찰과 대응 능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미국은 이런 한국의 움직임을 ‘미국 측 파트너로 역할하기 싫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일 것”이라며 “한국이 미군과 훈련은 안 하고, 미군 단독 훈련에는 항의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미군 입장에서는 한반도에 주둔할 이유가 점점 더 줄어드는 것”이라고 했다.
국방부는 21일 본지 보도 이후 “‘정부가 거절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미국이 한미일 훈련을 제의했고, 우리 측에서 일정 조정을 요청했는데 미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한미 동맹 및 한·미·일 안보협력은 공고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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