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서 숨어 지낸 게 스펙이라고?" '안무서운회사' 들어갔더니 생긴 일
대표 역시 20대에 5년 은둔 경험했던 당사자
셰어하우스에선 은둔청년 7~10명 모여 살며
생활습관부터 관계 맺기까지 차근차근 배워
"고립은 살면서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

이명선(33)씨가 처음 방으로 숨어들었던 건 스물일곱 살 때였다.
"방 안에서 아르바이트 구인 앱만 들여다봤어요. 편의점, 카페, 피시방, 식당… 선뜻 어디 지원해볼 생각은 못 했어요. 무서웠거든요. '남들 취업할 나이에 알바라니 다들 얼마나 한심하게 볼까' 하는 걱정이 들었죠."
사실 명선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은둔'과 거리가 먼 청년이었다. 서울에서 매출이 높기로 열 손가락 안에 들던 호텔 뷔페가 첫 직장이었다. 새벽 네 시 반부터 하루 13시간씩 주 6일간 80시간 넘게 일했다. 하지만 요리에 소질이 없던 탓인지, 실력이 빨리 늘진 않았다. 그래도 버티다 보면 나아질 거라 믿고 악으로 견뎠다.
그러다 결국 탈이 났다. 늘 말썽이던 오른쪽 손목의 인대가 완전히 끊어졌다. 그것도 요리를 제대로 배워보겠다고 떠났던 호주 땅에서. 수술 후 손목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목표가 꺾이자 재활 의지조차 사라졌다. 3년간의 은둔은 그렇게 시작됐다.
억지로 방을 나선 적도 있었지만 오래 견디진 못했다.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했던 피시방에서도, 중개보조원으로 취직했던 부동산에서도 몇 달 못 버텼다. 실패가 쌓일수록 몸이 더 무거워졌다. '정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취업했던 베트남 식품회사에서 한 달 만에 사표를 냈을 땐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극단적 생각도 했다.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 모른다는 피해망상과 불안이 극에 달해있을 때였다.
그렇게 또다시 방으로 숨었던 명선씨를 세상 밖으로 꺼내준 건 이상한 이름을 가진 회사였다. '안무서운회사'. 명선씨와 비슷한 처지의 친구가 넌지시 '같이 가보자' 소개한 곳이었다. 세상 모든 게 무서웠던 명선씨의 마음을 흔들었다. 안무서운회사는 오랜 시간 방에 갇혀있던 명선씨 같은 이들을 '은둔고수'라 부르며 '은둔이 스펙이 되게 하겠다'고 했다.

방 안에 숨은 은둔청년 '53만 명' 시대
'은둔 청년'은 과거 명선씨처럼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방이나 집 안에서만 머무는 '은둔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된 청년(19~34세)을 뜻한다. 2024년 기준, 전국적으로 53만7,000여 명에 달한다. 전체 청년층의 5.2%쯤 된다. 현장 전문가들은 실제 규모가 더 클 것으로 본다.
지난 3일 서울 강북구 삼양동 '안무서운회사'에서 만난 유승규(33) 대표 역시 명선씨처럼 이십대의 절반을 '쓰레기방' 안에서 보낸 은둔 청년이었다. "스무 살 때부터 3년, 군 제대하고 나서 2년을 방에만 있었어요. 집 안에서도 방 밖으로 나가는 게 싫어서 화장실도 못 가고 소변을 방 안에서 봤을 정도였죠."

유 대표는 은둔 청년을 지원하는 일본의 비영리단체 'K2'가 경영난을 이유로 한국에서 철수하자 회사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이듬해 '안무서운회사'를 차렸다. 은둔 경험을 가진 당사자가 주축이 돼 다른 은둔 청년과 가족을 돕는 비영리 사회적 기업이다. 공공·민간 지원사업과 카카오의 사회혁신재단인 브라이언임팩트 펠로우십을 통해 운영비를 충당하고 있다.
명칭은 회사지만 잘 뜯어보면 '생활 공동체'에 가깝다. 오래된 주택 두 채를 개조해 만든 셰어하우스인 '안무서운하우스'에선 7~10명의 은둔청년들이 함께 모여 살며 무너진 삶을 천천히 재건한다. 망가졌던 생활 습관부터 바로 세운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씻고, 옷을 챙겨 입고, 아침 모임에 참석해 그날의 컨디션과 기분을 말한다. 점심 식사는 모두가 함께 만들어 먹고 청소와 빨래, 장보기 등 가사 노동은 나눠 맡는다. 사회생활 감각을 되살리기 위한 훈련이다.
자신의 은둔 경험과 과거의 트라우마를 타인에게 털어놓는 워크숍도 주기적으로 한다.

