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의 새벽은 대낮처럼 환하다… 반도체 공장 앞 500m 출근 행렬

구아모 기자 2026. 2. 21.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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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평택캠퍼스 건설 현장
전국서 노동자 2만명 몰려
지난 19일 오전 6시 30분쯤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4공장 건설 현장. 현장 출입구가 출근하는 건설 근로자들로 북적였다. 큰 공사장이 서면서 전국에서 몰려온 근로자들이다. 매일 새벽 2만여 명이 현장으로 출근한다. /지혜진 기자

지난 19일 오전 5시 새벽 어둠을 뚫고 안전모와 방진 마스크로 무장한 건설 노동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 기지인 경기 평택시 고덕면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P4·P5(4·5공장) 건설 현장이다. 2024년 초 글로벌 반도체 공급 과잉으로 한때 중단됐던 공장 건설이 작년 11월 재개되면서 전국 노동자들이 몰려든 것이다. 오전 5시 30분이 되자 공장 일대는 서울 지하철 환승역을 보는 듯 붐볐다. 근처 함바집과 하청 업체가 운영하는 45인승 통근 버스가 쉴 새 없이 오가면서 건설 일꾼들을 실어 날랐다. 대낮처럼 환한 조명이 켜진 공장 게이트 앞에는 노동자들이 타고 온 오토바이 수백 대가 줄을 섰다. 줄이 500m를 넘었다.

건설 경기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전국 곳곳에서 타워크레인이 멈춰 섰다. 하지만 평택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은 새벽부터 출근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달 발표한 연간 고용 동향을 보면 작년 건설업 취업자 수는 전년 대비 6.1%(12만5000명) 줄었다. 일자리를 잃은 전국의 건설 노동자들이 이곳으로 모여든 것이다. 면적이 축구장 400개 크기(289만㎡) 정도인 평택캠퍼스로 매일 출근하는 건설 노동자는 2만여 명. 올 중반에는 출근 노동자 규모가 3만명을 넘길 것으로 업계는 전망한다.

그래픽=이철원

본지 취재팀은 지난 설 연휴를 전후해 이곳을 찾았다. P5 건설 현장은 철골 뼈대를 설치하는 골조 공사가 한창이었다. 수만 톤짜리 반도체 설비의 하중과 진동을 버티는 시설이다. 그런데 대형 조선소 이름이 박힌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가 곳곳에서 보였다. “조선업이 다시 살아난다고 하지만, 프로젝트가 끝나면 일이 뚝 끊길 때가 많아요.” 한 달 전쯤 경남 거제 조선소에서 평택으로 올라왔다는 최모(31)씨는 “일거리가 없어져 고민하다가 일자리가 넘친다는 평택 공장 이야기를 듣고 바로 넘어왔다”고 했다. 박모(55)씨도 서울 지하철 삼성역 공사 일을 하다가 지난달 이곳으로 일자리를 옮겼다. 박씨는 “건설 현장 중에서 연장·야간 근무까지 뛰어가며 정직하게 목돈을 만질 수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할 것”이라고 했다.

요즘 전국의 아파트·주택 건설 현장은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 평택 건설 현장에선 외국인 노동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반도체 공장은 첨단 기술을 다루는 국가 기간 산업 시설이다. 기술 유출 우려 때문에 공장 건설 노동자로도 외국인 고용이 제한된다. 15년간 수입차 딜러로 일했다는 이경찬(50)씨는 요즘 P4 공장에서 고온·고열을 견디는 벽체 공사 현장에서 일한다. 이씨는 “건설 현장에선 사람에게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느끼기 어렵고 첨단 기간 산업 발전에 기여한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지난 19일 오전 6시 20분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4공장(P4)의 2번 게이트로 현장직 근로자들의 출근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근로자들은 안전모, 안전화, 방진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출근한다. /지혜진 기자

이곳 임금은 철저히 ‘공수(工數)’로 계산된다고 한다. 공수는 공사장 노동 시간 단위를 말하는데 하루 8시간을 기준으로 한다. 땀 흘린 만큼 벌어가는 구조다. 다만 기술 숙련도와 작업 종류에 따라 단가는 천차만별이다. 도면을 보는 숙련공(기공)은 하루 18만~25만원을 받는다. 초보 보조 인력 일당은 13만~15만원 정도다. 밥값 명목으로 추가로 2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일당으로만 보면 조선소나 다른 공사장보다 낮지만, 오후 5시 이후 2시간을 더 일하는 연장 근무(1.5공수·10시간)나 야간 근무(2공수·16시간)를 할 수 있어 월수입은 훨씬 많다고 한다.

건설 노동자들이 몰려들자 인근 상권도 활기를 되찾고 있다. 점심시간인 오전 11시가 되자 노동자들이 셔틀버스에 앞다퉈 올라탔다. 건설 현장에서 2.1㎞ 떨어진 한식 뷔페가 운영하는 버스다. 144석 규모의 이 뷔페는 10분 만에 만석이 됐다. 식당 사장 양한석(57)씨는 건설 노동자들을 식당으로 실어 나르려 셔틀 버스 4대를 빌리고 버스 기사도 고용했다. 한 달 버스 기름값과 수리비만 700만원 넘게 들어간다는 양씨는 “작년 공사가 중단됐을 땐 적자가 3억원이 넘었지만 다시 공사가 재개되면서 하루 손님이 500명이 넘는다”고 했다.

지난 19일 오전 11시 점심시간이 되자 근로자들이 공장 앞에 줄 세워져 있던 한식뷔페 셔틀버스로 달려간다. 하청업체는 인근 한식뷔페와 계약을 해 인부들의 식사를 해결하고 있다. /지혜진 기자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건설 공사가 시작된 2015년 평택시 인구는 46만명이었다. 그런데 10년 만인 2025년 말 인구는 61만명으로 약 33% 늘었다. 2015년 7582억원이었던 평택시 지방세 수입은 2025년 1조4354억원으로 배 가까이 뛰었다. 지난해 11월 말 평택의 미분양 아파트는 3594가구로 전월(4067가구)과 비교해 11.6% 줄었다. 평택 시내 투룸 월세는 75만원에서 140만원까지 뛰었다. 공장 건설 노동자가 몰린 결과다. 인근 공인중개사 조귀영(57)씨는 “공장 건설 협력 업체들이 원룸 10개씩 6개월 단위로 월세를 선납해 방을 쓸어 담고 있다”고 했다. 공자(孔子)는 위나라를 방문했을 때 인구가 늘어난 것을 보고 감탄하면서 국가가 해야 할 다음 일은 이들의 생활을 넉넉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 평택에선 기업이 그 일을 하고 있었다.

지난 13일 오후 반도체 공장 퇴근길 모습./김수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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