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절망서 건지는 예술의 의미…K팝 원조의 ‘미스터리 인생’

유주현 2026. 2. 21.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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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사의 찬미’에서 윤심덕을 연기하는 서예지(왼쪽)와 김우진 역 곽시양. [사진 쇼앤텔플레이]
한국 대중가요의 효시 ‘사의 찬미’가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최근 개막한 연극 ‘사의 찬미’는 루마니아 왈츠곡 ‘다뉴브강의 잔물결’에 가사를 붙여 노래한 원곡자이자 국내 최초 소프라노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의 ‘동반자살’ 미스터리를 그렸다. ‘최초의 대중가요’를 어쩌다 성악가가 불렀고, 저들은 왜 ‘동반자살’을 했을까.
연극 '사의 찬미' [사진 쇼앤텔플레이]
일제강점기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윤심덕은 유학시절 극예술협회에서 만난 유부남 김우진과 사랑에 빠진다. 예술적으로 부자유했던 시대적 상황과 불륜에 대한 도덕적 비난까지, 둘은 영 ‘자기다운 삶’을 못 살다가 현해탄 한복판에서 사라진다. 정사(情死)로 추정됐지만 잊을만하면 목격담이 돌면서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았다.
이 이야기가 윤석화 주연의 연극(1990), 장미희 주연의 영화(91), 뮤지컬 버전 등으로 거듭 재탄생되는 건 실화 자체가 흥미진진한 ‘세기의 불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소프라노가 ‘서양노래를 부르는 기생’ 취급을 당하던 시대, “조선은 아직 예술적 토양이 약해서 그래. 후세가 평가해 줄 거야.” “정말 그럴까?” 같은 대사들이 오늘날 세계를 뒤흔드는 K팝이 있기까지 선배들의 험난한 역사를 환기시킨다.
연극 '사의 찬미' [사진 쇼앤텔플레이]

홍난파와 3각관계 설정인 윤대성 희곡을 바탕으로 또 다른 신여성 화가 나혜석의 자화상까지 모티브로 엮은 입체적 무대다. 나혜석이 파리에서 만난 윤심덕에게 듣는 이야기와 홍난파가 형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교차되며 미스터리를 파헤친 끝에, 자유를 꿈꾸던 윤심덕이 ‘참으로 살기 위해’ 먼곳으로 떠났을 것이라는 여운을 남긴다.

관전포인트는 배우 서예지의 연극 데뷔다. 빼어난 미모와 당찬 연기력으로 김수현과 주연한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등으로 잘나가던 2021년, 연인과의 문자메시지가 공개되며 ‘가스라이팅 논란’에 휘말렸다. 사생활의 영역이지만 실추된 이미지는 잘 회복되지 않았고, 연극무대서 변신을 시도중이다.

실제 윤심덕도 설자리를 찾아 대중가요도 부르고 연극배우로도 나섰다는데, 연기력 혹평으로 더 큰 타격을 입었다고 한다. 서예지는 어떨까. 무대는 좀 싱겁다. 가벼운 코믹터치 대본부터 ‘사의 찬미’의 탐미적이며 멜랑콜리한 정서와는 이질적이고, 서예지가 윤심덕에 ‘빙의’할 만한 연출적 모멘트도 없다. 하지만 서예지의 또렷한 발성과 매력적인 저음의 가창에 무대 배우로서 잠재된 카리스마가 엿보인다.
연극 '사의 찬미' [사진 쇼앤텔플레이]

극중 윤심덕과 나혜석은 서로를 응원하며 헤어진다. 누가 뭐래도 자기답게 산 ‘신여성’들이다. 그로부터 100년을 뛰어넘어 윤심덕을 만난 서예지. 그도 나혜석의 자화상 같은 명작을 남길 수 있기를 아마 윤심덕이 응원하고 있지 않을까. ‘자기답게 사는 게 참으로 사는 것’이라며.

유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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