"취업만 하면 끝날 줄 알았다" 퇴사 후 더 깊어진 재은둔의 늪
유 대표는 이런 과정이 "사람 한 명을 완전히 새롭게 키우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일자리를 연결해주는 건 입소자의 일상이 충분히 회복됐다는 판단이 내려진 이후다.
"은둔 청년들에게 물어봤어요. 방 밖으로 나가기 위해 어떤 시도를 해봤냐고. 대부분 '취업을 하기 위해 스펙을 쌓았다'고 대답하더라고요. 남들처럼 직장을 다니게 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여기죠. 현실은 정반대예요. 우여곡절 끝에 취업을 했더라도 금방 그만두는 경우가 많죠. 그렇게 실패 경험이 쌓이다 보면 전보다 더 긴 재은둔이 시작돼요. 당연한 결과예요. 5년, 10년씩 방에서 못 나왔던 사람을 가혹한 경쟁 사회에 내던지는 건 사지로 내모는 것과 다름없거든요."
"절반은 다시 방으로 돌아간다" 고립의 악순환 끊으려면
한 번 고립과 은둔을 경험했던 청년들은 명선씨처럼 여러 차례에 걸쳐 재고립을 겪을 위험이 높다. 고립은둔 청년의 평균적인 재고립률은 45.6%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와 서울시 등이 제공하는 고립은둔청년의 상담과 회복, 재교육 프로그램은 1~2개월 수준의 단기 과정이다. 유 대표는 "프로그램이 최소 6개월 이상 되고 꾸준한 사후 관리가 뒷받침돼야 회복의 효과를 지속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무서운회사가 매년 재정난 속에서도 4년째 꾸준히 셰어하우스를 운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소 1년 이상은 가족과 주거를 분리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생활해야 '자존 능력'이 자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래서 안무서운하우스는 입주 조건으로 '최소 1년 이상 거주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걸고 있다. 회복 과정을 마친 청년들은 퇴소 후 마음 맞는 이들끼리 2, 3명씩 함께 살아본 뒤, 독립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안무서운회사를 거친 청년들의 재고립률은 10% 미만이다.

신현재(30)씨는 약 1년간의 회복과정을 마치고 셰어하우스를 퇴소했다. 지금은 생애 첫 독립을 준비 중이다.
"하우스 생활을 하다 보면, 나를 숨기거나 꾸며낼 수가 없어요. 내 가장 부끄러운 모습까지 들킬 수밖에 없거든요. 그걸 한 번 보여주고 나면 방어막이 한 꺼풀 벗겨지거든요. '못난 모습 보여준다고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싫어하지 않는구나'를 느끼죠. 저에게도 누군가의 아픔과 그늘을 이해해줄 수 있는 너그러움이 생겼고요."
얼굴 숨기고 서빙하는 '곰손카페'의 기적... "은둔이 결핍 아닌 스펙 되는 세상을"
청년들의 재고립을 막기 위해 보다 더 중요한 건 '노동의 형태'다. 오랜 시간 고립 생활을 한 청년들은 체력과 지구력 등 신체적 능력이 크게 떨어져 있다. 단번에 주 5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어지는 근무 패턴이 버거울 수밖에 없다.
유 대표는 '모두가 똑같은 경기장에서, 동일한 룰에 따라 뛰는' 게임의 법칙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의 소수자성을 약점이 아닌 경쟁력으로 삼을 수 있는 다양한 일자리가 많아져야 한다는 뜻이다.
해외에서는 의미있는 실험들이 이어지고 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을 주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중증 신체 장애를 가진 은둔청년들이 원격 제어 로봇에 접속해 카페 서빙을 한다. 독일에서 시작된 체험형 전시 '어둠 속의 대화'에선 시각장애인들이 암전된 공간 속에서 전문적인 안내자이자 큐레이터로 활동한다.
대인기피증을 앓는 청년들이 얼굴을 숨긴 채 곰 발바닥 장갑을 낀 손만 내밀어 음료를 건네는 일본의 '구마노테(곰발바닥)카페' 역시 좋은 예다. 2022년 안무서운회사가 이를 벤치마킹해 성수동에 '곰손카페' 팝업 매장을 열었을 때 구직 경쟁률이 무려 175대 1이었다.
이날 현장에 동행한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은 "고립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임을 느낀다"며 "은둔과 재고립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주거·관계·일자리를 통합한 회복 지원체계를 국가가 책임 있게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은둔, 살면서 누구나 한 번은 겪을 수 있다… 당신 역시도"

유 대표는 은둔과 고립이 '대단한 실패'가 아닌 '살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태'라고 강조했다.
"상담을 하다 보면 SKY대학(서울대·고려대·연세대) 졸업생부터 갑자기 직장을 잃은 중년 실직자, 출산과 육아에 지친 경력단절 여성까지 정말 다양한 분들이 있어요. 외국에서 적응에 실패해 방 안에만 머무는 이민자들도 '제발 자신을 꺼내달라'며 연락을 해옵니다. 은둔은 더 이상 특별한 실패 서사가 아니에요. 숨 가쁜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언제든 맞닥뜨릴 수 있는 흔한 국면이죠."
유 대표 말처럼 은둔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는 삶의 한 장면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그래서 우리에겐, 잠깐 주저앉은 이들이 마침내 홀로 설 수 있게 되기까지 '기다려줄 너그러움'이 필요해요."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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